나의고향 선후배 2009. 12. 6. 20:46

일시 :1962년도 4월27일

장소 : 경북 문경시 가은읍 작천2리 서산 추정

내가 태어나기전 약 1년전 가은읍 작천2리 무두실에서는 화전놀이로 추정 되는색 바랜 사진한장이다.

분간 할순 없지만우리동네를 이끌어오신 안어른(女)들이시다. 주로바깥어른(男)은 찾아 볼수가 없는걸로 보아

화전놀이로 추정할수 있다.

삼월삼진날이면 전국 각처에서는 무두실뿐만이 아니고 청도 ,안동, 울산,경주, 안강,정읍, 전국 각처에서 화전놀이를

연중 행사처럼 가진것으로 예측된다. 한결같이 복장은힌저고리 적삼을 입어셨고 곱게 차려 입은한복이 잘 어울리기도

하다. 지금도 현존하시는 어른들도 보이시는 걸로 보아 약50년전 농촌마을에서는 삶에 그린 애환이 고스란히

배여 있고 특히 당시로 보면 삼월 삼진날을 기점으로 농번기가 시작되고 여인네들의 삶의 보금자리는 그리 순탄하지

못했으며 규방에서 일을 할래야, 자식키우랴 일인삼역을 해도 쌓이는 농촌 고된 일을 위로 하고 자축하기 위해

마련된 풍류 문화인걸로 추정된다.

강남에 간 제비가 돌아와 추녀 밑에 집을 짓는다는 삼짇날. 바야흐로 진달래 꽃잎이 연한 꽃망울을 터뜨리며 본격적인

농사철을 암시하기도 했던 이때, 분주해야 할 아낙네들이 봄꽃보다 더 곱게 치장하고 산천을 수놓는다. 고된 농사철을

앞두고 심기일전하기 위해 일 년 중 단 하루, 세상이 허락해준 여자들만의 날이었던 것이다. 이름하여 화전놀이.

여자라는 이유로 규방에 갇혀 어머니, 아내, 며느리 노릇에 농사와 가사까지 떠맡아야 했던 옛 여인들에게 이날만큼은

자유가 주어졌고 남자들도 이들을 위해서는 봉사와 뒷수습을 마다하지 않았던 날이기도 하다.


지인과 동무, 형님, 아우 할 것 없이 '동해(東海)에 고운 명주(明紬) 잔줄 지어 누벼 입고, 추양(秋陽)에 바랜 베를

연반물 들여' 한껏 치장하고 떠났던 이 꽃놀이는 그저 웃고 즐기는 일회성 유희가 아니었다. 우선 화전에 쓸 맑고 깨끗한

물을 구하는 ‘샘굿’에 이어 가장 붉고 아름다운 진달래 꽃잎을 따는 ‘채화’가 이어진다. 찹쌀가루를 물에 개고 연분홍

꽃잎을 얹어 ‘지짐’을 붙여내면 ‘경로’라고 해 마을의 연장자에게 먼저 대접해 예를 차린다.

이때 가장 솜씨 좋게 붙여낸 아낙에게는 마을 당산제의 제주가 될 수 있는 영광이 주어지기도 했다. 양반가의 여인들은

즉석에서 가사를 짓고 숨겨두었던 실력을 뽐내며 풍류를 즐겼는데 이때 만든 노래들이 <화전가>라는 이름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화전놀이의 마지막은 강강수월래 등 원무를 즐기며 흥겨운 뒷풀이로 이어졌다.


남녀의 구분이 엄격하고 삼종지도 등 여자들에 대한 구속과 제한이 까다롭던 시절, 화려한 꽃놀이로 다가온 봄을

만끽하고 풍년을 기원하며 나이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한데 어우러졌던 아름다운 미풍양속, 화전놀이. 진달래

군락지로 이름난 여수 영취산과 독특한 풍습이 전해 내려오는 현천마을 등 화전놀이의 명소를 찾아 잊혀진 옛 풍류를

선조들의 멋과 흥을 되새겨본다.

지난 7월에 다큐멘트리로 소개된 화전가 우리동네에서펼처진 사진 한장을 소개 해 본다.

강남에 간 제비가 돌아와 추녀 밑에 집을 짓는다는 삼짇날. 바야흐로 진달래 꽃잎이 연한 꽃망울을 터뜨리며 본격적인

농사철을 암시하기도 했던 이때, 분주해야 할 아낙네들이 봄꽃보다 더 곱게 치장하고 산천을 수놓는다. 고된 농사철을

앞두고 심기일전하기 위해 일 년 중 단 하루, 세상이 허락해준 여자들만의 날이었던 것이다. 이름하여 화전놀이.

여자라는 이유로 규방에 갇혀 어머니, 아내, 며느리 노릇에 농사와 가사까지 떠맡아야 했던 옛 여인들에게 이날만큼은

자유가 주어졌고 남자들도 이들을 위해서는 봉사와 뒷수습을 마다하지 않았던 날이기도 하다.


지인과 동무, 형님, 아우 할 것 없이 '동해(東海)에 고운 명주(明紬) 잔줄 지어 누벼 입고, 추양(秋陽)에 바랜 베를

연반물 들여' 한껏 치장하고 떠났던 이 꽃놀이는 그저 웃고 즐기는 일회성 유희가 아니었다. 우선 화전에 쓸 맑고 깨끗한

물을 구하는 ‘샘굿’에 이어 가장 붉고 아름다운 진달래 꽃잎을 따는 ‘채화’가 이어진다. 찹쌀가루를 물에 개고 연분홍

꽃잎을 얹어 ‘지짐’을 붙여내면 ‘경로’라고 해 마을의 연장자에게 먼저 대접해 예를 차린다.

이때 가장 솜씨 좋게 붙여낸 아낙에게는 마을 당산제의 제주가 될 수 있는 영광이 주어지기도 했다. 양반가의 여인들은

즉석에서 가사를 짓고 숨겨두었던 실력을 뽐내며 풍류를 즐겼는데 이때 만든 노래들이 <화전가>라는 이름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화전놀이의 마지막은 강강수월래 등 원무를 즐기며 흥겨운 뒷풀이로 이어졌다.


남녀의 구분이 엄격하고 삼종지도 등 여자들에 대한 구속과 제한이 까다롭던 시절, 화려한 꽃놀이로 다가온 봄을

만끽하고 풍년을 기원하며 나이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한데 어우러졌던 아름다운 미풍양속, 화전놀이. 진달래

군락지로 이름난 여수 영취산과 독특한 풍습이 전해 내려오는 현천마을 등 화전놀이의 명소를 찾아 잊혀진 옛 풍류를

재현함으로써 선조들의 멋과 흥을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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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둘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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