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고향 선후배
2008. 5. 24. 13:26
1. 들어가는 말
나의 고향 문경시 가은읍 선후배 옛 추억 예기를 토대로 읽어면 읽을수록 잼 나고
작가 남상욱(웅악)선생님께서 가은인의 방에 게재된 내용을 양해를 구해하고 퍼 왔음 . 1970년대를 소재로 한 광산촌에서 10리길 떨어진 시골 산촌마을을배경으로 해서 엮어진 글로 우리가은의 특성을 살린 우시갯소리나는 추억 넘치는 글들이다.
2. 상욱선배, 월희 선배님글을 게재합니다. 잊여져가는 가은(加恩)
을 사랑하자는 뜻이고 둘째는 내 가 살던 그때 선배님께서 잘
조화와 균형있게 연출한 부분이 너무 멋쪄요..3.박경리 선생님의 토지와 얼 비슷하진 않지만 아주 예리한 글로 추억을담아 내었다.
선배님 감사합니다. 둘리 채희동
닌장~ 요새 몸에 좋다는 걸 쪼만침 먹었디이 한 미칠간
새복에 저~ 아랫동네에 불이 붙어서 그니리꺼 꺼느라고
목간통에 끼 들어가서 물을 서너 버지기 택 퍼붙고 난리도 아니었다.
속으로 옳다, 지난번 월희 회장하고 술 먹다 오좀빨 칼싸움에
참패해서 울분을 삼킨 일을 요분에 설욕을 한번 할끼다 마음을 먹고 있는데,
마침 뭔 소운동인가 대운동인가 한다카길래 단다이 벼루고 있었다.
그래서 매일같이 똥꼬 조이는 연습과 궁디 돌리는 연습,
그니리꺼를 자꾸(지퍼)위에 잘 걸쳐 놓는 거총연습 등 그야말로 실전 같은
연습을 매일같이 열심히 하였다.
근데, 닌~장 시집가는 날 뭐 우옌다 카디이 지난 목요일부터
몸살이 나서 온 삭신이 쑤시고 눈까리가 뻐꿈하도록 앓았는데,
마음은 온통 그니리 오좀빨 시합에 가 있고 잘못하다간 참석도 못하까봐
걱정이되서 여북했으만 빙원까지 쪼치가서 궁디에 엄청시리 큰 주사를 다 맞았으까.
하이튼 그래도 한 이틀 앓고 난께 쪼만침 전딜만 해서 시합 날 입을
꼬까 빤수를 하나 사는 등 만반의 준비를 단다이 하고 있었는데,
당일날까정도 우예 영~ 몸이 뒤잖은 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시험발사를 함 해 봤디이 닌장 바로 발밑에서 뚝뚝 떨어지는 것이었다.
속으로 이거 낭패다고 생각하민서 운동회를 갈라고 영등포에 나가서
버스를 탔는데, 예상보다 인간들 머릿수가 적은기라.
속으로 오늘 안 온 넘들은 하매 '진즉부터 기가 죽어 못 나왔구나!' 하고
생각한께 속으로 히히 웃음이 나오는 것이었다.
이번 모임에 안 나온 넘들은 전부 심이 시원찮은 넘들로 낙인 찍힜응께,
모도 그래 알아 고만.
아니, 그렇다만 오늘 나온 시키들은 전부 자신있는 넘들만 나왔다는 긴가???
허~ 이거 걱정되는구만!!
인간들하고 만나서 겉으로는 짐짓 허허 하민서 반가운 마음에 온갖
노가리를 까민서 버스를 타고 가긴 했지만 백지 은그이 기가 죽는 것이었다.
휴게소에서 니리서 다시 한번 오좀빨의 강도를 가늠해 봤는데,
이건 무신 힘이라고 할 것도 없고 기양 맥없이 픽픽 떨어지는 기 쪼끔하더라만
구두 다 배릴 거 같아서 가래이를 쩍 벌린 자세로 오좀통에 바짝붙어 볼일을 봤는데,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일찌거이 버스에 타서 올라오는 넘들 신발을 일일이 다 검사를 해 봤는데,
한넘도 물 한방울 묻지 않을 걸로 봐서 역시 만만찮은
넘들만 왔구나 싶어 영~ 기가 죽는데,
및놈은 버스가 출발 할라카는데도 안 나타나는 것이었다.
가마이 생각한께 고놈들은 아주 영 뒤잖아서 볼일보다가
빤스를 다 배리가이고 암메 속옷 갈아입고 오느라고 늦는 기 아닌가 하는
생각이드니 쪼금 마음이 놓이긴 한다.
고넘들은 아니나 다를까 양기가 전부 위로 올라와서 입만 뻥긋하만
노가리를 까 대는 주디만 디기 씬 넘들이어서 쪼만침 위로가 되었다.
그렇지만 오늘 컨디션으로 봐서 잘 못 붙었다가는
백지 우사만 당할 끼 뻔할 뻔자라 언 넘이 붙자고 하더라도
적당한 핑계를 대민서 기양 실무시 내 빼리라고 생각을 하단께
버스는 어느 듯 아늑한 내 고향의 품속에 안겨 있는 것이었다.1.
마흔이면 불혹이라 했던가?
앞만 치다보고 뛰어오다가 요새는 가끔썩 힐끗거리며 뒤를 돌아봐여.
나라는 넘이 어떤 환경에서 자라오고 또 우뚜키 살아왔는가를 돌아보면서
때론 혼자 씨구운 웃음을 짓기도 하고 회한에 젖어 보기도 하지.
이제는 늘~ 앞만 보기보다는 지금까정 살아온 날들에 대해 감사하고,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민서 지내야 겠다고 생각해여.
가마이 생각해보만 지금도 그렇지만,
특히, 나의 성장기와 학창시절은 잘난 구석이라고는
개 콧구녕 만침도 없는 별 볼일 없는 넘이었던 것 같아.
어데하나 내세울만한 구석도 없고 아무데도 정을 붙이지 못하고 떠도는
근원적인 보헤미안이요, 주류 쪽에는 한번도 붙어보지 못한
그야말로 빌 볼일 없는 마이너리티 인생이었던 것이라.
아채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나는 촌넘이라는 딱지를 달고 댕겨야 했지.
지금이야 왕릉까지 한걸음에 닫는 길이지만 옛날만 하더라도
아채는 왕릉에 비하면 모든 면에서 촌이었어.
그러니 아이들 해가지고 행색도 추리~하고 행동도 순디기라
촌놈이란 소리를 듣기에 충분했지.
그 당시 대부분의 아채나 저 싱밑 동네 영더기거튼 아~들이
해가이고 댕기는 행색은 대충 이러했을 끼라.
머리는 바리깡으로 빡빡 밀어붙인 일명'중대가리'에
얼굴에는 허연 마른 버점이 두서너 개 박혀있으며,
어깨에는 책보를 둘러메고 꺼먹 고무신을 신었지.
일부 아~들은 밑도리라고 해서 학교 이발관에 가서
밑두방치만 돌려 깎는 그런 이발도 하고 댕깄지만,
촌넘들은 그런 거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고,
가방도 없어 대부분이 책을 바부재에 싸서 머시마들은 어깨에,
지지바들은 허리에 둘러매고 댕깄던 것이라.
밴또는 누런 양은에다가 반찬통도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밥 담은 위에다 꾹 눌어 넣고 그냥 밴또 뚜껑을 덮어버리는 것이어서,
책보에다 같이 싸서 어깨에 메고 놀개이거치 쫒아 댕기다 보만 그니리 짠짓물이
줄줄 흘러나와 언제나 책과 공책은 벌겋게 되어 있기 일쑤였어.
더군다나 왕릉이나 시장통에 있던 아 ~ 들은 일찍 꽤가 들었겠지만,
우리들은 촌에서 논틀로 밭들로 돌아 댕기고,
학교만 갔다오만 일꺼리가 울매나 많은지 공부는커녕 쉴 틈도 없었던 것이었어.
여름에는 시미기나 염소 또는 토끼풀 한 대래키썩 해다 날라야지,
틈만 나면 논일, 밭일 거들고 겨울에는 나무해야지 정말 쉴 틈이 없었던 것이지.
다른 집에 비해 농사거리가 많지 않았던 나도 농사일이라면 쟁기질,
쓰레질 빼곤 안 해 본 일이 없는 거 같아.
..............계속..........2.우리 어릴 때는 모도 살기가 어루왔지만
돌이켜보만 그래도 마음만큼은 너그럽고 풍요로웠던 시절인 것이어.
비록 지대로 못 먹고, 못 입어 풍족하지 못해서 그렇지
요즘 아~들거치 공부하라는 잔소리는 한번도 들어보질 못했으이,
이기 울매나 기분째져는 시절이었던가?
그러니 맨날 씨기는 농사일 안하고 우예든동 미꾸라지거치 실무시 빠져서
그저 놀 궁리에다가 온갖 저지리만 일삼고 댕깄지만,
그 추억들이 안즉도 잡지에 실린 재미난 삽화처럼 머릿속에 잔뜩 들어서
어느 순간에 불현듯이 생각이 나곤하는기라.
그때는 요즘거치 장난감이니 뭐 그런기 없다보이 온갖 자연이 놀이기구고
노는 방법도 다양하기 짝이없었지. 그당시 지지바들이 노는 것은 주로 오자미나 공기놀이,
노래를 불러 재끼민서 팔딱팔딱 오도방정을 떨어대는 고무줄놀이 등이 있었는데,
이기~ 요새 그니리 교육적인 면이니 뭐 그런 걸로 봤을 때도 동료간의 단합과 팀웍,
심체적 발달, 두되활동 등을 촉진씨기는 울매나 의미 있는 놀이었던 말인가?
우리 머시마들은 뭐니뭐니 해도 기중 마이 한 놀이가 바로 다마(구슬)치기 였고,
다마치기의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기중 재미나는 기 뺑치기라는 것이었어.
땅바닥에 아랫마, 중간마, 웃마에 양 날개 등 여러 개의 구녕을 파놓고
암메, 그 구녕에다 다마를 주 넣으민서 한 바꾸를 기중 먼저 도는 넘이 이기는 것일 끼라.
자기 다마 근방에 상대방 다마가 있으만 요래~ 전좌가이고 멀리 까내뿌리는데,
요때 쓰이는 용어들이 참말로 숭악한 것들이 많았다.
대충 하까이로~~, 진주로~~~쌍총~~하는 일본말 비스므리 한 건데,
특히, 손을 마이 내밀어 상대방 다마를 까만 ‘말x 내민다’고 하민서
서로 우기민서 악종을 쓰고 싸우기도 했어.
히히히... 말x.... 참말로 숭악해여.
그외에도 다마를 이용한 놀이는 참 많았어.
예를 든다면 땅바닥에다 세모를 기리고 그 안에다 다마를 여러 개 집어넣고
다마 하나를 눈까리에 갖다 대고 멀리서 요래~ 줜자 가이고 고넘을 마촤서
세모 금 밖으로 튀어 나온 넘을 따먹는 놀이라든가,
아니면 고넘을 손안에다 감추고 홀짝 맞추기를 해서 따 먹는 것 등등.......
다마치기 못지 않게 또 열씨미 했던 것이 때기(딱지)치기이고,
맨날 그누무꺼 접느라고 집꾸석에 조우 쪼가리라는 건 찾을 수가 없을 정도였지.
닌장, x닦을 조우쪼가리도 귀한 시절에 신문 쪼가리는 두 말 할 것도 없고,
지나간 표준 전과라든지 헝아들이 쓰던 동아 수련장, 스터디 북 등은
전부 때기접느라고 남아나질 안았다. 심지어 때기를 시기 마이 떼인 어떤 넘은
열이 올라 배우는 교과서를 째서 때기를 만들었다가 뒤지기 혼나기도 했어.
특히, 때기 만드는 조우가 뚜꿉고 클수록 때기치기에서 위력을 발휘했기 때문에,
그래다보이 책중에서도 두꺼운 부분인 앞 뒤 표지나,
보루바꾸 등은 때기의 가장 좋은 재료인지라 남아나는 집이 없었지.
때기 치기를 할 때도 발로 살짝 쌔비치는 거 땜에 서로 싸우고 발광을 해 댔는데,
그 당시 때기와 다마의 보유 정도는 우리들 사이에서 부와 권력의 척도였으며,
그니리꺼 마이 가진 넘은 선망의 대상이요 요즘말로 ‘짱’이 아닐 수 없었어.
.........계속.........
3.이기~ 우예 이야기가 자꾸 빗나가는 느낌인데.....
원래 이 숭막이가 숭막거치 살아 온 이야기를 질기 지낄 챔이었는데,
어릴 때 놀던 이야기가 나온께 자꾸 잊어삐맀던 기 떠오르고 거 ~ 십상 재미있네.
에이~ 기왕 이래 됐응께 놀던 이야기 좀 더 지끼야 되겠네.
왜, 꼽냐? 작가 마음이지 뭐.......히히히...
그렁께 그 외에도 십상 창의성 있는 다양한 놀이들이 디기 많았는데,
맨날 그니리 컴푸턴가 하는데만 쳐 박혀서 게임이니 음란물이니 하는 것에나
몰두하고 있는 요즘 아~들을 보면 불쌍하기 그지없는 일이라.
에~~머시기~ 다마치기나 때기치기 외에 우박이라 그래서(표준말 : 비석치기)
넓딴한 돌삐를 앞에다 시와 놓고 그놈을 맞촤서 닝기는 시합이 있었지.
그기~ 첫 단계에서는 아주 먼 거리에서 기양 돌삐를 떤지서 맞추다가,
점점 단계가 높아지면 그넘을 뒤로도 떤지고 꺼꿀로 돌아서서도 떤지고,
가래이 사이로도 던지서 그 누무 돌삐를 마촤야 되는 놀이였어.
또한 떤지는 방법도 다양해서 나중에는 돌삐를 가슴에 얹고 가서 맞추기도 하고,
그다음은 어깨나 대가빠리에 얹어 가이고 맞추기도 하고,
등때기에 엎고 가서 맞추기도 하고,
심지어 돌삐를 대가빠리에 얹어가이고 한쪽발로 깨곰발을 뛰민서
중간에 가서 궁디를 돌리가민서 한바꾸 춤을 추민서 지랄 발광을 하다가
맞추기도 해야 되는 고도의 숙련과 기술을 요하는 아주 재미나는 놀이였어.
맨날 코를 찔찔 흘리민서 땅바닥에서 그니리 놀이들이나 하고 있었으니,
땟 국물이 졸졸 흐르는 기 생기먹은 빠꾸가 요즘 테래비에서 보는
저~ 이라크 난민 아이들이나 다를 바가 뭐가 있었겠어, 그래.
하지만 노는 것은 뭐든 신이 났고 계절에 따라 알맞은 놀이들을
잘 계발해 두었기 때문에 심심할 틈이 없던 시절이었지.
여름에는 뭐니 뭐니 해도 아채보에서 시염치던 일을 잊을 수가 없는데,
아채보만 하더라도 아랫보, 중간보, 웃보(왕나들)가 있어서
맨날 쌔까맣기 해서 그니리 꼬치를 달랑 다 내놓고 시염을 치고 놀았던 것이라.
그 중에서도 웃보가 물이 시퍼런기 대다이 짚어서 보기도 위협적이었고
빠지만 바로 골로 갈 정도의 깊이였지만 우리들은 아랑곳하지 않았지.
그때 싱밑에 영더기 거튼 아들은 감히 무수와서 거~와서 시염을 칠 엄두조차
못 냈을 끼라. 그렁께 맨날 그 앞 왕나들 풀밭에서 시미기나 할 수 빼끼 없었고,
그 근방에서 관산댁이는 소를 띠끼민서 우리들의 궁디를 다 훔쳐 보곤 했는데,
암메 모르긴해도 우리들의 용맹함과 섹시함에(?) 거의 매료 되어 정신이 없었을 끼라.
ㅎㅎㅎ
특히, 그 위에 아주 까풀막진 비락 방구에서 따이빙인가 뭔가 한답시고
뛰니리다가 배다지부터 머이 떨어져서 배가 터져 뒤질 뻔한 경험도 있고 한데,
암메 그럴 때는 관산댁이 가심이 덜컹덜컹 니리 앉곤 했을 것이여.
(관산댁이가 요새 도통 코끄티를 안 보이는데, 부예나 지르자!!히히히..)
하이튼 그때 나는 해군시염, 깨구리 시염, 담방구지 등을 통달했는데,
이기 암매 요새 말하는 자유형, 배영, 접영 뭐 그런 것일 끼라.
그래서 집에 아들넘이 뭔 누무 수영인가 하는 걸 배운다 할 때도
“난 그런 거 안 배와도 다 잘하는데,
그니리껄 뭔 누무 비싼 돈을 딜이서 배우느냐‘민서 핀잔을 주곤 했어.
근데, 한날 수영장인가 하는데에 아들놈 하고 같이 가서
잇날 해군시염을 자유형이라고 우기고 깨구리 시염을 접영이라고 우기민서
멋지게 한판 쳤지만 백지 우사만 당하고 말았지 뭐.
마한!!
개시염이라나 뭐 우예민서........
................계속..............4.히히히..
어릴적 이야기 지낀께 십상 재미있네!!
이야기 나온 짐에 및 마디 더 지끼야 되겠어.
이래다 이걸로 고만 날 새는 거 아인지 모르겠네.
새로운 기 자꾸 생각나지만 그니리 껄 다 지낄 순 없고,
오늘은 토막토막 스치는 황당한 기억들 몇 가지만 펼치 보겠는데,
그기~ 다 살기 어려운 때라서 그런 일들이 생겼지만 지금 생각하만 참 우수운 일이라.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그 당시에는 거의 대부분 아~들이 머리를
집에서 기양 바리깡으로 밀어삐린 소위 ‘중대가리’를 해가이고 댕깄는데,
밍월이나 뭐 그런 때는 그니리 밑도리 한번 해 보는 기 소원이었어.
그래서 같은 동네 모 친구도 설을 앞두고 부모를 조르고 졸라서
난생처음으로 학교이발관에 가서 밑도리라는 것을 하고는
너무 좋아서 뒤질라카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 ~ 해여.
마한, 그런데 그날 밤에 기불이 싸움을 했는기라.
아채 아~들은 늘~ 작천 아~들하고 냇가를 사이에 두고 기불이 싸움을 했는데,
심할 때는 돌삐도 집어 던지고 몽디가이고 따라가기도 하고 찌끼 가기도 하민서
거의 전쟁을 방볼케 하는 놀이었어.
기불이 싸움을 할 땐 깡통에 관솔을 넣어 불을 붙이 가이고 돌리다가
신호탄이라카민서 확 집어 떤지뿌리만 똑 군대에서 쓰는
신호탄 매로 불꽃이 위로 싹 솓구치민서 디기 멋있는 광경이 연출 되곤 했지.
근데 한넘이 ‘신호탄이닷~~!’하민서 집어 던지자마자
바로 그날 낮에 밑도리 했다고 좋아하던 친구가 먼 산 치다보민서 이래~ 오고 있다가,
고만 가~ 대가빠리에 디리 떨어져 뿌맀는기라.
화~!! 그 불떵거리가 대가리빠리에 떨어 졌으만,
당연히 본능적으로 ‘앗~! 뚜구와!! 사람살려~!!’ 하는 소리가 나와야 당연한데도
가~ 입에서 순간적으로 나온 말은 이래여.
‘아이고~~!! 내 밑도리~!! 내 밑도리 다~ 타여, x팔~~!!’
ㅎㅎㅎ 이걸, 웃어야 되여? 울어야 되여?
결국은 폭탄 맞은 거 매로 온 낯빤데기를 씨커멓기 해 가이고
머리카락을 싹~ 다 꺼실러 먹고 약간의 화상까지 입었지만,
그니리 밑도리가 목심보다 더 중했던 것이지.
또 한 가지는 중학교 앞에서 일어난 모 친구의 일인데,
알다시피 가은 중학교 앞에 있는 언덕은 디기 까풀막지잖아?
모친구가 학교 마치고 그 언덕을 자전거를 타고 니리 가다가 그니리 브레끼가
고장나서 열나기 달리다가 고만 거꿀로 따이빙을 해서
대동빙원인가 건양빙원인가에 실려 가는 대형사고가 난기라.
우예우예 연락을 급히 해서 가~들 어른이 쪼차 오싰는데,
오시자마자 하시는 말씀 “자전거 우예 됐나? 자전거 마이 안 다칬나?”
시상에 아~가 뒤질라카는데 그니리 자전거라 고라.
이 일을 두고 담임선생님께서 흥분해서 ‘그럴수가 있느냐고’ 말씸하싰지만,
지금 생각한께 물론 아~가 더 중~했겠지만 애정표현을 지지리도 못하시는
우리들의 전형적인 아부지였던 것이라.
근데, 가~가 누군지는 잘 기억이 안나네!
또 한번은 장마가 엄청나기 져서 갈밭 앞에 고무다리가 거의 넘칠 정도였는데,
비니루 우산을 쓰고 가던 어떤 아~가 바람이 획 분께 고만 그니리끼 히떡 뒤집어 지민서
다리 아래로 날라 가서 물에 둥둥 떠니리 가는 것이었어.
용감한 우리의 친구는 대분 옷 입은 채로 벌건 흙탕물로 뛰어 들어가서
급물살 속에 목숨을 걸고 그 비니루 우산을 건져 가지고 나오는 기라
왜냐?
우산 잃어 삐리만 집에 가서 혼나기 때문에........
................계속.....................5.
에구~~!
오늘이 토욜이라 애써 올리봐도 독자도 없을낀데......
원체 토, 일요일은 칼같이 쉬는 방이라서.....
마한, 기왕 연재를 시작한긴데 독자 빌로 없다고 지 멋대로 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에이~~하이튼 시작~해~~보~~~세~~~~!!!
근데, 이기~ 이야기가 자꾸 히딴 방향으로 나가는 거 같아여.
어제 영더기가 핵교에서 빵타던 날은 그니리꺼 빼끼까봐
갈밭으로 해서 아채보로 돌아갔는다는 이야길 들은께,
난도 잊어 삐맀던 잇날 생각이 자꾸나네.
에이~ 또 삼천포로 빠져보자!! 히히.....
지금이야 왕릉이나 아채나 거기서 거기지만 그래도 그 당시에는
왕릉이라카만 가은에서는 기중 삐까뻔쩍한 곳이였고,
그러니 거기서 살던 아~들은 뭔가 좀 악다받은 거 같이 보이는 기 사실이었어.
반면 읍내에서 떨어진 촌에 살던 아 ~ 들은 행색도 추리~ 할 뿐 더러
하는 행동도 순진무구하기 짝이 없었으니 여칙없는 촌넘으로 보였을 것이고,
우리들은 쫌 까불거리던 넘들 밥이 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출 수 밖에 없었지.
그 당시 아채 아~들은 고무다리를 건너서 속개뜰을 가로 질러 아채로 가야 되다 본께,
이건 왕릉 아~들 뿐만 아니라 갈밭 아~들 까정도 저들 동네가 왕릉하고 가까운께
아채 아~들을 촌넘이라고 우숩게 보기 일쑤였고 제일 무수왔던 것이 선배들이였지.
그래서 걸핏하면 끌려서(끌린다 : 일종의 학대) 갖은 고초를 당하기도 했는데,
그 때문에 학교 가기 싫을 때도 마이 있었던 것 같아여.
그중에서도 왕릉인가 어디쯤에 사는 싸단(태권도 4단이라고 뻥을 쳐서
우린 그렇게 믿었고 빌명도 그렇게 붙였음)과
또 어딘가에 사는 껌*이가 젤로 무숩고 위협적인 존재였어.
그 두 사람한테 우리 팅구들은 거의 매일 끌려서 온갖 수모와 고초를 다 당했어.
시미기 한 대래키는 기본에다가 온갖 농사일을 다 해조야 됐고,
심지어 버리 밭에 곰배치는 일까정 해 주어야 했지.
말하자만 일종의 강제노동에 시달린 데다 걸핏하면 회초리로 손바닥까지 맞으며
온갖 학대에 시달린 것이고, 또한 허풍이 절반인 자기의 무용담을 들어 주어야만
지우 풀려 날 수 있었으니 참말로 요새 거트만 신문에 날 일이지.
중핵교에 가서도 이런 일은 마찬가지로 벌어졌는데,
아무 이유도 없이 점심시간에 산에 혼자 끌려가서 선배 몇명한테 하도 맞아서
얼굴이 밤탱이가 되어 가지고 다니던 기억등이 생생한데,
지금 생각하니 그 모든 것이 촌넘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던 것 같아.
그러면 촌넘이 뭔가?
약아 빠지지 못해 순진하고 부모들이 하나하나 챙겨주지 않으니,
행색이 꺼죽한데다 사는 동네가 왕릉에서 멀다는 것 밖에 더 있겠는가?
거기에다가 뭐라도 잘하는 기 있었다면 그러키 무시당하지는 않았을 낀데,
공부도 그저 그런데다 주먹이 씨기를 하나 이건 생긴 것도 티미 한데다
하는 짓도 츄리하기 해서 댕깄으니 만고에 뭐 하나 내 세울 끼 없었기 때문이라.
지금 생각한께 씨구운 웃음 빼끼 나오지 않지만,
요새 애~ 들 기준으로 보만 간혹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여.
..............계속.........
6.
그러만 숭막이 맨날 얻어터지고만 댕긴 순진무구랭이 띨빵이에
아주 착실한 범생이에 불과한 넘이었던가? 천만에 만만에 말씀!!
그래도 나름대로 저지리도 했고 나쁜 짓도 시기 마이하고 댕깄는데,
원체 꼭꼭 숨어서 한 일이라 절대 어른들한테는 들키지를 않았을 뿐이라.
그 당시 어른들은 술, 담배에 대해서는 관대했던 것인지,
아니만 먹고 살기 바쁜 시절이라 아~들한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어.
하이튼 나는 술, 담배라면 소시적부터 통달을 했으니 말이라.
지금은 그니리끼 빌로 좋은 기 없다케서 끊어삐맀지만,
담배는 초딩 때 부터 맛을 보기 시작했으이 이기~ 소가 웃을 일이지.
그때는 오후반을 갔다 올라만 겨울에는 날이 어둑어둑 했고,
속개 뜰을 가로질러 지금은 방자유기촌으로 바뀐 '솔밭 곡'을 넘어 올라만
잇날에는 워낙 숲도 우거지고 해서 십상 무수왔어.
그래서 그 고갯길을 넘어 가기 전에 미떵에 마캉 끌어 모이서
그 당시 남대문이나 파고다거튼 담배를 꼬나물고 넘어 갔고,
그 이유는 여우나 늑대거튼 거는 불빛을 보만 내뺀다는 소릴 들었기 때문이지만,
우예보만 그건 핑계에 불과한 것이라.
핵교 갈때도 마카 누구네 집에 문디 띠서리거치 끌어모이서 늘 무디기로 댕깄는데,
중핵교에 입학하고 나서 교복을 좍 빼입고 친구 집에 간께
선배들이 전부 담배를 물고 한 대썩 돌리는 것이었어.
그러니, 대가리 시똥도 안 뻐꺼 진 넘들이 모도 한꼬바리썩 입에 물고
문디 쑥굽듯이 꾸재끼고 핵교를 가곤 했고,
그 외에도 방학 때 나무 하로 갈 때는 어련히 한 대 썩 꿉는 기 여사였지.
그니리 술이라카는 것도 울매나 어릴 때부터 입에 댔는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하이튼 아버지가 술 받아 오라하시만 주전자에 막걸릴 받아 오다가
꼭지에 주디를 대고 쭐쭐 빨아먹고 오민서부터 였으니,
그 역사와 뿌리가 깊고도 깊은 것이었어.
그러다가 중학생이 되민서부터 본격적으로 술을 먹기 시작하였는데,
명절이나 구리스마스 때가 되만 집에서 모르기 쌀을 한 됫박씩 퍼 내와
그넘을 모아 장터에가서 팔아서 쫀디기와 맛조은 동산, 라민땅, 감빵 등
온갖 먹을 거를 장만 해 왔고 당연히 술도 필수 품목이었지.
그래서 저녁에 모두 끌어 모이서 빙나발을 불민서 아가릴 쳐 벌리고 노래를 부르고,
심지어 저범으로 밥상도 뚜디리민서 어른들 숭내를 내민서 놀곤 했어.
중2때 어느 날은 옆집 모 친구의 생일날 쐬주 댓빙 2병에 안주는 새우깡과
맛좋은 동산을 사다놓고 니가 술이 더 씨다, 내가 더 씨다 싸우다가
술 마이 쳐 먹기 시합이 벌어진 기라.
고만 술잔이고 뭐고 필요 없이 국 대접에다 한 그럭 이빠이썩 따라 가이고
그넘 한 잔 쳐 먹으만 내가 한잔 쳐 먹고 뭐 그런식으로 먹어재낐는데,
엉가이 각각 대삥 한 빙택을 먹고 둘 다 기절해서 거의 죽었다가
근 사흘 만에 지우 살아난 적도 있어.
참말로 지금 생각하만 한심하고 같잖은 일이 아닐 수 없고,
그발광을 하고 컸으민서도 오늘날 모도 요만큼이라도 사람노릇을 하민서
사는 걸 보만 참으로 신통하고 방통한 일이 아닐 수 없어.
그러니 우리가 아~들을 키울 때도 쪼만한 잘못을 가이고 하늘이 무너진 것 거치
그렇기 오도 방정을 떨어 댈 일도 아닌 기라.
실제로 나는 그런 것들을 일찌거이 경험했기에,
오늘날 고론 못된 행시 하는 넘들 상담하는 일을 하기 된 것이고,
또 그넘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나쁜 짓을 하는 넘들도
겉으로는 짐짓 무서운 칙 하지만, 속으론 쪼만침도 미운 생각이 들지 않아여.
왜냐? 내가 잇날에 다 해봤기 때문에....ㅎㅎㅎ
.........계속........
7.
그나저나 어릴 때 우리들을 사정없이 끌어 가이고 맨날 뚜 패고
못된 행시를 마이 한 헝아들 이야기를 지끼야 될 챔인데,
요새 저 웃마 큰 헝아들까정 팔짱을 턱 끼시고 요놈이 뭔 소릴 하나~하곤
약간 어두운 귀를 쫑긋하고는 싹~ 다 듣고 기신단 말이라.
이거~ 쪼끔만 잘못 지낐다간 대분 피우시던 대꼬바리로 대갈통을 한방 맞을 거 같고......
에이~ 닌장~ 모르겠다. 또 이야기는 히딴 방향으로 나가는 기지 뭐.
이래다 날 새는기라. 히히히...
요새 월희히장이 먹거리에 대해서 지끼고 있지만, 그때는 참말로 먹을 끼 시기 귀했어.
우예다가 오가당이라도 하나 생기만 애끼 먹을라고 갯주머이에 넣어 났다가
고만 다 녹아서 달라붙은 넘을 실밥을 띠 가민서 먹기도 하고,
껌이라도 하나 생기만 종일 씹다가 잘 때는 비름빡에 붙이 났다가
다음날 씹고 해서 미칠을 씹었으니 말이라.
지금 가마이 생각하만 참 못된 행고다지 이기는 하지만,
먹을 끼 원채 귀해 놓은께 뭘 훔치 먹는 짓도 마이 하고 무신 서리도 시기 마이했어.
저울게는 밤이 질기 때문에 저녁을 일찌거이 먹고 동네 아~들 집에 모이서 놀았는데,
저녁이라고는 버리 밥 한 그릇 빼끼 먹은 기 없으이,
그니리 히마리 없는 방구 및 번 피시식 끼고나만 고만 배다지에서 쪼르륵 소리가 나는 기라.
그래서 민화토에다 육백, 또는 뻥같은 화토를 치민서 놀다가 배가 고파지만
화토에 지는 넘이 훔치 오는 그런 내기를 하는 것이었지.
기중 만만한기 짠지 훔치오기하고 무꾸 훔치오긴데,
찐짓독이나 무꾸구디이는 마캉 다 바깥에 있기 때문에 이까이꺼는 일도 아이라.
무꾸는 짚으로 막아놓은 구디~이 입구를 살짝 열고는 시게또 탈 때 쓰는
지단한 송곳자루로 쿡 찍어가이고 꺼내 뿌리만 간단하기 끝날 일이고,
김치도 기양 가이고 나오만 되는 기라.
문제는 밥 훔치는 긴데,
이건 남의 정지에 살짝 끼 들어가서 동솥을 열고 꺼내 와야 되기 때문에,
여간 번거로운 기 아이고 자칫하만 들키 삐리거든.
우선 대문을 열라카만 나무대문이 ‘끼리릭~’하고 소리가 나기 때문에 돌쪼구 있는데다가
쑥개 매로 한쪽 다리를 살짝 들고 소리 안 나기 가마이 오좀을 한분 갈기 나야 되여.
그래곤 정지에 발자국 소리를 직이고 살짝 끼 들어가서 소두방(솥뚜껑)을 여는데,
요놈을 한번에 대분 바짝 들어 올리야지 옆으로 살짝이라도 밀리만
소리가 나서 밤 귀 밝은 어른들한테 들키서 고만 경을 치고 마는 것이라.
하이튼 이래 가이고 밥하고 짠지하고 해서 훔치다가 밤늦게 양푼에다가 비비 먹거나,
짠지를 쭐~쭐~ 째서 밥하고 먹으만 그야말로 맛 대낄이지 뭐.
밥 훔치기가 마땅찮을 때는 기중 쉬운 무꾸만 훔치다 먹기도 했는데,
뻘건 흙이 잔뜩 뭍은 무꾸를 밑두방치는 너무 매운 께 내 삐리고,
색깔이 퍼런 웃두방치만 ‘퇘퇘’하민서 이빨로 돌리까서 맛나게도 먹어 재낐지.
그래고 나만 이누무끼 울매나 소화가 잘 되는지 속은 대루와 죽겠고
그니리 방구가 끊임없이 나와 재끼는데,
요누무껄 기양 가마이 끼만 될 거를 갖은 오도방정을 다 떨민서 끼 재끼는 것이라.
다른 넘 콧구녕에다가 일부로 갔다대고 끼기도 하고,
한참 떠들다가 ‘야~!! 조용해 봐! 바깥에 누구 왔는가부라!’ 요래민서 조용하기 씨기 놓고는
그때 고만 대포거튼 방구를 한방 내 갈기 삐리는 아주 미깔적은 넘도 있었어.
뿐만 아이라 엄지손가락하고 찝게 손가락을 요래~ 갔다 대민서
“요것 쫌 붙이 봐!” 이래놓고 상대방이 영문도 모리고 손가락 두개를 갔다대만
무신 전선 스위치 넣는 거 거치 그때 내 갈기는 넘도 있고,
어떤 넘은 “내 궁디가 이상해여~!” 이래민서 궁디에 손을 갔다 대라고 해놓고는
그때 내 갈기는 아주~ 숭악한 넘도 있었지.
심지어 방구로 갖은 시합을 다 했는데,
오래끼기, 크기 끼기, 잔 방구 마이끼기 등 모든 것이 시합의 대상이었어.
밝히기기 거북한 어떤 넘은 무꾸를 울매나 마이 쳐 먹었는지
잔 방구 포함해서 무려 근 20여방 가까이를 끼 재끼서
그 방면에 신기록을 달성한 넘도 있었어.
닌장~ 기네스 북인가 하는 기 진작 있는 줄 알았더라만 그때 등록을 했을낀데,
참으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지.
근데, 어떤 넘은 무꾸를 시기 마이 쳐 먹고
나름대로는 방구를 대포거치 한분 끼서 우쭐거리 볼라고 똥폼을 시기 잡는기라.
아랫배에다 심을 무지하기 주고 괄약근을 최대한 긴장씨긴 다음
오만 인상을 쓰민서 엄청나기 큰 소리로 끼 재끼긴 했는데,
뭔 덩거리 거튼 기 쪼만침 딸리 나왔는가 실무시 빤수를 벗디이
어딘가에 내 삐리더라고......
근데, 시방 내가 뭔 소릴 지끼는 기지??
뭐 우예 방구 이야기하다가 고만 또 삼천포로 실무시 빠져 뿌맀네.
헛 ~ 마한!!
아적부터 냄새나 죽겄네. 히히히...
............계속..............8.어데까정 지낐지?
그랭께 무신 ‘서리’ 해먹는 이야기 지끼다가 이기~ 우예 가이고
각중에 고만 방구이야기가 나와 또 히딴 길로 나가삐맀지?
암매 모르긴 해도 그 당시 촌에서 자란 넘들 치고 누 집 서리한번 안했다 카만
오히려 그넘이 티미해도 보통 티미한 넘이 아닐끼라.
그렇지만 과수원 서리거튼 거는 간땡이가 지법 큰 넘들이 했고
보통은 남의 집 과실이나, 땅콩, 꼬깜, 닭서리 등을 주로 하였지.
말이사 바른 말이지만 지나댕기다가 남의 집 밤나무나 감나무, 살구나무 거튼 것에
돌팔매질 한번 안 해본 넘이 어데 있겠어 그래.
(히히히... 요래민서 도둑질을 정당화 씨기는 기라!)
공소시효가 지난 것만 및 가지만 지끼보자만,
벌건 대낮에 남의 집 딸기밭에 들어가서 주디~이가 벌겋도록 따 먹다가
그 집 큰 헝아한테 붙들리서 손바닥으로 퍽퍽 소리가 나도록 대가빠리를
한 스무 대 정도 맞은 일부터 시작해서 한두 가지가 아니지 뭐.
그중에서도 기중 큰 사건이 수박밭 습격사건인데,
지금도 울 동네 팅구들찌리는 두고두고 회자되는 사건인기라.
이기~ 본래 서리를 할 때는 달이 없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택해야 되는 건 기본이고,
가급적이면 시꺼먼 옷을 입어야 될 뿐아니라,
그것이 마땅찮으만 아예 홀딱 벗고 들어가야 눈에 잘 안 띠는 법이거든.
요런 기본을 잘~ 지킨 넘들이 나름대로 작전을 짜고 수박을 털로 간기라.
근데, 참말로 재수 없기도 근자에 하도 여러 번 도둑을 맞아 주인이
단다이 벼르고 있는 집으로 갔던 것이라.
요넘들은 천지도 모르고 살살 끼 들어가서 서리를 하기 시작했고
수박만 빨리 훔치 가이고 나오만 될낀데,
울매나 수박이 먹고 싶었으만 그 자리에서 수박을 퍽퍽깨서 쳐 먹기 바빴던 기라.
원두막에서 자는 칙 하고 있던 주인이 뭔 소리가 나서 자시 본께
어떤 넘들이 옷을 홀라당 벗고 살살 끼 들어오는 기~ 이기~ 같잖은데,
수박을 그 자리에서 퍽퍽 깨고 있응께 울매나 부예가 났겠어 그래.
대분 후라시 불을 비추민서 저놈들 잡으라고 소리를 비락거치 질러댄께,
당황한 넘들이 후닥닥 내 뺐고 이기~ 참 같잖은 일이 벌어진 기라.
다른 기 아이고 한넘이 급히 토끼다가 그니리 꺼먹 고무신이 뻐꺼진기라.
아~ 그래만 기양 토끼삐리만 그만이지
이넘이 집에 가서 신발 잃어 삐맀다고 혼나까 봐 아가빠리를 쳐 벌리고 엉엉 울민서
“내~~신, 내~~신~~!!” 하다가 고만 붙잡힜는기라.
다른 넘들은 다 토낐는데 요넘만 붙들맀으니,
주인의 온갖 회유와 협박 및 모진 고문(?) 끝에
의리 없게도 고만 줄줄이 공범들을 다 불어 재낀 것이지.
다음날 이 명단은 동네로 고스란히 전달되었는데,
하도 이런 일이 잦은터라 요넘들 못된 버르장머리를 완죤히 고칠라고 그랬던지
우예가이고 동네 방송을 통해 명단을 공개 해 뿌맀는기라. ㅎㅎㅎ
방송으로 호명을 당하던 순간 해당 친구들은 온갖 고난과 수모를 면치 못했는데,
두 넘의 경우만 간략히 소개하만 이렇다.
친구1 ; 시원한 사랑마리에서 아부지가 바리깡으로 대가리를 깎아주고 있었는데,
마침 그때는 대가리를 한 절반쯤 깎은 상태였다.
혹시나 하고 방송에 귀를 기울이시던 아부지는 가~ 이름이 나오자마자
고만 흥분하신 나머지 머리 깎던 넘 등때기를 ‘펑’ 소리가 나도록 때리자,
놀란 그넘은 그 질로 바로 꽁지가 빠지라고 내 빼 삐맀다.
히히히... 결국 그넘은 대가리를 반쪽만 깎은 채로 똑 쥐 뜯어먹은 꼴을 해서
미칠 만에 집에 들어갈 수 있었어....// 히히히...아이고 우수와라~~!!
친구2 : 다른 애들 명단이 죽~나오기 시작하자 자식에 대한 신망이 대단했던
그 친구 어른은 혹시라도 거~ 못된 행고다지 하는 넘들 틈에 끼있으까 봐
단단이 주의를 주시느라고, “야~야~, 너는 댕초 저런 넘들하고 놀만 안된다~!!”
하는 점잖은 말씸이 끝나자 마자, 아무개~하고 이름이 턱 나오는데 그기~ 바로
그넘인 것이었다.
불같이 노하신 어른은 대분 뒤안으로 쪼차가시민서 지개작대기를 찾았고,
그넘은 하매 대문밖으로 줄행랑을 놔 삐맀는데,
암매 모르긴 해도 근 미칠 동안 집 근방에 얼씬도 못했을끼다.
에이~~마한넘들~~!!
9.요새 이야기가 자꾸 히딴 방향으로 나가는데 에이~ 난도 몰라~!!
나오는 대로 지끼다가 종 쳐 삐릴챔이라!
미칠 전에 우리 상담실에 한넘이 강제로 잡혀 와서 상담이 의뢰되었어.
이넘이 중2인데 옆에 있는 여학생들을 자꾸 찝쩍거리고 어델 만질라카고,
히안한 소릴지끼 싸서 아~들한테는 ‘변태’라고 불리는 넘인기라.
난, 퍼뜩 그 원인을 두 가지로 추론해 봤는데,
하나는 ‘충동조절장애’니 하는 거 매로 심각한 심리적 문제가 있거나,
아니만 또 그니리 ‘음란물’인가 하는 거 땜에 일어난 거라 추측했지.
여러 가지 심리검사를 해 본 결과 모두 정상으로 나왔고
상담을 해 본께 이넘이 거의 맨날 음란물을 무방비 상태로 봤던 것이라.
시상에 사춘기에 접어든 넘 방에 인터넷을 연결한 컴퓨터를 두고
부모는 맞벌이 하민서 먹고 사느라 정신이 없었으니,
이기~ 미친넘한테 칼자루 쥐어 준거나 다름없었던 기지.
말이 나왔응께 하는 말이지만 우리가 그니리 사춘긴지 오춘긴지 할 때는
음란물이란 기 어데 있었던가?
고작해야 헝아들이 보던 ‘주간경향’이니 ‘썬데이 서울’이니 하는 것의 표지에 실린
무명배우들 사진인데, 수영복이라야 무르팍까정 오는 사리마다거튼 걸 입고
찍은 사진을 가마이 훔치 보고 ‘헬렐레’ 하곤 했던 것이라.
근데, 그때는 요새 매로 집에 마캉 다 목욕탕이 없던 시절이라,
목욕은 남여를 불문하고 동네 냇가에 나와서 할 수 빼끼 없었어.
그러니 목욕하던 장소도 남여가 따로 정해져서 남생도(이름도 군대식) 목깐통과
여생도 목깐통으로 구분되었고, 여생도 목깐통을 지나갈 때는
백지 가재미 눈까릴 뜨고 여분대기를 힐끗 거리민서 살피기도하고 그랬어.
지금 생각하만 대낮에 똑바로 치다 봐도 뭐가 보일까 말까 할낀데,
쌔까만 밤에 그것도 부꾸루와서 올키 치다보도 못하고 힐끗거리며
지나 가민서 그기 ~ 뭐가 보이기나 했겠어 그래.
그때는 그래도 한창 성에 대해 관심이 많은 때라 맨날 머시마들 찌리 모이만
이상한 음담패설을 늘어놓기도 하고,
그래도 쪼끔 나이 먹은 헝아들은 뭔 누무 도통 이해도 안가는
요상시런 소리들을 재끼싸만 거~ 고만 귀가 솔깃하기도 했던 기라.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넘이 과감한 제안을 하는 것이었어.
밤에 여생도 목깐통을 한번 훔치 보자는 것이었지.
우리들은 고만 춤을 꼴까닥 삼키민서 대 찬성을 하고 그날 밤에 행동으로 들어 간기라.
칠흑거치 어두운 밤이라 작전에는 딱 알맞은 날이라,
우리들은 낮은 포복으로 살살 기어서 여생도 목깐통 위쪽으로 올라갔어.
거게서 한 대 여섯 넘이 옷을 홀딱 벗고 물에 끼 들어가서
대가리만 내놓고 냇가 아래로 살살 니리 가는데,
왜 그키 우리들 꼬라지가 우수운 지 웃음을 지우 참고 있었어.
한참을 니리가다 본께 드뎌 여생도 목깐통까지 가찹기 왔는데,
어둠속에서 자시이 본께 누군지 도통 알 수 없는 및 명이서 막 떠들고
수다를 떨어 재끼민서 한창 목깐을 하고 있는기라.
터질 듯한 가슴에 숨을 죽이고 쪼끔 더 아래로 살살 니리 갔디이,
뭐가 희미하기 사람모습이 약간 보이는데,
이건 뭐 참말로 숨이 턱 막혀 뒤질 지경인기라.
근데, 마침 목깐하던 사람들 중에 한사람이 얼찐본께 뭐가 물위에
시커먼 기 둥둥 떠 있는 거 아이겠어.
히히히..... 그기 뭐겠어 그래, 바로 우리들 대가빠리지.
그런께 자기들찌리 지끼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는데, 내용은 이래여.
“저기 뭐라~ 저 우예 시꺼먼 기~!”
“뭐긴 뭐라, 둥굴 토막이겠지 뭐!”
“아이라, 뭐가 있는 거 거테여~!”
“아이, 있긴 뭐가 있다고 그래여~!!”
“가마이 있어봐, 내가 돌삐 한번 떤지보께~!”
이래민서 언나~아 머리통만한 돌삐를 휙 집어 떤지는 기라.
허걱~!!
이기~ 대가빠리에 정통으로 맞았으만 뭐 우옐 뿐 했어 그래?
놀래기도 하고 각중에 울매나 우숩든지 고만 참질 못 해 “푸하하~!!”하곤 대 여섯 넘이
물에서 뛰쳐나와 내 빼 삐린께 이기~ 울매나 황당하고 놀랬겠어 그래.
“저~ 마한 배라 쳐 묵을 눔의 시끼들~!!” 이래민서 돌삐를 막 집어 던지는데,
거기~ 한넘 발뒤꿈치에 정통으로 맞은 기라.
쩔뚝거리민서 뺄가 벗은 채로 꼬치를 달랑대고 똥쭐이 빠져라 토낐지 뭐.
그래서 거~ 우예가서 옷을 지우 찾아 입고,
바로 동네로는 차마 못 끼 들어오고 아채보를 건네서 신작로를 타고 왕릉까정 갔어.
거~서 다시 속개뜰을 거쳐서 밤에 솔밭곡을 넘어서
아채까정 가마이 끼 들어오니라고 무수와 뒤지 뿐 했어.
마한!!
개 코도 아무것도 본 것도 없이.......
.........계속..........10.마한 넘들이 나 없을 때 그키 욕을 해 재끼놓고는
오늘 아적부터 장창을 한번 썼디이 전부 무수와서 코끄티도 안 보이네.
그나저나 하던 이야기는 계속지끼야 되겠지?
사실, 이기~ 원래는 숭막의 청년기 시절까정 이야기가 전개 되어야 하는데,
어릴 때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께 거~ 참 희안하기도 잇날 기억이 샘물 솟듯 하네 그리.
본래는 질어야 한 15부작 정도로 생각했지만, 이래다가는 30부작은 일도 아니겠어.
에이~모르겠다. 또 히딴 질로 빠져보자!
잇날에 아~들이 먹을 끼라곤 기껏 라민땅이나 뽀빠이, 쫀디기, 감빵,
월남방매이, 오가당, 눈까리 사탕 뭐 그런 것 이었지만,
그래도 기중 맛있고 만만한 기 뭐니 뭐니 해도 엿이었어.
요새는 뭔 ‘엿 먹으라!’카는 히안한 욕이 있는데,
그 맛좋은 엿을 먹으라는 기 왜 욕이 되는지 모르겠어.
아~참! 이기~ 먹는 이야긴가?
먹는 이야기는 월희 히장이 지끼고 있는데.......
에이~~나도 몰러, 닌장~ 먼저 지끼는 넘이 임재지 뭐.
하이튼 다른 꽈자거튼 거는 돈이 있어야 사 먹는데, 촌에 돈이 어데 있겠어, 그래.
엿이라카는 건 그니리 돈이 없어도 고물딱지나 하다못해 고무신짝 떨어 진거라도
한커리 갔다주만 쪼만침이라도 띠 주기 때문에 그래도 쉽기 맛볼 수 있는 거였어.
그렁께 아~들 있는 집은 그니리 고물이나, 쇳 동가리, 빈병, 떨어진 고무신짝,
뭐 그런 거는 전부 엿 장사 가져다 조 삐리서 남아나는 기 없었고,
어떤 넘은 멀쩡한 아부지 고무신 가져다주고 엿 바꿔 먹었다가 쪼끼 나기도 하고 그랬지.
더구나 형제가 많은 집은 고물 거튼 건 구경도 할 수 없게 되다 본께,
웃마 광산에 까정 올라가서 멀쩡한 쇠 빠이뿌리를 쇠톱으로 짤라 가기도 하민서
하이튼 빌 x랄을 다 하다가 급기야는 쌔비(훔쳐) 먹기 까정했지 뭐라.
저 ~ 멀리서 엿 장사 가시개 소리가 ‘쩡그렁 쩡그렁’ 나만
골목에 놀던 아~들은 순식간에 엿장사 리어커에 쭉 둘러서게 마련이고,
어떤 넘이 엿을 사 먹으만 백지 친 한척 하민서 ‘썬남만 조~!’를
연발하민서 쫄쫄 따라가기도 했어.
그것도 못 얻어먹은 넘들은 리야까 옆에 바짝 붙어서 춤을 찔찔 훌리민서
엿 방티 옆에 붙은 밀가루를 시커먼 손가락으로 찝어서 날람날람 쳐 먹기도 하다가,
엿 장사가 한눈파는 사이에 실구머이 엿 한가락을 얼릉 쌔비서 갯주머이에 넣고는
눈치를 힐끗힐끗 보다가 합바지 방구새듯이 실무시 빠져서 꽁지가 빠져라 내 빼곤 했지.
우리 동네에 주로 오던 엿 장사는 약간 젊고 엄청 허풍이 씬 ‘싸구리 엿 장사’하고,
키가 짝달막하고 약간 어눌하게 생기 가이고
엿 방티를 맨 날 지게에 지고 댕기던 ‘곰패이 엿 장사’,
머리가 허옇고 연세가 아주 많아 동작이 느린 ‘할바이 엿 장사’ 이렇게 세 명이었어.
싸구리 엿장사는 아주 인심아 좋아 ‘까짓누무 꺼 마이 조야지!’ 이래민서
가시개로 엄청 길기 엿을 뚝 잘라 주는 칙 했지만,
사실은 엿이 아주 가느다란 한 걸로 봐서 시기 잡아 땡기서 늘여놓은 엿이었던 거 같아.
근데, 워낙 젊고 눈치가 빨라서 엿 쌔비다가 걸린 넘이 한 두 넘이 아니지만,
손바닥으로 중대가리 대갈통을 퍽퍽 소리가 나도록 및 방 패곤
엄청 큰 엿장사 가시개로 꼬치를 짤라 삐리는 시늉을 내곤 그걸로 끝이었어.
한두 개 썩 실쩍실쩍 쌔비는 걸로 성이 차지 않았던 우리들은
슬슬 간땡이가 부어서 드디어 작전을 짜기에 이르렀지.
작전이란 건 다른 기 아니고 아~들을 두 팻 장으로 농가서
한 무디기는 엿 장사가 오만 “엿 장사 똥 꾸녕, 나발 똥 구녕!” 이래민서
엄지손가락을 양쪽 볼태기에 갔다대고 손바닥을 피서 방긋방긋 돌리민서 신나기 놀리고,
엿 장사가 부예가 나서 그넘들을 막~ 따라가만
숨어있던 나머지 한 무디기 넘들이 엿을 들고 토끼는 것이었어.
참~나~! 만만한 기 뭐라고,
가마이 있는 엿 장사 똥구녕이 왜 나발 똥구녕인지 몰라. 히히히....
하이튼 동작이 느린 ‘할바이 엿장사’한테는 이 방법을 꽤 마이 써먹었어.
‘곰패이 엿장사’는 엿 방티를 지개에 지고 댕긴 데다가
아무리 열나기 놀리도 도통 반응이 없어 열나기 놀리기만 하고 엿은 못 훔치고 말았지.
우옛든 요걸로 및 번 재미를 본 이넘들은 참말로 겁 대가리 없이
젊고 기운 좋은 ‘싸구리 엿장사’를 놀맀던 기라.
아주 성질이 괄괄했던 이양반이 예상했던 대로 나발 똥구녕이라는 소리에 흥분해서
놀리던 아~들을 단번에 쫒아가 붙잡아서 고넘들을 뻥뻥 뚜딜기 패고 있는데,
한 넘이 간땡이가 부었지 그래, 엿을 한 두 개도 아니고,
방티 채로 들고 골목으로 토낐던 기라..
근데, 골목을 급히 뛰서 돌아가다가 볼일 보러 나오시는 누 집 아부지하고 탁~ 바티리서,
고만 코가 깨지라고 땅바닥에 자빠져 뿌맀지 뭐라.
마한~!
엿 방티는 땅바닥에 태기가 쳐 져서 바닥이 온통 허~~옇고,
방티들고 토끼던 놈은 그 어른한테 고만 맥없이 딱 붙들리고 말았던 기라.
히히히.....
두말할 꺼 없이 그넘은 동네 골목에서 인민재판에 처해졌고,
엿 방티 값 까정 다 물어 줬음은 물론 뒤지도록 맞고 집에서 미칠 쪼끼났지 뭐.
에~엣~~망고리 거튼 넘들~!!
.........계속..........11.부처님 오신 날이 아래께 지나갔지만, 불교의 핵심 경전인 반야심경에 보만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이란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 “불구부정”이라는 것은 ‘空이라는 차원에서 보만 더러운 것도 없고
깨끗한 것도 없다’ 뭐 그런 이야길 끼라. 즉, ‘더럽다, 깨끗하다’ 하는 것도
인간의 관념과 알량한 분별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인 것이라.
아적부터~ 뭔누무 거북이 등때기에 터라구나는 소리냐?
내가 시방부터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하는 장소인
통시에 대해서 지낄라 카는데, 모도 “이구~ 더리라~!” 이래민서
실구머이 지민하민서 피해가지 마라는 심오한 뜻인 것이다.
지금이야 모도 현대식 건물에 깨끗한 수세식 통시들을 사용하지만,
잇날에는 마캉 다 바가지로 망웃을 퍼서 x지게로 져 날라야 되는 퍼세식 통시였지.
이기~ 보기도 뭣하고 냄새도 마이 나지만 불편한 기 한두 가지가 아니였어.
우선 쪼그리고 앉아서 볼 일 보는 자세부터가 영~ 거석한데,
오래 앉아 있으만 변비라든지 내가 한동안 아주 찢어지는 고통을 겪었던
그니리 치x 거튼 빙이 있는 사람은 암메 무르팍이 아파 대다이 거석 할 끼라.
뿐만 아니라 잇날부터 처갓집하고 통시는 먼 기 좋다케서 밤에 자다가
배가 아프민서 소식이 살살 오만, 참말로 귀찮기 짝이 없는 것이라.
더구나 겨울 게 찬바람이라도 휙휙 불 때 그 한데서 이래~까고 앉아 있을라카만,
궁디가 울매나 시리고 그니리 R두 쪽이 바짝 쪼그라들어
똑 바짝마른 추자거치 땡땡해져서 얼어터질 거 거튼 기
이기~ 보통 고역이 아닌 것이었어.
말이 나왔응께 하는 말이지만 난도 어릴 때 한때 밤만 되만 그니리 볼일이 보고 싶은데,
그 깜깜한 밤에 통시까정 가서 볼일을 볼라만 울매나 무수운가 말이라.
댄찌(후라쉬)라도 있으만 좋았겠지만 촌에 그런 기 어데있겠어 그래.
다황을 가이가만 핀하겠지만 그것도 히퍼기 때문에 기껏 해야
신문조우 쪼가리에 불을 붙이 가이고 가다가 고만 중간에 다 꺼자 뿌리고 그랬지 뭐.
더군다나 통시에는 온갖 무수운 전설이 퍼져 있는데,
달걀귀신인지 뭔지 하는 아주 잇날 전설에서부터,
볼일을 끝내고 마무리 작업을 할 때 쯤 각중에 밑에서
시커먼 손이 올라와서 슥~ 딲아 준다는 설에다가,
뭔누무 귀신이 힛바닥을 낼름 내 밀고 “빨간 조우쪼가리 주까,
파란 조이쪼가리 주까?“ 한다는 최근의 전설까정 아주 다양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어.
그래서 여북했으만 할매가 달구집에 절을 시번하만 밤x이 안 매룹다 카시서
그 말씸을 철썩거치 밑고 야밤에 달구새끼 한테 대고 절 까정 다 했으까? 마한~!!
근데, 참말로 디기 더룹고 거석하기 짝이 없는 거는 말이라,
통시에 앉아서 이래~ 볼일을 보는데,
그니리 덩거리가 밑에 떨어지민서 ‘텅’하는 기분 나뿐 소리와 함께
아주 거석하기도 뭔 물이 펑~ 튀기민서
궁디에 턱 묻어 뿌리는 아주 기맥히는 일이 종종 발생한단 말일쎄. 마한~!
망웃을 퍼고 울매 안 지난 통시일수록 요런 현상이 아주~ 심했어.
왜냐? 건디기는 다 퍼고 밑에 물만 남았기 때문이거든. 히~~!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어도 이건~ 참말로 보통일이 아인기라!!
그렇다고 ‘에이, 마한니리 ~ 기분 참말로 더룹네!’ 이래민서 부예만 내서는 안 되지.
사람 대가빠리라 카는 건 근대 적기 나가까봐 폼으로 붙이 논 기 아이라,
쓰라고 있는 거 아이겠어?
x물이 튀지 않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해결법은 신문쪼가리 거튼 걸
밑에다가 툭 떤지 놓고 누는 방법이 있지만,
조우 쪼가리가 울매나 귀한건데 그럴 끼 어데 있겠어?
그런께 기중 쉽게 구 할 수 있는 호박잎이나
토란 잎사구를 깔만 간단히 해결되는 기지 뭐.
근데, 볼일 급해 죽겠는데 그런 거 구할 여가가 어데 있겠어.
마한, 그랭께 머리는 써라고 있는 기지.
대충 5가지 방법이 있는데 너무 이야기가 질어서 간략히 요약하만 이래여.
1. 스텝(step) 법 : ‘힛 앤 런(hit and run)’이라고 할 수 있지. 덩거리가 떨어지는 순간 발을 좌우로 옮기민서 궁디도 좌우로 이동시키만 되여. 운동 삼아 재미있잖아?
2. 숏 컷(short cut) 법 : 내용물을 아주 짧게 짤라서 떨어지는 덩거리를 작게 하는기라.덩거리가 작은데 튀기 봐야 울매나 튀기겠어?
3. 롱 컷(long cut) 법 : 아주 질기 짤라 삐리는 기라. (기양 밑으로 쑥 빨리 들어갈 끼라.근데, 그니리 영어로 써서 모도 알란지 모르겠네. 저 웃마 젤이뻐 선배님이나 아시까? 히히히....... )
4. 타잔 법 : 천장에 줄을 매고 타잔 매로 타고 가민서 통시에 빠줏고 내 빼고,
빠줏고 내 빼고.... (암메, 이기~ 기중 재미있지 싶어! . )
5. 압축공기 발사 법 : 덩거리가 떨어져서 x물이 튀어 오르는 순간 강력한 방구를 끼 재끼서 밀어내는 방법이라.
모도 디기 재미있지? 히히히....
에~~엣~~~냄새~!
마한~!!
...........계속.......
12..
인간이 느끼는 즐거움은 참으로 많은데,
어떤 넘은 먹는 즐거움이 기중 좋다카민서 아주 원초적 본능(?)을 들어내는가 하만,
또 어떤 넘은 사랑하는 즐거움이 어째니 하민서 지법 고상한 칙 하기도 하지.
그러나 무엇보다 배설의 쾌감(?)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니,
그래서 Maslow인가 하는 양코배기 염감재이는 ‘욕구의 위계’니 뭐니 하는 이론에서
먹고 자고 싸고 하는 욕구를 기본적 욕구(생리적 욕구)라 명명하고
이것이 만족되어야 또 다른 고상한 욕구가 생기는 법이라고 한 것이라.
그래서 이 숭막도 일찌거이 이런 점을 간파하고 언젠가
‘금강산도 볼 일 본 후’라고 하는 불후의 명언을 남기지 않았던가?
우옛든 요런 ‘배설의 쾌감’은 참는 시간에 비례해서 쾌감도 증가하기 마련인데,
밀리는 고속도로에서 참고 또 참다가 지우 휴게소에 도착해서
후다닥 허리빵을 풀고 단다이 막아놓던 문을 열고 봇물을 쏟아낼 때의
그 쾌감과 시원함은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 아니겠어?
문제는 그 엄청난 쾌감 후에 뒤처리를 할 조우쪼가리가 없다면
이기 ~ 또 울매나 엄청난 불쾌감이 밀려 올 낀가 말이라.
이때, 어떤 넘은 사리마다를 벗어서 딲기도 하고 양말을 벗어서 딲기도 한다는데,
그런 구태의연한 방법 외에 퍼세식 통시에서 x물 피하는 거 매로 여러 가지
다른 방법이 있긴 하지만 맨입으로는 몬 갈키준께 각자 연구해서 리플 달아 제출해봐.
근데, 시방 내가 뭔 이야길 지끼고 있는 거여?
어제부터 촌에 있는 퍼세식 통시에 대한 이야길 지끼고 있는 것이잖아?
마한, 통시 이야기 지끼는 걸 정당화 씨길라고 서설을 너무 질기 풀었네 그리.
우옛든 그때는 밤에 통시에 갈라만 시기 무수왔고,
하이튼 일부러 밤에 통시 가는 넘을 놀래낄라고
가마이 숨었다가 각중에 댄찌(후라시)를 턱쪼가리 밑에다 갔다 대고
힛바닥을 날름날름하민서 귀신 숭내를 내서 기겁을 하도록 맨들기도 하고 그랬어.
에~ 그렁께 어제 이야기에서 x물 튀기는 거 방지하는 법을 갈키 줬지만,
겨울에도 또 이니리끼 골치 아픈 문제가 하나 생기는 기라.
뭔 이야기냐?
저울게 날씨가 추울때는 이 누무 통시에 볼일을 보고 나만 이누무끼 금방 얼어붙어 삐리서, 똑 피라미드 거치 점점 높아지는 기라.
그래다가 궁디를 찌를 정도택 되만 결국은 이누무껄 뚜두리 깨야 되거든.
닌장~ 남여평등 운운하고 떠들어 대지만 항상 깨끗하고 고상한 건 전부 여자 몫이고,
더룹고 힘들고 지저분한 일은 전부 머시마들이 해야 되는 일이라.
참말로 욕지기 나는 일이지만 그니리 꼴꼴난 알 두쪽 찬 죄로 해야지 뭐 우예여.
마한, 요넘을 지게 작다구를 가이고 퍽 뚜디리만
누우런 황금 가루가 눈부시게 티기민서 부셔져 내리는데,
요것도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고 염축으로 살살 요령껏 뚜두리 깨야 되는기라.
너무 글력이 씨고 의욕이 넘쳐흘러 고만 시기 뚜디리 패서
아름다운 황금색 가루가 얼굴로 퍽 튀기 뿌리만,
말도 못하기 묘한 느낌과 함께 참말로 기분 더루운 기라.
에이~닌자앙~! 참말로 빌누무껄 다 해봤어!
금생에는 좋은 업을 쌓아서 지발 다음 생애엔 있는 집에 귀하기 태어나서
세상에 이런 천한 일은 있는 줄도 아예 모르고,
모카커피 향에 젖어 그저 문학과 인생, 철학, 사랑, 음악거튼 이야기나 지끼민서
지법 우아하고 고상한척 하고 살아 봤으면 좋겠구만,
오늘날 까정도 맨날 숭막거튼 짓에다 뒤잖은 사기나 치고 댕기니
그것도 하매 말짱 글러 먹은 것 같애여.
근데 미칠 전에 가은가서 왕릉 살던 팅구를 만나서
‘너~들은 촌에서 나무도 한 짐 안 해 보고 큰 넘들이 뭘 알아?’ 이래민서 퉁을 좀 줬더이,
한참 뭔 이야기를 지끼는데 나름대로 다~ 애로점은 있었더구만!
허~!! 이 팅구가 왕릉3구 비탈에 살 때 x퍼든 이야기를 하는데 아주 예술이더라고.
그 팅구 왈,
요 망웃이라는 걸 펄 때는 냄새가 좀 나더라도 우선 x빠가지를 가이고
매 ~ 돌리 저어서 잘~ 섞은 다음에 x버지기에 안 흘리도록 살폿이 퍼 담아 가이고,
x지개로 지고 균형을 잘~ 잡아서 4분의 3박자 왈츠나 4분에 4박자 뽕짝리듬을 타민서
아주 ~ 예술적으로 걸어가야 안 쏟아진다 카더라고.
그래서 그 팅구가 그니리 x지게 지고 댕기민서 음악적 감성을 키와 가이고,
오늘날 그키 키타를 잘 팅기고 노래를 잘 한다카민서 노가리를 까는데,
십상 그럴 듯하기 지끼더라 캉께.
근데, 지가 워낙 심이 씨서 한 날은 한 버지기 이빠이 되도록
하도마이 퍼 담아 가이고 지고 니리가다가,
고만 x지게가 뿌러지는 바람에 고만 3구 비탈을 마캉다 x으로 칠갑을 해서
동네사람들의 엄청난 눈총과 비난을 받는 일을 저지르고는
물을 막 ~ 퍼다 흔치고 연탄재를 갖다 뿌리고 이래느라고 시껍한 사건이 있었다 카는데,
참말인지는 모르겠어.
마한, 그 지경이 됐으만 우예가이고 질바닥만 그키 x칠을 했겠어 그래.
사람은 더 하만 더했겠지. 이치가 안 그래여?
이크 ~~!! 이 이야기 아무한테도 지끼지 마라 켔는데 싹~ 다~지끼 뿌맀네.
마한!!
마캉 다 혼자만 알고 있어. 핑기지 말고!!
..........계속..............13.화~~아, 아적부터 열 받네, 이거~!!
내가 아래부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 해결 장소인 통시에 대해 이야기를 지낀께
“이구~ 더리라~!” 이카민서 나를 아예 그니리 x취급하고는 답글도 한 개도 안 달아주고,
내가 잠든 오밤중에 저~들찌리 만나서 월희 히장 핀만 들고 히히덕거리민서 놀았다 이기지?
뿌드득~!! 두고 보자~! 특히 관산댁이, 순자여사......
오~~냐 그래 너~들은 헤이즐넌가 해글런가 하는 코피향을 코끄티로 맡으민서
먹는 이야긴지 하는 그니리 꺼 가이고 고상한 이야기나 질래 지끼싸라!
어차피 세상에는 험한 일 하는 넘도 있어야 된께,
팔자거석한 나거튼 넘은 계속 하던짓으로 지저분한 소릴 지끼댈 챔인께.
마한~~!!==33=3=3=3=3=3부예~~!!=3=3=33흥분=3=33 열나 ~ 흥분!!=3=3=33
에~ 그러만 슬슬~~지끼보까~!!
오늘 지낄 이야기도 약간 지저분하긴 하지만,
여러 팅구들은 항상 불교의 여러 경전 중에서 액기스만 모아 놓은 ‘반야심경’의
‘불구부정’이라는 말을 명심하고 더룹다는 편견을 내 삐리고 진지하기 경청하길 바래여.
요새는 모도 도시물깨나 먹었다고 허물껀하기 해가이고 댕기민서 똥폼들을 잡고 있지만,
잇날에는 그니리 목구녕이 포도청이라 모도 힘들고 어룹기 살다본께
위생관념이니 그런 건 아예 생각할 여가가 개 코녕 만침도 없었던 기라.
그런께 아~들 해가이고 댕기는 꼬라지도 코를 찔찔 흘리민서
눈에는 눈꼽이 찌찌하게 끼고,
콧구녕에도 엄청난 양의 지하자원이 매장 되어있기 마련이었지.
시방도 그런 넘이 가끔썩 있긴 하지만 공부시간에 앉아서 지단한 손톱으로
콧구녕 속에서 엄청난 양의 석탄을 캐내는 거 까정은 좋은데,
이넘을 또 손가락으로 매 돌리가민서 비비가이고 경단거치 맹글어서
옆자리로 튁 ~ 팅기 삐리는 아주 숭악한 넘도 있었어.
손톱 밑은 씨커멓고 손에는 거북이 등때기거치 때가 덕지덕지 한데다가,
좀 뭣 한 넘들은 대가리에 씨가리가 허옇고 이가 실실 기 댕기기도 했어.
이기~ 심할 때는 거~ 독한 맹독성 농약인 디디치를 대가리에 흔치기도 하고
온몸에 허옇기 바르기도 했으니 이기~울매나 거석한 일이라 그래.
솔직히 그 시절에 살민서 “나는 이가 뭔지도 몰라여!” 요래는 넘이 있다카만,
그건 100% 가짓말이라. 뭐시라, 100%?
이기~ 어데서 마이 듣던 소린데!
이구~~ 무시라, 또 저 웃마 100% 헝님 쫒아 오실라. 귀 디기 밝으시여!=3=3=3=3
하이튼 하도 씨커멓기 해서 안 씻고 댕긴께 선생님이 불시에 ‘용의검사’를 하는 날이면
거 ~ 추운 한 저울게 눈에 가서 손을 비비민서 씻어대고 난리를 쳤어.
초딩 때 한 번은 용의 검사를 했는데 하도 안 씻고 말을 안 들어서 그랬는지,
시수 안하고 손에 때 많은 넘들을 골라서 다른 교실을 한 바퀴 돌리민서
우사를 씨기기도 했어. 모간지에다가 “나는 까마구 사촌!” “까마구야 놀자!”
“때 좀 사시요~!” 뭐 이런 문구가 새겨진 팻말을 걸고....... ㅎㅎㅎ
그때는 학동들 건강을 위해 나라에서 챙기 준 기 회충약을 공짜로 믹이 주는 것이었어.
회충이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채변 검사라 카는 걸 하는데,
그기~ 참말로 웃지 못 할 일이 대다이 마이 벌어지는 기라.
이걸 할라만 통시에 가서 하이튼 거석하고 뭐 우째고 해서 다황으로 썬남 찍어 가이고,
봉투 안에 있는 비누루 쪼가리에 묻히서 갔다내야 되는데,
아주 공정이 번거로운데다가 ‘에이~ 더리라!’ 이런 생각이 들어 왠지 하기 싫었는 기라.
더군다나 학교 가이가서 제출할 때 지지바들이 치다 보까 봐 책으로 요래 숨카 가이고
실무시 가서 주 넣고 오는데도 백지 부꾸루와서 낯 빤대기가 화끈거리는 기라.
그래서 끝 까정 안 내고 버팄는데 선생님이 그날 까정 안 내는 넘은
싹~ 다 패 지긴다 카시민서 바깥으로 쫒아 내시는 기라.
약빠른 넘들 몇 넘은 학교 밴소에 가서 통시다리 다 배리민서 해결을 했고,
숭막같고 어물한 우리들은 우예까 하고 찌웃거리고 댕기다 본께,
질가에 개똥하고 소똥이 쌔빌렀는 기라.
히히히... 각중에 주디가 바소가리거치 째지민서 “바로 요기라!!” 이래민서
소똥을 꼬장막대기로 찍어서 담아 가이고 제출해서 안 뚜디리 맞았지 뭐.
문제는 그로부터 한 참 지난 후에 벌어졌어.
검사 결과가 나오고 회충 있는 넘들의 명단이 불려지는데,
소똥을 묻히 냈던 넘들도 마캉 다 회충이 있는 넘으로 판명이 된 것이라.
나~~참~!!
그렇다고 선생님한테 소똥냈다고 말하만 맞아 뒤질끼고 기양 아무소리도 못했어.
근데, 회충약을 농가 주고 집에 가서 먹으라카만 요넘들이 또 안 쳐 먹으까 봐
선생님이 손수 주전자에 물을 떠다 보는 앞에서 먹으라 카시는 기라.
마한~! 참말로 고만 내 빼 삐리고 싶더라고.
할 수 없이 먹었지 뭐!
씨~ ~~양도 디룹기 많아여~!! 한웅큼 잔뜩 되더라고........
그니리 소똥에도 회충이 있는지 누가 알았겠어 그래!!
에엣~~ 마한~!!
..........계속.........14.어릴 때 기억은 누구한테나 소중한 것이고,
밤을 새워가며 지끼도 미칠 밤을 깔깔거릴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지.
그러나 돌이켜보면 아픈 상처 하나씩 동여 메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일 끼고,
안직도 아무한테나 터놓고 지끼기 싫은 것들도 마이 있을 끼라.
그러나 인생의 절반을 훌쩍 넘겨버린 지금은 그것마저도 감싸 안으며 살아야 되겠지.
그 당시에는 모도 살기가 힘들었지만, 특히 촌에서 농사짓는 집일수록
돈 기경하기가 더 힘들었던 것 같아여.
그러이 핵교 갈 때 학용품이니 하는 것도 지대로 챙기 갈 수 없었고,
매월 몇 푼어치썩 내는 기성회비니 하는 것도 제때에 낼 수 없는 형편의 팅구들이 많았어.
나 역시도 학교에서 미술시간이 기중 싫었는데, 이유는 준비물 때문이었지.
미술 준비를 할라만 때로는 달걀을 팔아 가이고 지우 크레용 거튼 걸 장만하기도 하고
그마저 안 될 때는 준비를 못해서 복도에 쫒겨 나기도 했으며,
때로는 한 시간 내내 벌을 받기도 했던 것 같아.
그나마 끼가 좀 있는 거 거트만 준비해 온 친구들 스케치북 뒷장이라도 한 장 얻고
크래용은 좀 빌려 쓰고 하만 됐지만, 나거치 거죽은 넘은 그만한 요령도 없었지 뭐.
그러니 음악, 미술과목 성적은 매번 미뻘에 양떼만 몰고
왔다갔다 하민서 댕길 수 빼끼 없었어. (성적이 ‘미’ 아니만 ‘양’, ‘가’라는 이야기라!)
마한, 이기~뭐 내 자랑거테서 이야기를 안 지낄라카다가 뭐 말이 나왔응께 하는 말이지만,
시방은 내가 울매나 음악을 좋아하고 또 노래는 울매나 잘하느냔 말이라!!
내 열여덟번째 곡 "꽃 바람여인" 직이잖아? 안 그래여??
마한~!! 왜 대답이 없는기라??
아이~ 말이 나왔응께 하는 말이지만 그때 지법 형핀이 좀 돼서
요새 아~들 매로 피아노 학원이니 뭐 그런 거는 아니더라도 하다못해 일찌거이
풍금이라도 하나 사 줬으만 지금쯤 이 숭막이 세계적인 음악가가
되지 마라는 법이 어데 있겠어, 안 그래여? 마한=3=3=3흥분!!=3=33
하지만 그 때는 풍금이니 하는 거는 참말로 달구새끼 뿔따구에 터라구 나는 소리고 ,
그니리 및낱 되도 안하는 기성회빈지 육성회빈지도 지 때 못 내서 매번 담임선생님한테
호명을 당하만 똑 외상값 띠 먹은 놈 맨치로 왜 그키 부꾸루운지 참말로 환장할 내기였어.
마한, 이름만 부르만 다행지만 어떤 때는 심지어 집으로 쫒끼 나기도 했는 걸 뭐.
중핵 때는 전교 조회 시간에 교장선생님이 공납금 안 낸 넘들
전부 앞으로 나오라고 한 적도 있는데,
한창 사춘기인 그 시절에는 참말로 쪽팔려 뒤질 지경이 아닐 수 없었어.
더구나 지지바들도 있는 데서 말이라.....
마한, 요새 핵교에서 그런 일이 인나만 암매 9시 톱뉴스로 나가고
온 나라가 들썩 거리민서 생 발광을 할 끼라.
그런께 우리나이쯤 되는 사람들 중에는 이런 것들이 안즉도 가슴에 한이 되서
술 한 잔 썩 먹고 집에 오만 자는 아~들 뚜두리 깨와서
일장 훈시할 때 쓰는 주요 레파토리가 되기도 한다는 구만.
그 레파토리는 하도 여러 번 지끼서 대가리만 꺼내만
아~~들은 하매 다음이야기가 뭐 나올지 환하게 꿰차고 있는데,
내용은 대충 이럴끼라.
“내가 너~들만 할 때는 먹을 것도 올키 못 먹고................중략......
너들한테 산에 가서 나무를 해오라 카더나, 밭에 가서 일을 하라 카더나?
소를 띠끼라카나, 시미기를 하라카나?
대관절 너들이~ 부족한기 뭐라? 근데, 너들은 왜 그키 공부를.......
.............................중략.............
그러민서 핑소에는 용돈 하나도 안주다가 만원짜리 팍팍 꺼내주민서 기마이 써다가
다음날 다시 회수하는 아바이도 있데여.
사실은 잇날 어느 때 누구 모습이라. ㅎㅎㅎㅎ
팅구들 모도 오늘 저녁에는 씨구운 이슬이라도 한잔하민서
인제 그런 恨은 풀어 버리자고요. 요새 아~~들도 울매나 불쌍한데........
................계속................ 15.테레비가 없던 잇날에는 기경꺼리가 귀해 놓은께
뭐 쪼만침만 희안한 기 있어도 모도 삑 둘러서서 기경을 하곤 했어.
하다못해 장날 엿장사가 가시개 장단이라도 잘 맞추민서 썰을 풀어 재끼만
거~도 빙 둘러서서 기경을 하고,
약장사라도 오는 날이면 고만 거~ 혹해서 궁디를 땅바닥에 퍼질고 앉아
그니리꺼 기경하다가 촌넘들은 집에 늦게 가서
시미기 안 해났다고 뒤지기 혼나기도 하고 그랬지 뭐.
약장사 기경이라케야 그저 북이나 치고 가끔썩 차력이나 한번 보이주고,
모간지에 굵은 비얌이나 감아재끼곤 하는건데,
그니리 끼 요새보만 무신 기경 축에나 들겠어 그래.
그래곤 뭔 누무 엄청시리 재미난 걸 곧 보이줄 듯 말 듯 하민서
자꾸 약이나 선전 해 쌓고,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 하민서 아무 돈도 안 되는
우리들은 갖은 구박을 받아 가민서 기경을 할 수 빼끼 없었던 기라.
그래도 가끔썩 원시이라도 한 마리 몰고 온 날이만 고넘 재주부리는 거 치다보느라
주디이를 힐렐레 벌리고 춤을 질질 흘리민서 똑 등시거치 해 가이고,
고만 정신이 홀딱 다 빠져서 해가 빠지도록 기경하다가 오는 기지 뭐.
고무다리 밑인가 소전 근방에 천막을 친 가설극장이나 써커스 같은 기
들어오기도 했는데, 요건 참말로 촌넘들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었어.
밤에 문디 띠서리거치 끌어 모이 가이고 논틀로 밭틀로 들고 뛰민서
왕릉까정 가서는 백지 다른 마실에서 온 지지바들을 힐끗 거리민서
우예 히야까시라도 한분 거석 해 보까하곤 얼쩡거리기도 했지만,
마캉 다 숭막거튼 넘들이 감히 어데 말이나 한분 붙이보기나 했겠어 그래.
백지 헛물만 키는 기지 뭐.
가설극장에서 상영한 영화라는 기 대체로 성웅 이순신, 장화홍련, 홍길동 전,
뭐 그런 것일낀데, 그누무 필림이 하도 낡아서 그런지
화면에 우옌 비는 그키 와 재끼는지 무신 내용인지 도통 알지도 못하겠고
그것도 잘~ 나가다가 쪼끔 재미있을 꺼 같아지만,
고만 각중에 불이 턱 꺼지민서 끊어져 삐리기 일쑤인기라.
그래만 요상시런 소리를 끽끽 질러대는 넘, 휘빠람을 나발거치 불어 재기는 넘,
고래고래 괌을 지르민서 욕을 해대는 넘, 돈 내 놓으라민서 소리를 지르는 넘 등등
모도 뚫린 주디이라고 한 마디썩 해 대다 보만 운제 그랬냐는 듯이 불이 들어오고.......
그니리 장화 홍련인가 하는 거는 한을 품고 죽은 처녀 구신이
파란 불빛을 받으민서 하얀 소복을 입고 지단한 머리카락을 풀어 재끼곤
뒤로 요래~~서 있다가 덧니가 툭 튀 나온 이빨을 들어내고 주디이에 피를 질질 흘리민서
각중에 홱 돌아 서만 고만 울매나 무수운지 기겁을 해 재끼는 기라.
그래도 뭐니 뭐니 해도 질 기경 할만 한것은 써커스라 썼어.
아슬아슬한 사리마다에 살양말을 신고 뽀얀 분단장을 한 아주 머석한 여자들이
발통이 한개 빼끼 없는 자장구를 타고 돌아 댕기고,
어깨에 장대를 곧추 시우고 그 우에 사람이 올라가서 꺼꿀로 매달리는 장면,
칼을 입에 물고 그 우에 오봉을 얹고 또 그 우에 꼬뿌를 얹어서 계단을 올라가거나,
그 높은 줄을 타고 댕기고 그네를 이리저리 옮기 타는 장면 등은
고만 촌넘들 혼을 홀딱 다 빼 놓기에 충분한 것이었어.
그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인물이었고 나는 그이들은 사람이 아니라
하여간 뭔가 ‘특수한 머시기’라고 생각을 할 정도 였어.
근데, 이누무 가설극장은 천막을 치고 했기 때문에 돈 없는 넘들은 천막 주변을
실실 돌아 댕기민서 눈치를 힐끗힐끗 보다가 잽싸기 천막을 들추고
쥐새끼 같이 안으로 쏙 끼 들어가서 꽁짜기경을 하는 넘들이 많았어.
난도 돈이 아까와서 및 넘과 작당을 하고 천막을 들추고
안으로 쏙 끼 들어간 거 까정은 성공했는데,
닌장~ 안에서 주인이 턱 버티고 있을 끼 뭐라.
결국, 손바닥으로 뒤통시 및 방 뻑뻑 소리가 나도록 맞고
다시 바깥으로 찌끼나서 돈 내고 들어갔지 뭐.
그니리 꽁짜 입장에 성공했으만 월남 방매이를 쭐쭐 빨고 쫀디기를 쪽쪽 째 먹으민서
그 먼 아채 천방길을 룰루랄라 올라 올수 있었을 낀데 말이라.
마한~!!
...........계속......16.
요새 아~들은 그니리 학원이다 과외다 하민서 맨날천날 공부만 그키 해 재끼야 되이,
온갖 저지리를 다 하민서 농띠를 피우고 큰 우리 때에 비하만 참말로 불쌍하기 짝이 없어.
핵교 때 그래도 기중 재미난 것 중에 하나인 소풍인가 하는 것만 해도 그래여.
요새는 뭔 누무 소풍이 어데 놀이 공원인지, 무신 랜드인지 하는데를 시시마꿈 와서는 삐삔내기로 그니리 놀이기구 및 가지 타고는 히져 뿌리니 그기~무신 소풍이라 그래.
우리 때는 핵교 앞에 들어서만 우예 알고 왔는지 장사들이 니아까에 온갖 꺼를 싣고
진을 치고 있고, 하매 그기서 부텀 소풍 분위기가 살아나서 대분 기분이 째지는 기라.
마캉 아가리에 월남 방매이 하나썩 쭐쭐 빨민서 모도 나래비로 줄을 맞춰서
옥산 소나무 숲이나 개골산, 구랑리, 먹배이 등등 단골 소풍지로 향하는 것이지.
그때도 일부 젊은 어매들은 소풍지까정 따라 오기도 했지만,
우리거튼 촌넘들은 모도 농사일이 바뿐데 그럴 여가가 있을까 마는 온다고 해도
기를 쓰고 말맀을 기라. 하이튼 그 먼 길을 장사들도 리야까를 끌고 따라 나서고,
우리들은 아가릴 쳐 버리고 노래도 부르고 발걸음도 가붑기 구령을 맞촤 가민서
신나기 걸어가는 기라.
소풍지에 도착하만 보물찾기도 하고 반별로 모이서 장기 자랑도 하고 게임도 하는데,
게임이래야 기중 흔한 기 그니리 ‘수건 돌래미’라는 카는 거 였어.
빙~ 둘러앉아서 오니가 수건을 가이고 빙빙 돌다가 지가 좋아하는 지지바나
혹은 기중 거죽은 넘한테 수건을 가마이 놓고 토끼만 열나기 도부띠기를 해서
고넘을 잡아삐리는 긴데, 대가빠리를 전혀 쓰지 않아도 되는 아주 단순 무식한 놀이였지.
거~서 걸리는 넘은 노래를 한분하던지 뭔 벌칙을 받아야 되는데,
나거치 끼가 있는 넘들은 부루라도 걸리서 노래를 한판 불러야 속이 시원했지만,
거죽은 넘들은 노래도 못하고 기중 만만한 기 궁디로 이름 써는 거 였어.
허리를 꺼뿌정하기 해 가이고 그니리 궁디를 오리거치 쑥 내밀곤
좌우로 왔다리 갔다리, 아래 우로 올맀다 니랐다, 똥골배이를 쳤다가 하민서
이름을 써만 그니리끼 닌장~ 뭐가 우숩다고 호호 거리민서 웃고 그랬는지 몰라.
그래민서 온갖 얼분을 떨민서 놀다가 점섬 시간이 되만 찌리찌리 모이서
밴또를 까 먹는데, 요때가 기중 기다리던 시간이지 뭐.
힝핀이 좀 뭣한 아~들은 기양 맨밥을 싸오기도 했지만, 그래도 대부분 아~들은
핑소엔 기경도 못하는 짐밥을 싸왔지. 짐밥도 살기가 엉간한 넘들은 짐밥 안에
다꽝도 들고 달걀 후라이도 들었지만 나거튼 넘은 맨날 안꼬없는 찐빵이라었어.
그래도 그넘을 아주 맛나게 먹어 치우고 보물찾기 한다고 돌삐도 들씨보고
나뭇잎도 치와보고 하민서 눈까리가 벌겋기 해서 보물을 찾으로 돌아 댕기다가,
무신 조우 쪼가리가 하나 눈에 띄만 고만 “심봤다!”가 따로 없는 기라.
쪼차가서 상으로 공책이나 연필이라도 한 자루 타만 똥집이 뿌듯해지는 기고
그것도 못 얻어 걸린 넘은 주디이가 한자 택이나 끼 나오는 기지 뭐.
소풍이 끝날 무렵에는 전체가 다 모이서 장기 자랑을 했는데,
난도 초딩 때는 및 분 나가서 나발 부는 숭내도 내고 하민서 얼분을 떤 적이 있어.
이때 나의 강력한 라이벌이 요새도 싱구운 소리를 아주 잘하는 모 친구 였어.
이 팅구가 늘 나의 장기자랑에 눌려 기를 못 피다가 우예 가이고 나를 재치고
전체 장기자랑에 나가기 된기라. 좋아 가이고 지딴에는 아주 잘 한답시고
거창하기 열창을 해재깄는데 고만 우사만 당하고 말아 뿌맀지 뭐라.
그 팅구가 노래라고 한 것이 가사가 대충 요런 거 였어. 잘 들어 봐!
“젊으~나~ 젊은 시절에는~ 행복하게 살~았건만~ 지금은 막장~ 신세~
막장~으로~ 탄 ~파로 가~야지! 간드레~ 차고~ 구루마~ 밀고~~나는 가야지,
사끼야마 따라~ 구루마 밀고~~~”
.........중략........
이기~ 우리들의 아부지, 아재들이 그 힘들고 위험한 광산 막장에서 일하는 애환과
자조와 한탄이 섞인 노래인줄을 모르고, 그걸 대가리에 시똥도 안 뻐꺼 진 넘이
신이 나서 불러 재낐으니, 울매나 같잖은 일이라, 그래.
결국 선생님한테 뒤통시 한방 맞고 “싹 수가 노란 넘”이라는 소릴 들어야 했어.
이구~ 맨재기 같은 넘~!! ㅎㅎㅎ
...........계속.............. 17.초딩 때를 한번 돌아 보만 누구나 유난히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는 팅구가 있을끼라.
그들은 대체로 함께 자리를 한 짝꿍이나 뭔 작당이 있었던 팅구들일 것이고,
‘옥경이’라는 노래가사에 나오는 거 매로 ‘언젠가 어디선가 본 듯한’
친근한 얼굴로 각자의 마음속에 깊이 묻어져 있겠지.
나는 초딩 저학년 무렵 ‘나~가자 동무들아~ 어깨를 잡고~~’ 뭐 요런
요상시런 노래를 부르민서 무용을 할 때 지지바하고 손잡는 기 울매나 쓰무했던지,
아이시께끼 먹고 내 삐린 꼬장 막대기를 마주 잡고 무용하던 팅구가 우선 생각나여.
그 팅구를 놀리기도 시기 놀맀고 고무줄도 마이 짤라 먹었을 뿐 아이라,
오재미도 가이고 토끼곤 했는데 우연히 및 해 전에 만나서 고만 마자 죽으 뻔 했잖아.
또 하나 2학년 땐가 짝이었던 정 머시기는 시기 악다받고 똑똑했던 팅구라.
가~가 우리 분단장을 했는데 하이튼 대단한 분단장이었어.
분단장 끌빨이 울매나 씬지 나거치 거죽은 넘은 쪽도 못 피고 살았고,
걸핏하만 떠든다고 30센치 자로 손바닥을 맞았어. 안 떠들었다고 해도 소용없었지.
선생님 안 계실 때 떠들었다고 칠판에 이름을 써 놓으면
암만 지와 돌라고 통 사정해도 손톱도 안 들어가는 아주 무수운 아~라 썼는데,
지금은 어데서 뭐하고 사는지 몰라.
혹시 요새도 지 신랑 맨 날 손빠닥 패는 거 아인지 모르겠어. ㅎㅎㅎ
우이~~쒸~!! 생각하니께 백지 열 받네~이거 !
운제 만나기만 해 봐라~!! 난도 내가 당한 만큼 때찌를 해 줄 챔인께.
뭘로 패 조 뿌리까? 입서버리로 패 주까? 볼태기로 패 주까? ㅋㅋㅋ
또 하나는 참말로 잊혀지지 않는 여인이라!
5학년 땐가 짝을 했는데 왜 그키 가~를 못 살기 굴었는지 모르겠어.
그때는 내가 지법 심도 씨 지고 그래서 쪼만할 때 지지바 한테 손바닥 맞은 걸
복수(지복수?ㅎㅎ)라도 할라고 그랬던 건지 우옌건지 원.......
우선 그때는 2인용 지단한 책상 중간에다가 칼로 파서 줄을 좍 ~ 그어 놓고는
연필이던 뭐든지 넘어 오기만 하만 내 갯주머이에 다~주 넣어 삐리는 기라.
우예다가 앞자리 앉은 아~ 한테 볼일 볼라고 인나서 허리를 꾸부리고 있으만.
의자를 뒤로 실구머이 빼 놓고는 시치미를 뚝 띠고 있다가,
“야~ 빨리 앉아!” 이래민서 등때기를 잡고 팍 앉히 뿌리서
고만 치마 입은 채로 뒤로 발라당 넘어지만 좋아라고 깔깔거리고 놀리곤 했어.
십상 악다받은 아~ 인데도 나 땜에 참말로 울기도 시기 마이 울었어.
하이튼 내가 울매나 못살게 굴었는지 한번은 점심시간에 가~들 모친이 핵교 교실에
찾아 오시 가이고, 내 귀 까정 잡아 땡기시민서 엄청나기 뭐라 카신 적도 있어.
ㅎㅎㅎ... 에이 ~ 망고리거튼 넘, 뒤지기 맞아도 싸지 뭐.
가마이 생각한께 또 망고리 짓 한 기 하나 더 기억나네.
그때는 ‘감또개’ 또는 ‘쪼구’준다 카민서 허리를 꾸부리고 있는 아들한테
양손합장을 하고는 궁디를 푹 쑤시는, 그랭께 ~ 거~머시기 “x침주기”가 유행한 적이 있어.
당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올키 한 방 맞으만 x집이 웅심한 기 환장하기 아픈 것이거든.
내가 모 넘한테 그걸 당하고 하도 아프고 부예가 나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데,
드디어 요넘이 허리를 꾸부리고 앞에 있는 넘하고 작당을 하고 있는 기라.
마침 여름이라 얇은 반바지 속에 빤수를 입었는지 안 입었는지 그건 모르겠어.
하이튼 손가락 끝티미기에 심을 바짝 주고 대분 오지기 찔러 뿌맀는데,
아닌 기 아이라 손가락이 안으로 쑥 빨리 들어가는 느낌이 오는 기라.
속으로 쾌재를 부르민서 깔깔거리고 웃어 댔는데,
아~ 이눔이 각중에 얼굴이 하얗기 되민서 한참 동안 아무 소리도 못하고
고만 매가리 없이 바닥에 픽 주저앉아 삐리는 기라.
아~들 및 명이 빙 둘러 서서 달개고 울매의 시간이 흐른 후,
그넘은 떵싼 걸음으로 어거적 거리민서 막바로 집으로 가뿌맀어.
그날 나는 집에 가다가 교문 앞에서 가~들 모친한테 붙들리서 뒤지기 혼났어~!!
닌장~~! 안 맞아 뒤지길 다행이지 뭐~!!
xx야 ~!괴롭힌 거 참말로 미안하다~!!
그기~ 사실은 니가 좋아서 부루 그랜긴께 인제 고만 용서 하거래이~!!
xx야~! 똥꼬 괘얀나?
이상 있으만 당장 연락해라. 수술 잘~~하는데 알고 있단다.
울매 전에 내 똥꼬 비 낸 곳인데, 시기 잘 해여.ㅎㅎㅎㅎ
에이~~ 망고리 거튼 넘~~!!
내가 이 죄를 운제 다 씻을 수 있을~~~꼬?
.........계속.....18.초딩 때 서독 갔다 오싰던 분이 테레비라는 걸 사오시서 처음 그 누무껄 봤을 때
나는 대다이 놀랬어. 쪼만한 곽통거치 생긴 거에 뭔 누무 물방울거튼 기 부글부글 끓고
찌직~찌직~ 소리를 내민서도 그 안에 쪼만한 사람이 이야기까정 지끼민서
움직거리는 걸 보고 놀래지 않을 넘이 어데 있겠어 그래.
화~ 조누무 곽통에 걸리버 여행긴가 하는데 나오는 쪼만한 사람이
진짜로 들어 있는 긴지, 속을 고만 활짝 열어 보고 싶도록 궁금했어.
쪼끔 있응께 동네에 및집이 테레비를 들여놓게 되자 밤만 되만 사람들이
그 집으로 마캉 모이서 단체로 연속극을 보고 그랬어.
우리들도 밤이면 밤마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맨 날 테레비 있는 집
대문 앞에 가서 ‘테레비 좀 보이조요’ 이래민서 들어가 보곤 했지.
그 당시 ‘여로’인가 하는 연속극은 참말로 재미가 시기 좋았어.
어른들은 그니리 연속극이 실제 상황인줄 알고 시어머이가 미누리를 구박하만
당신들 그전에 시집살이 하시던 생각이 나는지 그저 연신 혀를 끌끌 차시고,
영구거치 좀 등시거튼 넘이 나오만 ‘에이구~ 저, 숭막~!!’ 이래시민서
고만 그키 안 됐어 하고 자신의 일거치 안타까워 하싰지.
그때 테레비에 기중 마이 나오던 김자옥이는 우예 그키 사람이 잠달고 이뻤는지
조~기 참말로 사람인가 싶더라 캉께.
동네에 테레비가 보급되기 전에는 왕릉 장터 우체국 근방에 있는 만화방에
꼬뿔나기 드나 들민서 만화도 보고 테레비도 보는 재미를 만끽했는데,
특히, 김일 레슬링이라도 하는 날이면 밤에 논틀로 밭틀로 뛰민서
거~ 먼 왕릉까정 테레비를 보로 갔던 기라.
만화방에 가는 날은 보통 손에 계란 하나 썩이 들려 있었고
우리들은 그넘을 팔아서 만화방 비를 대는 것이었지.
때로는 ‘또깔 펀다’ 고 해서 각자 집에서 쌀이 라도 한 됫박씩 퍼 내오는 날은
만화방에서 오뎅도 먹고 쫀디기나 오가당 거튼 걸 아가리가 터지도록 사 먹을 수 있었지.
김일 레슬링은 참말로 신이 났어.
우리들의 영웅 김일 선수는 늘 초장에는 뒤지게 맞게 되어 있어.
반칙 쓰는 선수들한테 몽디로 맞고 의자로도 맞고, 빤수에 뭘 숨카와서 그걸로도 거석하고,
심지어 ‘브러쉬’ 라는 아주 악종같은 미국 선수한테 이마를 깨물리서 피를 철철 흘리만,
우리들은 고만 x매루운 강아지 거치 신음 소리를 토해 내민서
그 숭악한 넘한테 갖은 욕을 퍼 붙고 울분을 토하민서 안타까워 하는 기라.
그래다가 막판에 비실거리던 김일선수가 각중에 벌떡 인나서
그 마한넘 꺼디이를 대분 움키 쥐고 해띵으로 대가빠리를 한 방 디리 박기 시작하만
모도 질딴한 나무의자에 앉았다 인나서 주먹을 불끈 쥐고 발광을 들을 해 재끼고,
끝내 그넘이 김일 선수의 강력한 박치기에 정신도 못 채리고 씨러지만,
그진~ 우리들은 똥집이 흐뭇해져서 아채 까정 돌아오는 밤길이
온통 김일선수의 무용담으로 채워지곤 했어.
핵교에 가서도 쉬는 시간이나 점섬시간은 맨날 교실이나 복도에서 그니리 레슬링
숭내를 낸다고 마룻바닥에서 뒹굴었는데,
그때 배운 헤드락, 가위 조르기, 풍차 돌리기, 업어치기, 팔꺾기, 거시기 땡기기 등
고도의 숙련된 기술들은 최근까정 우리 아들넘한테 써 먹을 정도로 대단했어.
그때 내가 갈밭에 모 팅구 팔꺾기를 너무 시기해서 고만 팔이 돌아가는 바람에
그 친구가 오랫동안 엄청시리 고생하고 십상커서 까정 나만 보만 아프다고 해싸서
겉으론 아무치도 안은 칙 했지만 속으론 시기 겁났어.
요새 열씨미 농사짓고 잘 살고 있는 거 보이 괜얀겠지 뭐.
지금 말이지만 팅구야, 괘얀아여?
안즉까정 아프다고 해도 설마터라 인제와서 무신 손해배상이니 그런 거 까정 청구할라고.
마한~!!초딩 때 서독 갔다 오싰던 분이 테레비라는 걸 사오시서 처음 그 누무껄 봤을 때
나는 대다이 놀랬어. 쪼만한 곽통거치 생긴 거에 뭔 누무 물방울거튼 기 부글부글 끓고
찌직~찌직~ 소리를 내민서도 그 안에 쪼만한 사람이 이야기까정 지끼민서
움직거리는 걸 보고 놀래지 않을 넘이 어데 있겠어 그래.
화~ 조누무 곽통에 걸리버 여행긴가 하는데 나오는 쪼만한 사람이
진짜로 들어 있는 긴지, 속을 고만 활짝 열어 보고 싶도록 궁금했어.
쪼끔 있응께 동네에 및집이 테레비를 들여놓게 되자 밤만 되만 사람들이
그 집으로 마캉 모이서 단체로 연속극을 보고 그랬어.
우리들도 밤이면 밤마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맨 날 테레비 있는 집
대문 앞에 가서 ‘테레비 좀 보이조요’ 이래민서 들어가 보곤 했지.
그 당시 ‘여로’인가 하는 연속극은 참말로 재미가 시기 좋았어.
어른들은 그니리 연속극이 실제 상황인줄 알고 시어머이가 미누리를 구박하만
당신들 그전에 시집살이 하시던 생각이 나는지 그저 연신 혀를 끌끌 차시고,
영구거치 좀 등시거튼 넘이 나오만 ‘에이구~ 저, 숭막~!!’ 이래시민서
고만 그키 안 됐어 하고 자신의 일거치 안타까워 하싰지.
그때 테레비에 기중 마이 나오던 김자옥이는 우예 그키 사람이 잠달고 이뻤는지
조~기 참말로 사람인가 싶더라 캉께.
동네에 테레비가 보급되기 전에는 왕릉 장터 우체국 근방에 있는 만화방에
꼬뿔나기 드나 들민서 만화도 보고 테레비도 보는 재미를 만끽했는데,
특히, 김일 레슬링이라도 하는 날이면 밤에 논틀로 밭틀로 뛰민서
거~ 먼 왕릉까정 테레비를 보로 갔던 기라.
만화방에 가는 날은 보통 손에 계란 하나 썩이 들려 있었고
우리들은 그넘을 팔아서 만화방 비를 대는 것이었지.
때로는 ‘또깔 펀다’ 고 해서 각자 집에서 쌀이 라도 한 됫박씩 퍼 내오는 날은
만화방에서 오뎅도 먹고 쫀디기나 오가당 거튼 걸 아가리가 터지도록 사 먹을 수 있었지.
김일 레슬링은 참말로 신이 났어.
우리들의 영웅 김일 선수는 늘 초장에는 뒤지게 맞게 되어 있어.
반칙 쓰는 선수들한테 몽디로 맞고 의자로도 맞고, 빤수에 뭘 숨카와서 그걸로도 거석하고,
심지어 ‘브러쉬’ 라는 아주 악종같은 미국 선수한테 이마를 깨물리서 피를 철철 흘리만,
우리들은 고만 x매루운 강아지 거치 신음 소리를 토해 내민서
그 숭악한 넘한테 갖은 욕을 퍼 붙고 울분을 토하민서 안타까워 하는 기라.
그래다가 막판에 비실거리던 김일선수가 각중에 벌떡 인나서
그 마한넘 꺼디이를 대분 움키 쥐고 해띵으로 대가빠리를 한 방 디리 박기 시작하만
모도 질딴한 나무의자에 앉았다 인나서 주먹을 불끈 쥐고 발광을 들을 해 재끼고,
끝내 그넘이 김일 선수의 강력한 박치기에 정신도 못 채리고 씨러지만,
그진~ 우리들은 똥집이 흐뭇해져서 아채 까정 돌아오는 밤길이
온통 김일선수의 무용담으로 채워지곤 했어.
핵교에 가서도 쉬는 시간이나 점섬시간은 맨날 교실이나 복도에서 그니리 레슬링
숭내를 낸다고 마룻바닥에서 뒹굴었는데,
그때 배운 헤드락, 가위 조르기, 풍차 돌리기, 업어치기, 팔꺾기, 거시기 땡기기 등
고도의 숙련된 기술들은 최근까정 우리 아들넘한테 써 먹을 정도로 대단했어.
그때 내가 갈밭에 모 팅구 팔꺾기를 너무 시기해서 고만 팔이 돌아가는 바람에
그 친구가 오랫동안 엄청시리 고생하고 십상커서 까정 나만 보만 아프다고 해싸서
겉으론 아무치도 안은 칙 했지만 속으론 시기 겁났어.
요새 열씨미 농사짓고 잘 살고 있는 거 보이 괜얀겠지 뭐.
지금 말이지만 팅구야, 괘얀아여?
안즉까정 아프다고 해도 설마터라 인제와서 무신 손해배상이니 그런 거 까정 청구할라고.
마한~!!19.지금까정 지끼다 본께 머시마들 망고리짓 하고 돌아 댕긴 것만 떠들어 재낐는데,
사실 촌넘들은 모도 일하느라고 고생도 참 많았어.
머시마들은 지개대학 목발과 댕기느라 죽을 욕을 봤고, 지지바들은 정지대학 부지깨이과,
소두방과 댕기느라 울매나 욕을 봤는가 이 말이라. 우리 나이 때의 여자들만 하더라도
고생도 마이하고 설움도 많을 수 빼끼 없지.
말하자만, 머시마들이 나무하고 시미기, 논일, 밭일 거드느라고 애를 먹었다카만,
여자들은 들에 나가서 일하는 어매들을 대신해서 집안의 온갖 궂은일을 도맡을 수
빼끼 없었던 기라.
우선 아적에 인나만 잇날 필수품목인 한국식 이동 통시인 요강을 깨끗하기 비우고,
한 저울게 그니리 고무장갑도 없이 도랑에 가서 두디기를 빨아 가이고
방하고 마리를 깨끗하기 닦아야 됐어. 때에 따라서는 샘에 가서 바가지로 물을 퍼서
따베이 끄네키를 입에 요래~ 물고 한 버지기썩 물을 이고 와야 되기도 했지.
그래고 정지에 가서 어매들 밥하는 걸 거들어 주다가 밥상을 채리 들고 들어오만
오빠들은 할매나 할배하고 겸상을 해서 맛난 것도 얻어먹고 그랬지만,
어떤 집에서는 여자들은 따로 오봉을 채리거나 밥상 여분대기에서 먹거나 했으니,
이기~ 참말로 울매나 거석한 일이라 그래.
더군다나 밥을 먹고도 머시마들은 바로 핵교로 줄행랑을 놨지만,
지지바들은 다시 정지에 가서 상을 치우고 대충 설거지를 하고
그진~ 핵교를 가니라고 늘 지각을 할 수 빼끼 없었던 기라.
핵교 갔다 와서도 온갖 궂은일을 다 해야 했는데,
나이어린 젖먹이 동생이라도 있으만 띠개미를 해서 엄마거치 둘러머 업고 돌봐 조야 되고,
어린 동생들 치근덕거리는 걸 일일이 다 업어 키우다시피 했어.
‘내 마음의 풍선’인가 하는 영화에서 매로 한창 농사일 바쁘고 할 때는
동생업고 댕기느라고 핵교에 빠지는 일도 더러 있었다 캉께.
그래다가 해거름~하만 부엌 아구리에 불을 때고 버리쌀 안치서 밥하랴,
부지깨이 운전하랴, 소두방 운전하랴, 아가빠리 쳐 벌리고 울어재끼는 동생들 달게랴,
마리에 마구 끼 올라오는 달구새끼 쫒치랴, 뭐 하이튼 종일 정신이 하나도 없는 기지 뭐 .
이래니 뭐 공부는 자연히 뒷전일 수 빼끼 없었고 빤히 보이는 어려운 집안 사정에
공부는 당연히 오빠나 남동생한테 양보해서 아예 포기하거나,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어도 뒷전으로 실무시 물러나
가심 아프게도 고만 높은 핵교 진학을 못하는 경우가 많았어.
그래니 오늘날 머시마들이 글줄께나 배웠다고 어깨에 후까시 주고 폼 잡으민서
그기~ 다 부모들 등꼴 빠지는 고생과 지 누이들 희생을 바탕으로 한 건 줄 모른다카만,
지대로 생기먹은 넘이 아이다 이 말이지. 모도 안 그래여? =3=3=33
가마이 보만 이런 사례들은 집집마다 울매든지 찾아볼 수 있는 일이고,
실제로 내가 핵교 댕길때만 하더라도 동생이 도회지 자취방 와서 밥해주는 경우도 있었거든.
이런 것들이 오늘날 남자들은 자기 집에 대한 엄청난 부담과 의무감으로 작용해서
부모들과 집안 생각만 하만 그니리 및낱 되도 안하는 어깨쭉지가 축~늘어지는 것이고,
여자들은 또한 알게 모르게 가심에 씨라린 한으로 남아 있는 것인 기라.
가마이, 가마이~~@!!
시방 내가 뭔 소릴 지끼는 기지?
이기 ~ ‘귀남이 후남’이 이얘긴가, ‘내 마음의 풍선’인가?
뭐라고?
여자 형제라곤 둥굴토막거튼 것도 하나 없는 넘이 참말로 알기도 잘 안다고??
닌장 ~ 그랭께 천하의 사기꾼 숭막이지 뭐라. ㅎㅎㅎ
근데, 내가 시방까정 지낀 기 맞긴 맞는 이야기라?
완죤 사긴가?
여친들 맞나 안 맞나 리플 좀 달아 봐!! 마한~~!!
....................계속............20.초딩 때 핵교 행사중에서 기중 기다려지는 기 바로 운동회 날이었어.
운동회가 가차와 지만 맨 날 공부도 빼먹고 그니리 무용이나, 곤봉 돌리기, 덤불링,
매스게임 거튼 걸 연습해야 했고 운동회 전날은 소운동이라는 기 있었는데,
그기~ 요새말로 하만 리허설인가 하는 거 쯤 될끼라.
운동회 때는 도부띠기를 해야 되기 때문에 꺼먹 고무신 신고는 못 뛴다고
띠를 써서 운동화 한켜리를 사 신을 수 있는 좋은 핑계가 되었고,
재수 조으만 꼬까 운동복도 한 벌 얻어 입을 수 있었어.
그니리 새 운동화 한켜리를 사만 고만 울매나 좋은지 주디이가 바소거리거치 째져서
저녁에 잘 때는 머리맡에다가 고이 모시놓고 자는데, 혹시라도 비가 와서
운동회 조지뿌리고 꼬까 운동화 못 신으까봐 백지 걱정이 되서 잠을 설치기 일쑤였지.
고무줄거치 늘어진 긴 밤이 지나고 그럭저럭 아적이 밝아 오만,
새복 바람부터 운동 빤스를 갈아입고 새 운동화를 신고는
‘새~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대가빠리가 하늘 까정~ 대이겠네!’ 하는
요상시런 노래를 불러 재끼고 갖은 오도방정을 떨민서 핵교로 가는 기라.
물론, 손에는 핑소 기경도 못하는 까먹을 돈 이 삼십 원이 들려 있으니,
발걸음이 가붑다 못해 참말로 대가빠리가 하늘까정 대이도고 남을 정도로
기분 오지기 째지는 기지 뭐.
그~ 먼 아채 천방 길을 고만 팽대이 거치 쫒아 니리가서 핵교 앞에 당도하만
만국기가 줄에 쭉쭉 메달리서 온통 푸른 하늘을 덮은 채 펄렁거리고,
대문 앞에는 월남방매이 장사부터 시작해서 온갖 장난감거튼 걸 파는
니야까하고 좌판들이 나래비로 늘어서 있는 기라.
그래만, 아적부터 그니리 눈까리 사탕이나 그런 거를
양쪽 볼테기가 불룩하도록 한 아가리썩 이빠이 쳐 넣고,
지단한 대롱 끝에 풍선을 달아 놓고 입서버리를 갖다대고 불만 호띠기 소리가 나는
요상시런 장난감 거튼 걸 사서 쳐 불고 돌아 댕기고 고만 신이 나서 뒤질라 카는 기라.
화약 총소리가 뻥뻥 나민서 두부띠기도 하고 온갖 행사가 열리지만,
우리들의 관심사는 나래비로 늘어선 무신 장사들이 파는 신기한 장난감이나
야바우꾼, 소케사탕, 아이시께끼 거튼 것에 더 관심이 많아 찌웃거리고 돌아 댕기민서
기경을 하거나, 뭐 사먹는 넘이 있으만 ‘썬남 만 조!’ 이래민서 따라 댕깄지 뭐.
그래다가 점섬시간이 되만 약속한 장소에서 동네 아지매들하고
어매들이 싸온 밴또에다 언나아 머리통 거튼 고구마, 밤 삶은 거,
핑소에는 기경도 못할 계란, 짐밥 거튼 걸 피 놓고 배다지가 터지기 먹었어.
근데, 도부띠기를 해서 3등 안에 든 넘들은 모도 ‘상’ 이라고 찍힌 잡기장이나
연필거튼 걸 받았는데, 나거튼 넘은 맨날 천날 공부만 하다 본께
대가리가 울매나 큰지 그니리끼 무구와서 올키 뛸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밥 먹으민서 동네 아지매들이 넌 및등 했느냐고 물으만 울매나 쓰무한지
매번 한다는 소리가 “1등으로 가다가 언넘이 발을 걸어 가이고 자빠져서 4등 했어요!”
이래민서 핑계를 대곤 했는데, 암메 모르긴 해도 그때부터 이 숭막이
오늘날 대 사기꾼이 될 자질을 키워 오지 않았나, 뭐 그래 생각되여.
점섬 먹고 농악대가 깽매기를 한판 뚜디리고 지내가만 분위기가 익을 대로 익어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술판이 벌어져서 여개 저개서 쌈이 일어나서 괌을 지르고,
그기~ 운동기경보다 더 재미나서 기경꾼이 몰리고 그랬어.
해거름 무렵이 되만 지단한 장대에 바구리를 뚱구렇기 매 달고
두핀으로 농가서 오자미로 그넘을 벌떼거치 떤지서 맞추다 보만,
비로소 반으로 떡 갈라지민서 ‘농자천하지대본’이니 하는 글씨가 턱 나오만
와~하는 탄성이 지댈로 나오고 대운동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기지 뭐.
나중에는 이 운동회가 면민체육대회로 바뀌민서 마실찌리 겨루었는데,
종목도 빌끼 다 있었어. 새끼꼬기, 쌀가마이 들기, 물동우 이고 뛰기,
가다가 조우쪼가리를 주 가이고 그게 적힌 사람하고 같이 뛰기.......
한번은 우리 아채 마실이 왕릉을 재끼고 우승인가를 해서 장터서부터 깽매기를 치민서
아채까정 올라오고 히관에서 밤늦도록 풍물을 울리민서 잔치를 벌린 적도 있어.
난, 이 장면이 박경리의 ‘토지’ 첫머리에 나오는 평사리 사람들의 농악놀이거치
역동적인 한장의 그림으로 머릿속에 선명하기 저장 되어 있어.
용이 아재, 영팔이 아재, 월선 아지매, 봉순네 아지매...................
참으로 눈물나기 아름다운 시절이었지.
.....................계속...........
숭막 같은 내 인생--2부21.
* 이로써 ‘숭막거튼 내 인생’ 1부 순서는 모두 마치고,
내일부텀은 2부 연재가 시작되겠습니다.
그동안 성원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계속 재미나게 읽어주시요.
다 같이 중간 박슈~~~~!!!
와~~~~짝~~짝~~짝~~
ㅎㅎㅎㅎ21.
1부 순서가 모두 끝나고 오늘부터 2부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지.
사실은 모도가 공감을 기중 마이 느끼는 것이 초, 중딩 때까지라서
그걸 더 질기 지끼고 싶지만, 운제까정이나 질질 끌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더군다나 월희 히장이 먹는 이야기 한다 카디이 요새는 무신 씨뿌리는 거 부텀 시작해서
연탄까정 온갖 잇날 일을 정신없이 지끼대고 있으이,
까이니리 꺼 실무시 자리를 피해조야지 뭐.
그렁께 인제 본래 제목대로 ‘숭막거튼 내 인생’ 이야기로 넘어 간다 요말이라.
에~~모도 학창시절을 돌이켜 보만 자기를 아끼 준 선생님들이 마이 생각나겠지만,
이 숭막거튼 넘은 중핵 때까정 어떤 선생님도 내 이름을 불러주시는 걸 들어 본 적이 없어.
그때는 한 반에 아~들 대가리 숫자도 근 60여명이 넘어 질곰시루거치 빽빽한데다,
도통 뭐 악다받은 것도 없는 밋밋한 넘이 숭막거치 해 가이고
티미~한 행고다지만 하고 댕깄으이, 그건 너무도 당연한 기지 뭐.
아무리 거석한 꽃이라도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다던가?
나거튼 넘이 무신 꽃이겠는가 마는 그런 면에서 본다만 나의 중핵까지의
학창시절은 그저 무명씨로서 이름도 없는 몸짓에 불과한 존재였던 것이라.
이 무렵 고등핵교 진학을 앞둔 나는 참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어.
누구나 자기가 커온 환경과 가족사에 대해서는 할말이 많고
가슴 씨린 이야기 한자락썩 숨카 놓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만은,
난도 그 이야기를 다 지낄라카만 대하소설 한편쯤은 실히 나오고도 남을 끼고,
눈물을 짜내도 암매 한 열 버지기 택도 더 나올 끼라.
사람이 눈구멍으로 보는 기 많아야 포부도 크고 다양한 법인데
그 당시에 소위 장래희망인지 하는 기 있었다카만,
나는 당연히 광산이나 뭐 그런데 댕기는 것이었을 끼라.
이유는 아주 단순하지. 겨울에 나무하기가 뒤지기 싫었으니까.
하기사 중핵 때 모 팅구는 선생님이 장래희망 써 내라고 한께 ‘술 배달’이라고 썼다가
뒤지기 혼나고 우사를 당한 적이 있는데, 사실 그 팅구는 그기~ 장난이 아니었던 기라.
그때 막걸리 통을 자장구에 실고 술 배달을 댕기던 아재들은
한말짜리 말통 여섯 개 정도를 뒤에 실고 앞 핸들 쪽에 두 개 썩 걸고 댕깄는데,
참말로 힘도 씨고 돈도 마이 벌수 있는 거 같이 보였고
그 팅구 눈으로 볼 때는 선망의 대상일 수도 있었던 것이라.
그러던 어느 날 내 장래 운명의 희비가 엇갈리는 결정이 지워지던 날을 잊을 수가 없어.
그때는 가을 들판에서 나락을 비고 그누무 껄 들이는 날이었어.
밤이 되도록 지게로 그넘을 져서 나르느라 등때기는 아파 뒤지겠는데,
하늘에는 보름달이 둥글게 떠서 입서버리가 째지게 웃고 있었고
어른들 모르기 가마이 막걸리도 한잔 걸칬으니 기분은 대낄이었지.
그때, 미장기술이 있어 사우딘가 어데 건설현장에 돈 벌러 갔다가 온 어떤 헝아가
약간 뻥이 섞인 무용담을 아주 재미나기 지끼민서, ‘건축과’인가 하는 데를 나오만
싸우딘가 하는 나라도 갈 수 있고 돈을 엄청시리 마이 벌 수 있다고
신나기 썰을 풀어대는 기라.
나는 고만 그 말에 혹해서 뒤도 안 돌아보고 M고 건축과를 지원하게 된 것인데,
요새 말로해서 뭔누무 취미니 특기니 하는 것은 생각 해 볼 여지가
달구새끼 뿔따구 만침도 없었고, 그누무 건축과인가 하는데가
뭘 배우고 도무지 뭐 하는 곳인지도 몰랐으니 대학이니 하는 것도 상상도 못했지 뭐.
당시 M고는 인문과하고 실업과로 농가져 있었는데,
입학을 했디이 문과담당이었던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나한테
문과를 가도 될 낀데 왜 건축과를 지원했느냐고 물으시더라고.
요 이야기를 듣고는 ‘그래만 숭막 니넘은 공부를 그키 잘하는데도,
일부로 좀 거석한데를 갔단 말이라 뭐라?’ 요래는 넘도 있을 것이고,
어떤 넘은 “닌장~ 지 자랑이라, 뭐라?’ 요래민서 부예를 벌컥 낼 넘도 있을 끼라.
마한, 성질 머리 하고는........!!
그랭께 그기~ 아이고,
이 숭막의 대가빠리가 그래도 아주 거석한 거석은 아니었다 요말이라!!
참말이라~~쒸이~~!!
닌장 ~ 실무시 2부 이얘기 풀어 갈라캉께 빌누무 이야기 다 나오네.
그나저나,
동창회 나가만 맨날 전교 1등 했다고 사기쳤는데 오늘 뽀롱 다나는구만.
모도 엉가이 믿는 눈치였는데........
마한~!!
.................계속............22.어디까정 지낐더라? 요새는 볼일보고 자꾸(지퍼) 올리는 것도 깜빡 잊어먹고,
우뚤 때는 내 이름이 숭막인지 멍처이인지도 도통 헷갈린다 캉께.
하여간 거석해서 숭막이 M고 건축과인가 하는데 입학하기 됐다는 것 까지 지낐지?
에~~~그 당시 점촌까정 가는 열차 통학은 지금 생각하만 십상 낭만적이었지만,
그것도 지내고 본께 그래 지끼는 기지 그때는 그것도 참 대다이 뒨 일이라었어.
마한, 자취를 하고 싶었는데, 자취도 안 씨기주고........
아적에 점촌 가는 7시45분 기차를 탈라만 저울게는 6시 경에 인나서
새복 밥을 먹고는 아채서 자장구를 타고 거~ 꼬치거치 추운 날에도
칼바람이 부는 천방 길을 코를 훌쩍 거리민서 팽대이거치 내달려 가은역까정 가야 했어.
왕릉3구 작은 집에 삼천리표 자장구를 맡기고,
다시 역까정 걸어와서 기중 먼저 기차를 타고 앉아 책을 이래~ 딜다보고 있으만,
가까운 왕릉 아~들은 출발시간이 엉가이 되만 기차에 올라왔고,
특히, 3구 코앞에 살던 넘들은 출발할라고 기적을 뿌~~웅 울리만
그제서 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팔자걸음을 너거적 거리민서 실실 끼 나오 기 일쑤였지.
본래 지각하는 넘들은 운제든지 가까운 곳에 사는 넘들이거든.
하기사 그때 진남역에서는 점촌으로 출근하는 우옌 누나가 한명 있었는데,
쪼만침 늦게오만 기차가 한참을 서서 사람을 기다리는
대다이 인간적인 광경도 연출되곤 했어.
그때 7시 45분 발 기차는 객차가 4개였는데, 젤 앞 칸이나 맨 뒷 칸은
화물칸(우편수송)이었고, 앞쪽부터 문고 칸, 문창 칸, 여고 칸으로 엄격한 구분이 있었어.
속마음이야 그런 거 구분 없이 아문따나 타고 싶고 더구나 여고 칸에 타고 싶었지만,
백지 쓰무하고 속 보이는 같아 그런 짓은 도저히 할 수 없었던 기라.
이 숭막이 대가리가 좀 찔쭉하고 둔해서 그렇지 지금도 뭐 인물이라카만
참~ 어데 내 놔도 안 거석하지만, 그니리 사춘긴가 하는 걸 거치고 나서부터
비로소 촌넘티가 벗겨진께 아주 참 허멀꿈한기
기양 이래~ 댕기기만 해도 뭇 지지바들의 따구운 시선이 느껴지는 기라.ㅋㅋ
근데, 그때부터 약간 모지래고 멍청한 팅구 하나가 나하고 그키 친한 칙 하민서
내 여분대기에 찰거머리 거치 붙어 댕기기 시작하는 기라.
나는 솔직히 생긴 빠꾸라고는 눈까리만 커단하기 해서 똑 눈까리 방매이같고
하는 행고다지도 도통 티미~~한 이 멍처이 같은 넘하고 같이 댕기는 기 참 x팔렸지만,
요넘은 죽으나 사나 붙어 댕기민서 가방도 들어주고 오가당도 사 주고 하는데,
까이꺼 종부리는 셈 치고 같이 댕기 줬지 뭐.
에~ 요넘 이야기는 천천히 하도록 하고....
우옛든 본래 여자가 환경 적응력이 좋아서 그런지 여자 많은 곳에 남자하나는
기를 못 피도 남자 많은 곳에 여자하나는 기가 죽지 않는 거 같더라고.
그래서인지 우리 칸에는 여고 애들 몇몇이 자주 탓는데,
사실은 그 애들이 우리 칸에 왜 탔겠어? 그것은 이 숭막때문인기 거의 확실했지만,
내 옆에 붙어 댕기는 멍청한 인간은 지넘 때문이라고 말도 안되는 착각을 하곤 했어.
나는 괜히 투덜대민서 “너들 칸으로 가~!!” 이래민서 허문을 하는 칙했지만,
속으로는 은그이 내 옆자리에 앉아 주길 기대했지 않았나~~ 뭐~~~ 그래 생각되여.
그래서 일부러 관심없은 척 하민서 책만 그키 딜다 보고 있었지만,
사실은 저들찌리 지끼민서 수다 떠는 데에 온 신경이 쏠리고 있었지 그까이
공부는 무신 공부가 되었겠어 그래.
그래도 참 성질이 잠달아서 기껏 기차를 일찌거이 타고 의자에 앉아
창밖을 이래~ 닐다 보민서 마음에 두고 있는 지지바가 운제 타는 가 모간지를 쑥 빼고
힐끗거리다가 멀리서 하얀 칼라에 허리띠를 잘룩하게 졸라맨 교복을 입은
머시기 한 아~가 궁디를 살랑살랑 흔들민서 오는 걸 보만
그저 가슴이 두근반 서근반 하민서 얼굴이 뻘거지곤 했지 뭐.
그때 찰거머리거치 붙어서 내 가방을 들어주던 멍처이와
왕릉에 모군이 늘~ 같이 댕기민서 각자가 좋아하는 지지바가 있었는데,
결국은 한넘도 고백은커녕 말도 한번 못 붙이고 버버리 냉가심 앓듯
고만 그렇게 합바지 방구새듯 맥 빠지기 가슴에만 묻고 말았을~~까~~요??? ㅋ~
終了
나의 고향 문경시 가은읍 선후배 옛 추억 예기를 토대로 읽어면 읽을수록 잼 나고
작가 남상욱(웅악)선생님께서 가은인의 방에 게재된 내용을 양해를 구해하고
2. 상욱선배, 월희 선배님글을 게재합니다. 잊여져가는 가은(加恩)
을 사랑하자는 뜻이고 둘째는 내 가 살던 그때 선배님께서 잘
조화와 균형있게 연출한 부분이 너무 멋쪄요..
선배님 감사합니다.
닌장~ 요새 몸에 좋다는 걸 쪼만침 먹었디이 한 미칠간
새복에 저~ 아랫동네에 불이 붙어서 그니리꺼 꺼느라고
목간통에 끼 들어가서 물을 서너 버지기 택 퍼붙고 난리도 아니었다.
속으로 옳다, 지난번 월희 회장하고 술 먹다 오좀빨 칼싸움에
참패해서 울분을 삼킨 일을 요분에 설욕을 한번 할끼다 마음을 먹고 있는데,
마침 뭔 소운동인가 대운동인가 한다카길래 단다이 벼루고 있었다.
그래서 매일같이 똥꼬 조이는 연습과 궁디 돌리는 연습,
그니리꺼를 자꾸(지퍼)위에 잘 걸쳐 놓는 거총연습 등 그야말로 실전 같은
연습을 매일같이 열심히 하였다.
근데, 닌~장 시집가는 날 뭐 우옌다 카디이 지난 목요일부터
몸살이 나서 온 삭신이 쑤시고 눈까리가 뻐꿈하도록 앓았는데,
마음은 온통 그니리 오좀빨 시합에 가 있고 잘못하다간 참석도 못하까봐
걱정이되서 여북했으만 빙원까지 쪼치가서 궁디에 엄청시리 큰 주사를 다 맞았으까.
하이튼 그래도 한 이틀 앓고 난께 쪼만침 전딜만 해서 시합 날 입을
꼬까 빤수를 하나 사는 등 만반의 준비를 단다이 하고 있었는데,
당일날까정도 우예 영~ 몸이 뒤잖은 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시험발사를 함 해 봤디이 닌장 바로 발밑에서 뚝뚝 떨어지는 것이었다.
속으로 이거 낭패다고 생각하민서 운동회를 갈라고 영등포에 나가서
버스를 탔는데, 예상보다 인간들 머릿수가 적은기라.
속으로 오늘 안 온 넘들은 하매 '진즉부터 기가 죽어 못 나왔구나!' 하고
생각한께 속으로 히히 웃음이 나오는 것이었다.
이번 모임에 안 나온 넘들은 전부 심이 시원찮은 넘들로 낙인 찍힜응께,
모도 그래 알아 고만.
아니, 그렇다만 오늘 나온 시키들은 전부 자신있는 넘들만 나왔다는 긴가???
허~ 이거 걱정되는구만!!
인간들하고 만나서 겉으로는 짐짓 허허 하민서 반가운 마음에 온갖
노가리를 까민서 버스를 타고 가긴 했지만 백지 은그이 기가 죽는 것이었다.
휴게소에서 니리서 다시 한번 오좀빨의 강도를 가늠해 봤는데,
이건 무신 힘이라고 할 것도 없고 기양 맥없이 픽픽 떨어지는 기 쪼끔하더라만
구두 다 배릴 거 같아서 가래이를 쩍 벌린 자세로 오좀통에 바짝붙어 볼일을 봤는데,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일찌거이 버스에 타서 올라오는 넘들 신발을 일일이 다 검사를 해 봤는데,
한넘도 물 한방울 묻지 않을 걸로 봐서 역시 만만찮은
넘들만 왔구나 싶어 영~ 기가 죽는데,
및놈은 버스가 출발 할라카는데도 안 나타나는 것이었다.
가마이 생각한께 고놈들은 아주 영 뒤잖아서 볼일보다가
빤스를 다 배리가이고 암메 속옷 갈아입고 오느라고 늦는 기 아닌가 하는
생각이드니 쪼금 마음이 놓이긴 한다.
고넘들은 아니나 다를까 양기가 전부 위로 올라와서 입만 뻥긋하만
노가리를 까 대는 주디만 디기 씬 넘들이어서 쪼만침 위로가 되었다.
그렇지만 오늘 컨디션으로 봐서 잘 못 붙었다가는
백지 우사만 당할 끼 뻔할 뻔자라 언 넘이 붙자고 하더라도
적당한 핑계를 대민서 기양 실무시 내 빼리라고 생각을 하단께
버스는 어느 듯 아늑한 내 고향의 품속에 안겨 있는 것이었다.
마흔이면 불혹이라 했던가?
앞만 치다보고 뛰어오다가 요새는 가끔썩 힐끗거리며 뒤를 돌아봐여.
나라는 넘이 어떤 환경에서 자라오고 또 우뚜키 살아왔는가를 돌아보면서
때론 혼자 씨구운 웃음을 짓기도 하고 회한에 젖어 보기도 하지.
이제는 늘~ 앞만 보기보다는 지금까정 살아온 날들에 대해 감사하고,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민서 지내야 겠다고 생각해여.
가마이 생각해보만 지금도 그렇지만,
특히, 나의 성장기와 학창시절은 잘난 구석이라고는
개 콧구녕 만침도 없는 별 볼일 없는 넘이었던 것 같아.
어데하나 내세울만한 구석도 없고 아무데도 정을 붙이지 못하고 떠도는
근원적인 보헤미안이요, 주류 쪽에는 한번도 붙어보지 못한
그야말로 빌 볼일 없는 마이너리티 인생이었던 것이라.
아채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나는 촌넘이라는 딱지를 달고 댕겨야 했지.
지금이야 왕릉까지 한걸음에 닫는 길이지만 옛날만 하더라도
아채는 왕릉에 비하면 모든 면에서 촌이었어.
그러니 아이들 해가지고 행색도 추리~하고 행동도 순디기라
촌놈이란 소리를 듣기에 충분했지.
그 당시 대부분의 아채나 저 싱밑 동네 영더기거튼 아~들이
해가이고 댕기는 행색은 대충 이러했을 끼라.
머리는 바리깡으로 빡빡 밀어붙인 일명'중대가리'에
얼굴에는 허연 마른 버점이 두서너 개 박혀있으며,
어깨에는 책보를 둘러메고 꺼먹 고무신을 신었지.
일부 아~들은 밑도리라고 해서 학교 이발관에 가서
밑두방치만 돌려 깎는 그런 이발도 하고 댕깄지만,
촌넘들은 그런 거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고,
가방도 없어 대부분이 책을 바부재에 싸서 머시마들은 어깨에,
지지바들은 허리에 둘러매고 댕깄던 것이라.
밴또는 누런 양은에다가 반찬통도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밥 담은 위에다 꾹 눌어 넣고 그냥 밴또 뚜껑을 덮어버리는 것이어서,
책보에다 같이 싸서 어깨에 메고 놀개이거치 쫒아 댕기다 보만 그니리 짠짓물이
줄줄 흘러나와 언제나 책과 공책은 벌겋게 되어 있기 일쑤였어.
더군다나 왕릉이나 시장통에 있던 아 ~ 들은 일찍 꽤가 들었겠지만,
우리들은 촌에서 논틀로 밭들로 돌아 댕기고,
학교만 갔다오만 일꺼리가 울매나 많은지 공부는커녕 쉴 틈도 없었던 것이었어.
여름에는 시미기나 염소 또는 토끼풀 한 대래키썩 해다 날라야지,
틈만 나면 논일, 밭일 거들고 겨울에는 나무해야지 정말 쉴 틈이 없었던 것이지.
다른 집에 비해 농사거리가 많지 않았던 나도 농사일이라면 쟁기질,
쓰레질 빼곤 안 해 본 일이 없는 거 같아.
..............계속..........
돌이켜보만 그래도 마음만큼은 너그럽고 풍요로웠던 시절인 것이어.
비록 지대로 못 먹고, 못 입어 풍족하지 못해서 그렇지
요즘 아~들거치 공부하라는 잔소리는 한번도 들어보질 못했으이,
이기 울매나 기분째져는 시절이었던가?
그러니 맨날 씨기는 농사일 안하고 우예든동 미꾸라지거치 실무시 빠져서
그저 놀 궁리에다가 온갖 저지리만 일삼고 댕깄지만,
그 추억들이 안즉도 잡지에 실린 재미난 삽화처럼 머릿속에 잔뜩 들어서
어느 순간에 불현듯이 생각이 나곤하는기라.
그때는 요즘거치 장난감이니 뭐 그런기 없다보이 온갖 자연이 놀이기구고
노는 방법도 다양하기 짝이없었지. 그당시 지지바들이 노는 것은 주로 오자미나 공기놀이,
노래를 불러 재끼민서 팔딱팔딱 오도방정을 떨어대는 고무줄놀이 등이 있었는데,
이기~ 요새 그니리 교육적인 면이니 뭐 그런 걸로 봤을 때도 동료간의 단합과 팀웍,
심체적 발달, 두되활동 등을 촉진씨기는 울매나 의미 있는 놀이었던 말인가?
우리 머시마들은 뭐니뭐니 해도 기중 마이 한 놀이가 바로 다마(구슬)치기 였고,
다마치기의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기중 재미나는 기 뺑치기라는 것이었어.
땅바닥에 아랫마, 중간마, 웃마에 양 날개 등 여러 개의 구녕을 파놓고
암메, 그 구녕에다 다마를 주 넣으민서 한 바꾸를 기중 먼저 도는 넘이 이기는 것일 끼라.
자기 다마 근방에 상대방 다마가 있으만 요래~ 전좌가이고 멀리 까내뿌리는데,
요때 쓰이는 용어들이 참말로 숭악한 것들이 많았다.
대충 하까이로~~, 진주로~~~쌍총~~하는 일본말 비스므리 한 건데,
특히, 손을 마이 내밀어 상대방 다마를 까만 ‘말x 내민다’고 하민서
서로 우기민서 악종을 쓰고 싸우기도 했어.
히히히... 말x.... 참말로 숭악해여.
그외에도 다마를 이용한 놀이는 참 많았어.
예를 든다면 땅바닥에다 세모를 기리고 그 안에다 다마를 여러 개 집어넣고
다마 하나를 눈까리에 갖다 대고 멀리서 요래~ 줜자 가이고 고넘을 마촤서
세모 금 밖으로 튀어 나온 넘을 따먹는 놀이라든가,
아니면 고넘을 손안에다 감추고 홀짝 맞추기를 해서 따 먹는 것 등등.......
다마치기 못지 않게 또 열씨미 했던 것이 때기(딱지)치기이고,
맨날 그누무꺼 접느라고 집꾸석에 조우 쪼가리라는 건 찾을 수가 없을 정도였지.
닌장, x닦을 조우쪼가리도 귀한 시절에 신문 쪼가리는 두 말 할 것도 없고,
지나간 표준 전과라든지 헝아들이 쓰던 동아 수련장, 스터디 북 등은
전부 때기접느라고 남아나질 안았다. 심지어 때기를 시기 마이 떼인 어떤 넘은
열이 올라 배우는 교과서를 째서 때기를 만들었다가 뒤지기 혼나기도 했어.
특히, 때기 만드는 조우가 뚜꿉고 클수록 때기치기에서 위력을 발휘했기 때문에,
그래다보이 책중에서도 두꺼운 부분인 앞 뒤 표지나,
보루바꾸 등은 때기의 가장 좋은 재료인지라 남아나는 집이 없었지.
때기 치기를 할 때도 발로 살짝 쌔비치는 거 땜에 서로 싸우고 발광을 해 댔는데,
그 당시 때기와 다마의 보유 정도는 우리들 사이에서 부와 권력의 척도였으며,
그니리꺼 마이 가진 넘은 선망의 대상이요 요즘말로 ‘짱’이 아닐 수 없었어.
.........계속.........
원래 이 숭막이가 숭막거치 살아 온 이야기를 질기 지낄 챔이었는데,
어릴 때 놀던 이야기가 나온께 자꾸 잊어삐맀던 기 떠오르고 거 ~ 십상 재미있네.
에이~ 기왕 이래 됐응께 놀던 이야기 좀 더 지끼야 되겠네.
왜, 꼽냐? 작가 마음이지 뭐.......히히히...
그렁께 그 외에도 십상 창의성 있는 다양한 놀이들이 디기 많았는데,
맨날 그니리 컴푸턴가 하는데만 쳐 박혀서 게임이니 음란물이니 하는 것에나
몰두하고 있는 요즘 아~들을 보면 불쌍하기 그지없는 일이라.
에~~머시기~ 다마치기나 때기치기 외에 우박이라 그래서(표준말 : 비석치기)
넓딴한 돌삐를 앞에다 시와 놓고 그놈을 맞촤서 닝기는 시합이 있었지.
그기~ 첫 단계에서는 아주 먼 거리에서 기양 돌삐를 떤지서 맞추다가,
점점 단계가 높아지면 그넘을 뒤로도 떤지고 꺼꿀로 돌아서서도 떤지고,
가래이 사이로도 던지서 그 누무 돌삐를 마촤야 되는 놀이였어.
또한 떤지는 방법도 다양해서 나중에는 돌삐를 가슴에 얹고 가서 맞추기도 하고,
그다음은 어깨나 대가빠리에 얹어 가이고 맞추기도 하고,
등때기에 엎고 가서 맞추기도 하고,
심지어 돌삐를 대가빠리에 얹어가이고 한쪽발로 깨곰발을 뛰민서
중간에 가서 궁디를 돌리가민서 한바꾸 춤을 추민서 지랄 발광을 하다가
맞추기도 해야 되는 고도의 숙련과 기술을 요하는 아주 재미나는 놀이였어.
맨날 코를 찔찔 흘리민서 땅바닥에서 그니리 놀이들이나 하고 있었으니,
땟 국물이 졸졸 흐르는 기 생기먹은 빠꾸가 요즘 테래비에서 보는
저~ 이라크 난민 아이들이나 다를 바가 뭐가 있었겠어, 그래.
하지만 노는 것은 뭐든 신이 났고 계절에 따라 알맞은 놀이들을
잘 계발해 두었기 때문에 심심할 틈이 없던 시절이었지.
여름에는 뭐니 뭐니 해도 아채보에서 시염치던 일을 잊을 수가 없는데,
아채보만 하더라도 아랫보, 중간보, 웃보(왕나들)가 있어서
맨날 쌔까맣기 해서 그니리 꼬치를 달랑 다 내놓고 시염을 치고 놀았던 것이라.
그 중에서도 웃보가 물이 시퍼런기 대다이 짚어서 보기도 위협적이었고
빠지만 바로 골로 갈 정도의 깊이였지만 우리들은 아랑곳하지 않았지.
그때 싱밑에 영더기 거튼 아들은 감히 무수와서 거~와서 시염을 칠 엄두조차
못 냈을 끼라. 그렁께 맨날 그 앞 왕나들 풀밭에서 시미기나 할 수 빼끼 없었고,
그 근방에서 관산댁이는 소를 띠끼민서 우리들의 궁디를 다 훔쳐 보곤 했는데,
암메 모르긴해도 우리들의 용맹함과 섹시함에(?) 거의 매료 되어 정신이 없었을 끼라.
ㅎㅎㅎ
특히, 그 위에 아주 까풀막진 비락 방구에서 따이빙인가 뭔가 한답시고
뛰니리다가 배다지부터 머이 떨어져서 배가 터져 뒤질 뻔한 경험도 있고 한데,
암메 그럴 때는 관산댁이 가심이 덜컹덜컹 니리 앉곤 했을 것이여.
(관산댁이가 요새 도통 코끄티를 안 보이는데, 부예나 지르자!!히히히..)
하이튼 그때 나는 해군시염, 깨구리 시염, 담방구지 등을 통달했는데,
이기 암매 요새 말하는 자유형, 배영, 접영 뭐 그런 것일 끼라.
그래서 집에 아들넘이 뭔 누무 수영인가 하는 걸 배운다 할 때도
“난 그런 거 안 배와도 다 잘하는데,
그니리껄 뭔 누무 비싼 돈을 딜이서 배우느냐‘민서 핀잔을 주곤 했어.
근데, 한날 수영장인가 하는데에 아들놈 하고 같이 가서
잇날 해군시염을 자유형이라고 우기고 깨구리 시염을 접영이라고 우기민서
멋지게 한판 쳤지만 백지 우사만 당하고 말았지 뭐.
마한!!
개시염이라나 뭐 우예민서........
................계속..............
어릴적 이야기 지낀께 십상 재미있네!!
이야기 나온 짐에 및 마디 더 지끼야 되겠어.
이래다 이걸로 고만 날 새는 거 아인지 모르겠네.
새로운 기 자꾸 생각나지만 그니리 껄 다 지낄 순 없고,
오늘은 토막토막 스치는 황당한 기억들 몇 가지만 펼치 보겠는데,
그기~ 다 살기 어려운 때라서 그런 일들이 생겼지만 지금 생각하만 참 우수운 일이라.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그 당시에는 거의 대부분 아~들이 머리를
집에서 기양 바리깡으로 밀어삐린 소위 ‘중대가리’를 해가이고 댕깄는데,
밍월이나 뭐 그런 때는 그니리 밑도리 한번 해 보는 기 소원이었어.
그래서 같은 동네 모 친구도 설을 앞두고 부모를 조르고 졸라서
난생처음으로 학교이발관에 가서 밑도리라는 것을 하고는
너무 좋아서 뒤질라카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 ~ 해여.
마한, 그런데 그날 밤에 기불이 싸움을 했는기라.
아채 아~들은 늘~ 작천 아~들하고 냇가를 사이에 두고 기불이 싸움을 했는데,
심할 때는 돌삐도 집어 던지고 몽디가이고 따라가기도 하고 찌끼 가기도 하민서
거의 전쟁을 방볼케 하는 놀이었어.
기불이 싸움을 할 땐 깡통에 관솔을 넣어 불을 붙이 가이고 돌리다가
신호탄이라카민서 확 집어 떤지뿌리만 똑 군대에서 쓰는
신호탄 매로 불꽃이 위로 싹 솓구치민서 디기 멋있는 광경이 연출 되곤 했지.
근데 한넘이 ‘신호탄이닷~~!’하민서 집어 던지자마자
바로 그날 낮에 밑도리 했다고 좋아하던 친구가 먼 산 치다보민서 이래~ 오고 있다가,
고만 가~ 대가빠리에 디리 떨어져 뿌맀는기라.
화~!! 그 불떵거리가 대가리빠리에 떨어 졌으만,
당연히 본능적으로 ‘앗~! 뚜구와!! 사람살려~!!’ 하는 소리가 나와야 당연한데도
가~ 입에서 순간적으로 나온 말은 이래여.
‘아이고~~!! 내 밑도리~!! 내 밑도리 다~ 타여, x팔~~!!’
ㅎㅎㅎ 이걸, 웃어야 되여? 울어야 되여?
결국은 폭탄 맞은 거 매로 온 낯빤데기를 씨커멓기 해 가이고
머리카락을 싹~ 다 꺼실러 먹고 약간의 화상까지 입었지만,
그니리 밑도리가 목심보다 더 중했던 것이지.
또 한 가지는 중학교 앞에서 일어난 모 친구의 일인데,
알다시피 가은 중학교 앞에 있는 언덕은 디기 까풀막지잖아?
모친구가 학교 마치고 그 언덕을 자전거를 타고 니리 가다가 그니리 브레끼가
고장나서 열나기 달리다가 고만 거꿀로 따이빙을 해서
대동빙원인가 건양빙원인가에 실려 가는 대형사고가 난기라.
우예우예 연락을 급히 해서 가~들 어른이 쪼차 오싰는데,
오시자마자 하시는 말씀 “자전거 우예 됐나? 자전거 마이 안 다칬나?”
시상에 아~가 뒤질라카는데 그니리 자전거라 고라.
이 일을 두고 담임선생님께서 흥분해서 ‘그럴수가 있느냐고’ 말씸하싰지만,
지금 생각한께 물론 아~가 더 중~했겠지만 애정표현을 지지리도 못하시는
우리들의 전형적인 아부지였던 것이라.
근데, 가~가 누군지는 잘 기억이 안나네!
또 한번은 장마가 엄청나기 져서 갈밭 앞에 고무다리가 거의 넘칠 정도였는데,
비니루 우산을 쓰고 가던 어떤 아~가 바람이 획 분께 고만 그니리끼 히떡 뒤집어 지민서
다리 아래로 날라 가서 물에 둥둥 떠니리 가는 것이었어.
용감한 우리의 친구는 대분 옷 입은 채로 벌건 흙탕물로 뛰어 들어가서
급물살 속에 목숨을 걸고 그 비니루 우산을 건져 가지고 나오는 기라
왜냐?
우산 잃어 삐리만 집에 가서 혼나기 때문에........
................계속.....................
에구~~!
오늘이 토욜이라 애써 올리봐도 독자도 없을낀데......
원체 토, 일요일은 칼같이 쉬는 방이라서.....
마한, 기왕 연재를 시작한긴데 독자 빌로 없다고 지 멋대로 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에이~~하이튼 시작~해~~보~~~세~~~~!!!
근데, 이기~ 이야기가 자꾸 히딴 방향으로 나가는 거 같아여.
어제 영더기가 핵교에서 빵타던 날은 그니리꺼 빼끼까봐
갈밭으로 해서 아채보로 돌아갔는다는 이야길 들은께,
난도 잊어 삐맀던 잇날 생각이 자꾸나네.
에이~ 또 삼천포로 빠져보자!! 히히.....
지금이야 왕릉이나 아채나 거기서 거기지만 그래도 그 당시에는
왕릉이라카만 가은에서는 기중 삐까뻔쩍한 곳이였고,
그러니 거기서 살던 아~들은 뭔가 좀 악다받은 거 같이 보이는 기 사실이었어.
반면 읍내에서 떨어진 촌에 살던 아 ~ 들은 행색도 추리~ 할 뿐 더러
하는 행동도 순진무구하기 짝이 없었으니 여칙없는 촌넘으로 보였을 것이고,
우리들은 쫌 까불거리던 넘들 밥이 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출 수 밖에 없었지.
그 당시 아채 아~들은 고무다리를 건너서 속개뜰을 가로 질러 아채로 가야 되다 본께,
이건 왕릉 아~들 뿐만 아니라 갈밭 아~들 까정도 저들 동네가 왕릉하고 가까운께
아채 아~들을 촌넘이라고 우숩게 보기 일쑤였고 제일 무수왔던 것이 선배들이였지.
그래서 걸핏하면 끌려서(끌린다 : 일종의 학대) 갖은 고초를 당하기도 했는데,
그 때문에 학교 가기 싫을 때도 마이 있었던 것 같아여.
그중에서도 왕릉인가 어디쯤에 사는 싸단(태권도 4단이라고 뻥을 쳐서
우린 그렇게 믿었고 빌명도 그렇게 붙였음)과
또 어딘가에 사는 껌*이가 젤로 무숩고 위협적인 존재였어.
그 두 사람한테 우리 팅구들은 거의 매일 끌려서 온갖 수모와 고초를 다 당했어.
시미기 한 대래키는 기본에다가 온갖 농사일을 다 해조야 됐고,
심지어 버리 밭에 곰배치는 일까정 해 주어야 했지.
말하자만 일종의 강제노동에 시달린 데다 걸핏하면 회초리로 손바닥까지 맞으며
온갖 학대에 시달린 것이고, 또한 허풍이 절반인 자기의 무용담을 들어 주어야만
지우 풀려 날 수 있었으니 참말로 요새 거트만 신문에 날 일이지.
중핵교에 가서도 이런 일은 마찬가지로 벌어졌는데,
아무 이유도 없이 점심시간에 산에 혼자 끌려가서 선배 몇명한테 하도 맞아서
얼굴이 밤탱이가 되어 가지고 다니던 기억등이 생생한데,
지금 생각하니 그 모든 것이 촌넘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던 것 같아.
그러면 촌넘이 뭔가?
약아 빠지지 못해 순진하고 부모들이 하나하나 챙겨주지 않으니,
행색이 꺼죽한데다 사는 동네가 왕릉에서 멀다는 것 밖에 더 있겠는가?
거기에다가 뭐라도 잘하는 기 있었다면 그러키 무시당하지는 않았을 낀데,
공부도 그저 그런데다 주먹이 씨기를 하나 이건 생긴 것도 티미 한데다
하는 짓도 츄리하기 해서 댕깄으니 만고에 뭐 하나 내 세울 끼 없었기 때문이라.
지금 생각한께 씨구운 웃음 빼끼 나오지 않지만,
요새 애~ 들 기준으로 보만 간혹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여.
..............계속.........
6.
그러만 숭막이 맨날 얻어터지고만 댕긴 순진무구랭이 띨빵이에
아주 착실한 범생이에 불과한 넘이었던가? 천만에 만만에 말씀!!
그래도 나름대로 저지리도 했고 나쁜 짓도 시기 마이하고 댕깄는데,
원체 꼭꼭 숨어서 한 일이라 절대 어른들한테는 들키지를 않았을 뿐이라.
그 당시 어른들은 술, 담배에 대해서는 관대했던 것인지,
아니만 먹고 살기 바쁜 시절이라 아~들한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어.
하이튼 나는 술, 담배라면 소시적부터 통달을 했으니 말이라.
지금은 그니리끼 빌로 좋은 기 없다케서 끊어삐맀지만,
담배는 초딩 때 부터 맛을 보기 시작했으이 이기~ 소가 웃을 일이지.
그때는 오후반을 갔다 올라만 겨울에는 날이 어둑어둑 했고,
속개 뜰을 가로질러 지금은 방자유기촌으로 바뀐 '솔밭 곡'을 넘어 올라만
잇날에는 워낙 숲도 우거지고 해서 십상 무수왔어.
그래서 그 고갯길을 넘어 가기 전에 미떵에 마캉 끌어 모이서
그 당시 남대문이나 파고다거튼 담배를 꼬나물고 넘어 갔고,
그 이유는 여우나 늑대거튼 거는 불빛을 보만 내뺀다는 소릴 들었기 때문이지만,
우예보만 그건 핑계에 불과한 것이라.
핵교 갈때도 마카 누구네 집에 문디 띠서리거치 끌어모이서 늘 무디기로 댕깄는데,
중핵교에 입학하고 나서 교복을 좍 빼입고 친구 집에 간께
선배들이 전부 담배를 물고 한 대썩 돌리는 것이었어.
그러니, 대가리 시똥도 안 뻐꺼 진 넘들이 모도 한꼬바리썩 입에 물고
문디 쑥굽듯이 꾸재끼고 핵교를 가곤 했고,
그 외에도 방학 때 나무 하로 갈 때는 어련히 한 대 썩 꿉는 기 여사였지.
그니리 술이라카는 것도 울매나 어릴 때부터 입에 댔는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하이튼 아버지가 술 받아 오라하시만 주전자에 막걸릴 받아 오다가
꼭지에 주디를 대고 쭐쭐 빨아먹고 오민서부터 였으니,
그 역사와 뿌리가 깊고도 깊은 것이었어.
그러다가 중학생이 되민서부터 본격적으로 술을 먹기 시작하였는데,
명절이나 구리스마스 때가 되만 집에서 모르기 쌀을 한 됫박씩 퍼 내와
그넘을 모아 장터에가서 팔아서 쫀디기와 맛조은 동산, 라민땅, 감빵 등
온갖 먹을 거를 장만 해 왔고 당연히 술도 필수 품목이었지.
그래서 저녁에 모두 끌어 모이서 빙나발을 불민서 아가릴 쳐 벌리고 노래를 부르고,
심지어 저범으로 밥상도 뚜디리민서 어른들 숭내를 내민서 놀곤 했어.
중2때 어느 날은 옆집 모 친구의 생일날 쐬주 댓빙 2병에 안주는 새우깡과
맛좋은 동산을 사다놓고 니가 술이 더 씨다, 내가 더 씨다 싸우다가
술 마이 쳐 먹기 시합이 벌어진 기라.
고만 술잔이고 뭐고 필요 없이 국 대접에다 한 그럭 이빠이썩 따라 가이고
그넘 한 잔 쳐 먹으만 내가 한잔 쳐 먹고 뭐 그런식으로 먹어재낐는데,
엉가이 각각 대삥 한 빙택을 먹고 둘 다 기절해서 거의 죽었다가
근 사흘 만에 지우 살아난 적도 있어.
참말로 지금 생각하만 한심하고 같잖은 일이 아닐 수 없고,
그발광을 하고 컸으민서도 오늘날 모도 요만큼이라도 사람노릇을 하민서
사는 걸 보만 참으로 신통하고 방통한 일이 아닐 수 없어.
그러니 우리가 아~들을 키울 때도 쪼만한 잘못을 가이고 하늘이 무너진 것 거치
그렇기 오도 방정을 떨어 댈 일도 아닌 기라.
실제로 나는 그런 것들을 일찌거이 경험했기에,
오늘날 고론 못된 행시 하는 넘들 상담하는 일을 하기 된 것이고,
또 그넘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나쁜 짓을 하는 넘들도
겉으로는 짐짓 무서운 칙 하지만, 속으론 쪼만침도 미운 생각이 들지 않아여.
왜냐? 내가 잇날에 다 해봤기 때문에....ㅎㅎㅎ
.........계속........
그러만 숭막이 맨날 얻어터지고만 댕긴 순진무구랭이 띨빵이에
아주 착실한 범생이에 불과한 넘이었던가? 천만에 만만에 말씀!!
그래도 나름대로 저지리도 했고 나쁜 짓도 시기 마이하고 댕깄는데,
원체 꼭꼭 숨어서 한 일이라 절대 어른들한테는 들키지를 않았을 뿐이라.
그 당시 어른들은 술, 담배에 대해서는 관대했던 것인지,
아니만 먹고 살기 바쁜 시절이라 아~들한테 신경 쓸 여유가
없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어.
하이튼 나는 술, 담배라면 소시적부터 통달을 했으니 말이라.
지금은 그니리끼 빌로 좋은 기 없다케서 끊어삐맀지만,
담배는 초딩 때 부터 맛을 보기 시작했으이 이기~ 소가 웃을 일이지.
그때는 오후반을 갔다 올라만 겨울에는 날이 어둑어둑 했고,
속개 뜰을 가로질러 지금은 방자유기촌으로 바뀐 '솔밭 곡'을 넘어 올라만
잇날에는 워낙 숲도 우거지고 해서 십상 무수왔어.
그래서 그 고갯길을 넘어 가기 전에 미떵에 마캉 끌어 모이서
그 당시 남대문이나 파고다거튼 담배를 꼬나물고 넘어 갔고,
그 이유는 여우나 늑대거튼 거는 불빛을 보만 내뺀다는 소릴 들었기 때문이지만,
우예보만 그건 핑계에 불과한 것이라.
핵교 갈때도 마카 누구네 집에 문디 띠서리거치 끌어모이서 늘 무디기로 댕깄는데,
중핵교에 입학하고 나서 교복을 좍 빼입고 친구 집에 간께
선배들이 전부 담배를 물고 한 대썩 돌리는 것이었어.
그러니, 대가리 시똥도 안 뻐꺼 진 넘들이 모도 한꼬바리썩 입에 물고
문디 쑥굽듯이 꾸재끼고 핵교를 가곤 했고,
그 외에도 방학 때 나무 하로 갈 때는 어련히 한 대 썩 꿉는 기 여사였지.
그니리 술이라카는 것도 울매나 어릴 때부터 입에 댔는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하이튼 아버지가 술 받아 오라하시만 주전자에 막걸릴 받아 오다가
꼭지에 주디를 대고 쭐쭐 빨아먹고 오민서부터 였으니,
그 역사와 뿌리가 깊고도 깊은 것이었어.
그러다가 중학생이 되민서부터 본격적으로 술을 먹기 시작하였는데,
명절이나 구리스마스 때가 되만 집에서 모르기 쌀을 한 됫박씩 퍼 내와
그넘을 모아 장터에가서 팔아서 쫀디기와 맛조은 동산, 라민땅, 감빵 등
온갖 먹을 거를 장만 해 왔고 당연히 술도 필수 품목이었지.
그래서 저녁에 모두 끌어 모이서 빙나발을 불민서 아가릴 쳐 벌리고 노래를 부르고,
심지어 저범으로 밥상도 뚜디리민서 어른들 숭내를 내민서 놀곤 했어.
중2때 어느 날은 옆집 모 친구의 생일날 쐬주 댓빙 2병에 안주는 새우깡과
맛좋은 동산을 사다놓고 니가 술이 더 씨다, 내가 더 씨다 싸우다가
술 마이 쳐 먹기 시합이 벌어진 기라.
고만 술잔이고 뭐고 필요 없이 국 대접에다 한 그럭 이빠이썩 따라 가이고
그넘 한 잔 쳐 먹으만 내가 한잔 쳐 먹고 뭐 그런식으로 먹어재낐는데,
엉가이 각각 대삥 한 빙택을 먹고 둘 다 기절해서 거의 죽었다가
근 사흘 만에 지우 살아난 적도 있어.
참말로 지금 생각하만 한심하고 같잖은 일이 아닐 수 없고,
그발광을 하고 컸으민서도 오늘날 모도 요만큼이라도 사람노릇을 하민서
사는 걸 보만 참으로 신통하고 방통한 일이 아닐 수 없어.
그러니 우리가 아~들을 키울 때도 쪼만한 잘못을 가이고 하늘이 무너진 것 거치
그렇기 오도 방정을 떨어 댈 일도 아닌 기라.
실제로 나는 그런 것들을 일찌거이 경험했기에,
오늘날 고론 못된 행시 하는 넘들 상담하는 일을 하기 된 것이고,
또 그넘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나쁜 짓을 하는 넘들도
겉으로는 짐짓 무서운 칙 하지만, 속으론 쪼만침도 미운 생각이 들지 않아여.
왜냐? 내가 잇날에 다 해봤기 때문에....ㅎㅎㅎ
.........계속........
7.
그나저나 어릴 때 우리들을 사정없이 끌어 가이고 맨날 뚜 패고
못된 행시를 마이 한 헝아들 이야기를 지끼야 될 챔인데,
요새 저 웃마 큰 헝아들까정 팔짱을 턱 끼시고 요놈이 뭔 소릴 하나~하곤
약간 어두운 귀를 쫑긋하고는 싹~ 다 듣고 기신단 말이라.
이거~ 쪼끔만 잘못 지낐다간 대분 피우시던 대꼬바리로 대갈통을 한방 맞을 거 같고......
에이~ 닌장~ 모르겠다. 또 이야기는 히딴 방향으로 나가는 기지 뭐.
이래다 날 새는기라. 히히히...
요새 월희히장이 먹거리에 대해서 지끼고 있지만, 그때는 참말로 먹을 끼 시기 귀했어.
우예다가 오가당이라도 하나 생기만 애끼 먹을라고 갯주머이에 넣어 났다가
고만 다 녹아서 달라붙은 넘을 실밥을 띠 가민서 먹기도 하고,
껌이라도 하나 생기만 종일 씹다가 잘 때는 비름빡에 붙이 났다가
다음날 씹고 해서 미칠을 씹었으니 말이라.
지금 가마이 생각하만 참 못된 행고다지 이기는 하지만,
먹을 끼 원채 귀해 놓은께 뭘 훔치 먹는 짓도 마이 하고 무신 서리도 시기 마이했어.
저울게는 밤이 질기 때문에 저녁을 일찌거이 먹고 동네 아~들 집에 모이서 놀았는데,
저녁이라고는 버리 밥 한 그릇 빼끼 먹은 기 없으이,
그니리 히마리 없는 방구 및 번 피시식 끼고나만 고만 배다지에서 쪼르륵 소리가 나는 기라.
그래서 민화토에다 육백, 또는 뻥같은 화토를 치민서 놀다가 배가 고파지만
화토에 지는 넘이 훔치 오는 그런 내기를 하는 것이었지.
기중 만만한기 짠지 훔치오기하고 무꾸 훔치오긴데,
찐짓독이나 무꾸구디이는 마캉 다 바깥에 있기 때문에 이까이꺼는 일도 아이라.
무꾸는 짚으로 막아놓은 구디~이 입구를 살짝 열고는 시게또 탈 때 쓰는
지단한 송곳자루로 쿡 찍어가이고 꺼내 뿌리만 간단하기 끝날 일이고,
김치도 기양 가이고 나오만 되는 기라.
문제는 밥 훔치는 긴데,
이건 남의 정지에 살짝 끼 들어가서 동솥을 열고 꺼내 와야 되기 때문에,
여간 번거로운 기 아이고 자칫하만 들키 삐리거든.
우선 대문을 열라카만 나무대문이 ‘끼리릭~’하고 소리가 나기 때문에 돌쪼구 있는데다가
쑥개 매로 한쪽 다리를 살짝 들고 소리 안 나기 가마이 오좀을 한분 갈기 나야 되여.
그래곤 정지에 발자국 소리를 직이고 살짝 끼 들어가서 소두방(솥뚜껑)을 여는데,
요놈을 한번에 대분 바짝 들어 올리야지 옆으로 살짝이라도 밀리만
소리가 나서 밤 귀 밝은 어른들한테 들키서 고만 경을 치고 마는 것이라.
하이튼 이래 가이고 밥하고 짠지하고 해서 훔치다가 밤늦게 양푼에다가 비비 먹거나,
짠지를 쭐~쭐~ 째서 밥하고 먹으만 그야말로 맛 대낄이지 뭐.
밥 훔치기가 마땅찮을 때는 기중 쉬운 무꾸만 훔치다 먹기도 했는데,
뻘건 흙이 잔뜩 뭍은 무꾸를 밑두방치는 너무 매운 께 내 삐리고,
색깔이 퍼런 웃두방치만 ‘퇘퇘’하민서 이빨로 돌리까서 맛나게도 먹어 재낐지.
그래고 나만 이누무끼 울매나 소화가 잘 되는지 속은 대루와 죽겠고
그니리 방구가 끊임없이 나와 재끼는데,
요누무껄 기양 가마이 끼만 될 거를 갖은 오도방정을 다 떨민서 끼 재끼는 것이라.
다른 넘 콧구녕에다가 일부로 갔다대고 끼기도 하고,
한참 떠들다가 ‘야~!! 조용해 봐! 바깥에 누구 왔는가부라!’ 요래민서 조용하기 씨기 놓고는
그때 고만 대포거튼 방구를 한방 내 갈기 삐리는 아주 미깔적은 넘도 있었어.
뿐만 아이라 엄지손가락하고 찝게 손가락을 요래~ 갔다 대민서
“요것 쫌 붙이 봐!” 이래놓고 상대방이 영문도 모리고 손가락 두개를 갔다대만
무신 전선 스위치 넣는 거 거치 그때 내 갈기는 넘도 있고,
어떤 넘은 “내 궁디가 이상해여~!” 이래민서 궁디에 손을 갔다 대라고 해놓고는
그때 내 갈기는 아주~ 숭악한 넘도 있었지.
심지어 방구로 갖은 시합을 다 했는데,
오래끼기, 크기 끼기, 잔 방구 마이끼기 등 모든 것이 시합의 대상이었어.
밝히기기 거북한 어떤 넘은 무꾸를 울매나 마이 쳐 먹었는지
잔 방구 포함해서 무려 근 20여방 가까이를 끼 재끼서
그 방면에 신기록을 달성한 넘도 있었어.
닌장~ 기네스 북인가 하는 기 진작 있는 줄 알았더라만 그때 등록을 했을낀데,
참으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지.
근데, 어떤 넘은 무꾸를 시기 마이 쳐 먹고
나름대로는 방구를 대포거치 한분 끼서 우쭐거리 볼라고 똥폼을 시기 잡는기라.
아랫배에다 심을 무지하기 주고 괄약근을 최대한 긴장씨긴 다음
오만 인상을 쓰민서 엄청나기 큰 소리로 끼 재끼긴 했는데,
뭔 덩거리 거튼 기 쪼만침 딸리 나왔는가 실무시 빤수를 벗디이
어딘가에 내 삐리더라고......
근데, 시방 내가 뭔 소릴 지끼는 기지??
뭐 우예 방구 이야기하다가 고만 또 삼천포로 실무시 빠져 뿌맀네.
헛 ~ 마한!!
아적부터 냄새나 죽겄네. 히히히...
............계속..............
8.
어데까정 지낐지?
그랭께 무신 ‘서리’ 해먹는 이야기 지끼다가 이기~ 우예 가이고
각중에 고만 방구이야기가 나와 또 히딴 길로 나가삐맀지?
암매 모르긴 해도 그 당시 촌에서 자란 넘들 치고 누 집 서리한번 안했다 카만
오히려 그넘이 티미해도 보통 티미한 넘이 아닐끼라.
그렇지만 과수원 서리거튼 거는 간땡이가 지법 큰 넘들이 했고
보통은 남의 집 과실이나, 땅콩, 꼬깜, 닭서리 등을 주로 하였지.
말이사 바른 말이지만 지나댕기다가 남의 집 밤나무나 감나무, 살구나무 거튼 것에
돌팔매질 한번 안 해본 넘이 어데 있겠어 그래.
(히히히... 요래민서 도둑질을 정당화 씨기는 기라!)
공소시효가 지난 것만 및 가지만 지끼보자만,
벌건 대낮에 남의 집 딸기밭에 들어가서 주디~이가 벌겋도록 따 먹다가
그 집 큰 헝아한테 붙들리서 손바닥으로 퍽퍽 소리가 나도록 대가빠리를
한 스무 대 정도 맞은 일부터 시작해서 한두 가지가 아니지 뭐.
그중에서도 기중 큰 사건이 수박밭 습격사건인데,
지금도 울 동네 팅구들찌리는 두고두고 회자되는 사건인기라.
이기~ 본래 서리를 할 때는 달이 없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택해야 되는 건 기본이고,
가급적이면 시꺼먼 옷을 입어야 될 뿐아니라,
그것이 마땅찮으만 아예 홀딱 벗고 들어가야 눈에 잘 안 띠는 법이거든.
요런 기본을 잘~ 지킨 넘들이 나름대로 작전을 짜고 수박을 털로 간기라.
근데, 참말로 재수 없기도 근자에 하도 여러 번 도둑을 맞아 주인이
단다이 벼르고 있는 집으로 갔던 것이라.
요넘들은 천지도 모르고 살살 끼 들어가서 서리를 하기 시작했고
수박만 빨리 훔치 가이고 나오만 될낀데,
울매나 수박이 먹고 싶었으만 그 자리에서 수박을 퍽퍽깨서 쳐 먹기 바빴던 기라.
원두막에서 자는 칙 하고 있던 주인이 뭔 소리가 나서 자시 본께
어떤 넘들이 옷을 홀라당 벗고 살살 끼 들어오는 기~ 이기~ 같잖은데,
수박을 그 자리에서 퍽퍽 깨고 있응께 울매나 부예가 났겠어 그래.
대분 후라시 불을 비추민서 저놈들 잡으라고 소리를 비락거치 질러댄께,
당황한 넘들이 후닥닥 내 뺐고 이기~ 참 같잖은 일이 벌어진 기라.
다른 기 아이고 한넘이 급히 토끼다가 그니리 꺼먹 고무신이 뻐꺼진기라.
아~ 그래만 기양 토끼삐리만 그만이지
이넘이 집에 가서 신발 잃어 삐맀다고 혼나까 봐 아가빠리를 쳐 벌리고 엉엉 울민서
“내~~신, 내~~신~~!!” 하다가 고만 붙잡힜는기라.
다른 넘들은 다 토낐는데 요넘만 붙들맀으니,
주인의 온갖 회유와 협박 및 모진 고문(?) 끝에
의리 없게도 고만 줄줄이 공범들을 다 불어 재낀 것이지.
다음날 이 명단은 동네로 고스란히 전달되었는데,
하도 이런 일이 잦은터라 요넘들 못된 버르장머리를 완죤히 고칠라고 그랬던지
우예가이고 동네 방송을 통해 명단을 공개 해 뿌맀는기라. ㅎㅎㅎ
방송으로 호명을 당하던 순간 해당 친구들은 온갖 고난과 수모를 면치 못했는데,
두 넘의 경우만 간략히 소개하만 이렇다.
친구1 ; 시원한 사랑마리에서 아부지가 바리깡으로 대가리를 깎아주고 있었는데,
마침 그때는 대가리를 한 절반쯤 깎은 상태였다.
혹시나 하고 방송에 귀를 기울이시던 아부지는 가~ 이름이 나오자마자
고만 흥분하신 나머지 머리 깎던 넘 등때기를 ‘펑’ 소리가 나도록 때리자,
놀란 그넘은 그 질로 바로 꽁지가 빠지라고 내 빼 삐맀다.
히히히... 결국 그넘은 대가리를 반쪽만 깎은 채로 똑 쥐 뜯어먹은 꼴을 해서
미칠 만에 집에 들어갈 수 있었어....// 히히히...아이고 우수와라~~!!
친구2 : 다른 애들 명단이 죽~나오기 시작하자 자식에 대한 신망이 대단했던
그 친구 어른은 혹시라도 거~ 못된 행고다지 하는 넘들 틈에 끼있으까 봐
단단이 주의를 주시느라고, “야~야~, 너는 댕초 저런 넘들하고 놀만 안된다~!!”
하는 점잖은 말씸이 끝나자 마자, 아무개~하고 이름이 턱 나오는데 그기~ 바로
그넘인 것이었다.
불같이 노하신 어른은 대분 뒤안으로 쪼차가시민서 지개작대기를 찾았고,
그넘은 하매 대문밖으로 줄행랑을 놔 삐맀는데,
암매 모르긴 해도 근 미칠 동안 집 근방에 얼씬도 못했을끼다.
에이~~마한넘들~~!!
그랭께 무신 ‘서리’ 해먹는 이야기 지끼다가 이기~ 우예 가이고
각중에 고만 방구이야기가 나와 또 히딴 길로 나가삐맀지?
암매 모르긴 해도 그 당시 촌에서 자란 넘들 치고 누 집 서리한번 안했다 카만
오히려 그넘이 티미해도 보통 티미한 넘이 아닐끼라.
그렇지만 과수원 서리거튼 거는 간땡이가 지법 큰 넘들이 했고
보통은 남의 집 과실이나, 땅콩, 꼬깜, 닭서리 등을 주로 하였지.
말이사 바른 말이지만 지나댕기다가 남의 집 밤나무나 감나무, 살구나무 거튼 것에
돌팔매질 한번 안 해본 넘이 어데 있겠어 그래.
(히히히... 요래민서 도둑질을 정당화 씨기는 기라!)
공소시효가 지난 것만 및 가지만 지끼보자만,
벌건 대낮에 남의 집 딸기밭에 들어가서 주디~이가 벌겋도록 따 먹다가
그 집 큰 헝아한테 붙들리서 손바닥으로 퍽퍽 소리가 나도록 대가빠리를
한 스무 대 정도 맞은 일부터 시작해서 한두 가지가 아니지 뭐.
그중에서도 기중 큰 사건이 수박밭 습격사건인데,
지금도 울 동네 팅구들찌리는 두고두고 회자되는 사건인기라.
이기~ 본래 서리를 할 때는 달이 없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택해야 되는 건 기본이고,
가급적이면 시꺼먼 옷을 입어야 될 뿐아니라,
그것이 마땅찮으만 아예 홀딱 벗고 들어가야 눈에 잘 안 띠는 법이거든.
요런 기본을 잘~ 지킨 넘들이 나름대로 작전을 짜고 수박을 털로 간기라.
근데, 참말로 재수 없기도 근자에 하도 여러 번 도둑을 맞아 주인이
단다이 벼르고 있는 집으로 갔던 것이라.
요넘들은 천지도 모르고 살살 끼 들어가서 서리를 하기 시작했고
수박만 빨리 훔치 가이고 나오만 될낀데,
울매나 수박이 먹고 싶었으만 그 자리에서 수박을 퍽퍽깨서 쳐 먹기 바빴던 기라.
원두막에서 자는 칙 하고 있던 주인이 뭔 소리가 나서 자시 본께
어떤 넘들이 옷을 홀라당 벗고 살살 끼 들어오는 기~ 이기~ 같잖은데,
수박을 그 자리에서 퍽퍽 깨고 있응께 울매나 부예가 났겠어 그래.
대분 후라시 불을 비추민서 저놈들 잡으라고 소리를 비락거치 질러댄께,
당황한 넘들이 후닥닥 내 뺐고 이기~ 참 같잖은 일이 벌어진 기라.
다른 기 아이고 한넘이 급히 토끼다가 그니리 꺼먹 고무신이 뻐꺼진기라.
아~ 그래만 기양 토끼삐리만 그만이지
이넘이 집에 가서 신발 잃어 삐맀다고 혼나까 봐 아가빠리를 쳐 벌리고 엉엉 울민서
“내~~신, 내~~신~~!!” 하다가 고만 붙잡힜는기라.
다른 넘들은 다 토낐는데 요넘만 붙들맀으니,
주인의 온갖 회유와 협박 및 모진 고문(?) 끝에
의리 없게도 고만 줄줄이 공범들을 다 불어 재낀 것이지.
다음날 이 명단은 동네로 고스란히 전달되었는데,
하도 이런 일이 잦은터라 요넘들 못된 버르장머리를 완죤히 고칠라고 그랬던지
우예가이고 동네 방송을 통해 명단을 공개 해 뿌맀는기라. ㅎㅎㅎ
방송으로 호명을 당하던 순간 해당 친구들은 온갖 고난과 수모를 면치 못했는데,
두 넘의 경우만 간략히 소개하만 이렇다.
친구1 ; 시원한 사랑마리에서 아부지가 바리깡으로 대가리를 깎아주고 있었는데,
마침 그때는 대가리를 한 절반쯤 깎은 상태였다.
혹시나 하고 방송에 귀를 기울이시던 아부지는 가~ 이름이 나오자마자
고만 흥분하신 나머지 머리 깎던 넘 등때기를 ‘펑’ 소리가 나도록 때리자,
놀란 그넘은 그 질로 바로 꽁지가 빠지라고 내 빼 삐맀다.
히히히... 결국 그넘은 대가리를 반쪽만 깎은 채로 똑 쥐 뜯어먹은 꼴을 해서
미칠 만에 집에 들어갈 수 있었어....// 히히히...아이고 우수와라~~!!
친구2 : 다른 애들 명단이 죽~나오기 시작하자 자식에 대한 신망이 대단했던
그 친구 어른은 혹시라도 거~ 못된 행고다지 하는 넘들 틈에 끼있으까 봐
단단이 주의를 주시느라고, “야~야~, 너는 댕초 저런 넘들하고 놀만 안된다~!!”
하는 점잖은 말씸이 끝나자 마자, 아무개~하고 이름이 턱 나오는데 그기~ 바로
그넘인 것이었다.
불같이 노하신 어른은 대분 뒤안으로 쪼차가시민서 지개작대기를 찾았고,
그넘은 하매 대문밖으로 줄행랑을 놔 삐맀는데,
암매 모르긴 해도 근 미칠 동안 집 근방에 얼씬도 못했을끼다.
에이~~마한넘들~~!!
9.
요새 이야기가 자꾸 히딴 방향으로 나가는데 에이~ 난도 몰라~!!
나오는 대로 지끼다가 종 쳐 삐릴챔이라!
미칠 전에 우리 상담실에 한넘이 강제로 잡혀 와서 상담이 의뢰되었어.
이넘이 중2인데 옆에 있는 여학생들을 자꾸 찝쩍거리고 어델 만질라카고,
히안한 소릴지끼 싸서 아~들한테는 ‘변태’라고 불리는 넘인기라.
난, 퍼뜩 그 원인을 두 가지로 추론해 봤는데,
하나는 ‘충동조절장애’니 하는 거 매로 심각한 심리적 문제가 있거나,
아니만 또 그니리 ‘음란물’인가 하는 거 땜에 일어난 거라 추측했지.
여러 가지 심리검사를 해 본 결과 모두 정상으로 나왔고
상담을 해 본께 이넘이 거의 맨날 음란물을 무방비 상태로 봤던 것이라.
시상에 사춘기에 접어든 넘 방에 인터넷을 연결한 컴퓨터를 두고
부모는 맞벌이 하민서 먹고 사느라 정신이 없었으니,
이기~ 미친넘한테 칼자루 쥐어 준거나 다름없었던 기지.
말이 나왔응께 하는 말이지만 우리가 그니리 사춘긴지 오춘긴지 할 때는
음란물이란 기 어데 있었던가?
고작해야 헝아들이 보던 ‘주간경향’이니 ‘썬데이 서울’이니 하는 것의 표지에 실린
무명배우들 사진인데, 수영복이라야 무르팍까정 오는 사리마다거튼 걸 입고
찍은 사진을 가마이 훔치 보고 ‘헬렐레’ 하곤 했던 것이라.
근데, 그때는 요새 매로 집에 마캉 다 목욕탕이 없던 시절이라,
목욕은 남여를 불문하고 동네 냇가에 나와서 할 수 빼끼 없었어.
그러니 목욕하던 장소도 남여가 따로 정해져서 남생도(이름도 군대식) 목깐통과
여생도 목깐통으로 구분되었고, 여생도 목깐통을 지나갈 때는
백지 가재미 눈까릴 뜨고 여분대기를 힐끗 거리민서 살피기도하고 그랬어.
지금 생각하만 대낮에 똑바로 치다 봐도 뭐가 보일까 말까 할낀데,
쌔까만 밤에 그것도 부꾸루와서 올키 치다보도 못하고 힐끗거리며
지나 가민서 그기 ~ 뭐가 보이기나 했겠어 그래.
그때는 그래도 한창 성에 대해 관심이 많은 때라 맨날 머시마들 찌리 모이만
이상한 음담패설을 늘어놓기도 하고,
그래도 쪼끔 나이 먹은 헝아들은 뭔 누무 도통 이해도 안가는
요상시런 소리들을 재끼싸만 거~ 고만 귀가 솔깃하기도 했던 기라.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넘이 과감한 제안을 하는 것이었어.
밤에 여생도 목깐통을 한번 훔치 보자는 것이었지.
우리들은 고만 춤을 꼴까닥 삼키민서 대 찬성을 하고 그날 밤에 행동으로 들어 간기라.
칠흑거치 어두운 밤이라 작전에는 딱 알맞은 날이라,
우리들은 낮은 포복으로 살살 기어서 여생도 목깐통 위쪽으로 올라갔어.
거게서 한 대 여섯 넘이 옷을 홀딱 벗고 물에 끼 들어가서
대가리만 내놓고 냇가 아래로 살살 니리 가는데,
왜 그키 우리들 꼬라지가 우수운 지 웃음을 지우 참고 있었어.
한참을 니리가다 본께 드뎌 여생도 목깐통까지 가찹기 왔는데,
어둠속에서 자시이 본께 누군지 도통 알 수 없는 및 명이서 막 떠들고
수다를 떨어 재끼민서 한창 목깐을 하고 있는기라.
터질 듯한 가슴에 숨을 죽이고 쪼끔 더 아래로 살살 니리 갔디이,
뭐가 희미하기 사람모습이 약간 보이는데,
이건 뭐 참말로 숨이 턱 막혀 뒤질 지경인기라.
근데, 마침 목깐하던 사람들 중에 한사람이 얼찐본께 뭐가 물위에
시커먼 기 둥둥 떠 있는 거 아이겠어.
히히히..... 그기 뭐겠어 그래, 바로 우리들 대가빠리지.
그런께 자기들찌리 지끼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는데, 내용은 이래여.
“저기 뭐라~ 저 우예 시꺼먼 기~!”
“뭐긴 뭐라, 둥굴 토막이겠지 뭐!”
“아이라, 뭐가 있는 거 거테여~!”
“아이, 있긴 뭐가 있다고 그래여~!!”
“가마이 있어봐, 내가 돌삐 한번 떤지보께~!”
이래민서 언나~아 머리통만한 돌삐를 휙 집어 떤지는 기라.
허걱~!!
이기~ 대가빠리에 정통으로 맞았으만 뭐 우옐 뿐 했어 그래?
놀래기도 하고 각중에 울매나 우숩든지 고만 참질 못 해 “푸하하~!!”하곤 대 여섯 넘이
물에서 뛰쳐나와 내 빼 삐린께 이기~ 울매나 황당하고 놀랬겠어 그래.
“저~ 마한 배라 쳐 묵을 눔의 시끼들~!!” 이래민서 돌삐를 막 집어 던지는데,
거기~ 한넘 발뒤꿈치에 정통으로 맞은 기라.
쩔뚝거리민서 뺄가 벗은 채로 꼬치를 달랑대고 똥쭐이 빠져라 토낐지 뭐.
그래서 거~ 우예가서 옷을 지우 찾아 입고,
바로 동네로는 차마 못 끼 들어오고 아채보를 건네서 신작로를 타고 왕릉까정 갔어.
거~서 다시 속개뜰을 거쳐서 밤에 솔밭곡을 넘어서
아채까정 가마이 끼 들어오니라고 무수와 뒤지 뿐 했어.
마한!!
개 코도 아무것도 본 것도 없이.......
.........계속..........
나오는 대로 지끼다가 종 쳐 삐릴챔이라!
미칠 전에 우리 상담실에 한넘이 강제로 잡혀 와서 상담이 의뢰되었어.
이넘이 중2인데 옆에 있는 여학생들을 자꾸 찝쩍거리고 어델 만질라카고,
히안한 소릴지끼 싸서 아~들한테는 ‘변태’라고 불리는 넘인기라.
난, 퍼뜩 그 원인을 두 가지로 추론해 봤는데,
하나는 ‘충동조절장애’니 하는 거 매로 심각한 심리적 문제가 있거나,
아니만 또 그니리 ‘음란물’인가 하는 거 땜에 일어난 거라 추측했지.
여러 가지 심리검사를 해 본 결과 모두 정상으로 나왔고
상담을 해 본께 이넘이 거의 맨날 음란물을 무방비 상태로 봤던 것이라.
시상에 사춘기에 접어든 넘 방에 인터넷을 연결한 컴퓨터를 두고
부모는 맞벌이 하민서 먹고 사느라 정신이 없었으니,
이기~ 미친넘한테 칼자루 쥐어 준거나 다름없었던 기지.
말이 나왔응께 하는 말이지만 우리가 그니리 사춘긴지 오춘긴지 할 때는
음란물이란 기 어데 있었던가?
고작해야 헝아들이 보던 ‘주간경향’이니 ‘썬데이 서울’이니 하는 것의 표지에 실린
무명배우들 사진인데, 수영복이라야 무르팍까정 오는 사리마다거튼 걸 입고
찍은 사진을 가마이 훔치 보고 ‘헬렐레’ 하곤 했던 것이라.
근데, 그때는 요새 매로 집에 마캉 다 목욕탕이 없던 시절이라,
목욕은 남여를 불문하고 동네 냇가에 나와서 할 수 빼끼 없었어.
그러니 목욕하던 장소도 남여가 따로 정해져서 남생도(이름도 군대식) 목깐통과
여생도 목깐통으로 구분되었고, 여생도 목깐통을 지나갈 때는
백지 가재미 눈까릴 뜨고 여분대기를 힐끗 거리민서 살피기도하고 그랬어.
지금 생각하만 대낮에 똑바로 치다 봐도 뭐가 보일까 말까 할낀데,
쌔까만 밤에 그것도 부꾸루와서 올키 치다보도 못하고 힐끗거리며
지나 가민서 그기 ~ 뭐가 보이기나 했겠어 그래.
그때는 그래도 한창 성에 대해 관심이 많은 때라 맨날 머시마들 찌리 모이만
이상한 음담패설을 늘어놓기도 하고,
그래도 쪼끔 나이 먹은 헝아들은 뭔 누무 도통 이해도 안가는
요상시런 소리들을 재끼싸만 거~ 고만 귀가 솔깃하기도 했던 기라.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넘이 과감한 제안을 하는 것이었어.
밤에 여생도 목깐통을 한번 훔치 보자는 것이었지.
우리들은 고만 춤을 꼴까닥 삼키민서 대 찬성을 하고 그날 밤에 행동으로 들어 간기라.
칠흑거치 어두운 밤이라 작전에는 딱 알맞은 날이라,
우리들은 낮은 포복으로 살살 기어서 여생도 목깐통 위쪽으로 올라갔어.
거게서 한 대 여섯 넘이 옷을 홀딱 벗고 물에 끼 들어가서
대가리만 내놓고 냇가 아래로 살살 니리 가는데,
왜 그키 우리들 꼬라지가 우수운 지 웃음을 지우 참고 있었어.
한참을 니리가다 본께 드뎌 여생도 목깐통까지 가찹기 왔는데,
어둠속에서 자시이 본께 누군지 도통 알 수 없는 및 명이서 막 떠들고
수다를 떨어 재끼민서 한창 목깐을 하고 있는기라.
터질 듯한 가슴에 숨을 죽이고 쪼끔 더 아래로 살살 니리 갔디이,
뭐가 희미하기 사람모습이 약간 보이는데,
이건 뭐 참말로 숨이 턱 막혀 뒤질 지경인기라.
근데, 마침 목깐하던 사람들 중에 한사람이 얼찐본께 뭐가 물위에
시커먼 기 둥둥 떠 있는 거 아이겠어.
히히히..... 그기 뭐겠어 그래, 바로 우리들 대가빠리지.
그런께 자기들찌리 지끼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는데, 내용은 이래여.
“저기 뭐라~ 저 우예 시꺼먼 기~!”
“뭐긴 뭐라, 둥굴 토막이겠지 뭐!”
“아이라, 뭐가 있는 거 거테여~!”
“아이, 있긴 뭐가 있다고 그래여~!!”
“가마이 있어봐, 내가 돌삐 한번 떤지보께~!”
이래민서 언나~아 머리통만한 돌삐를 휙 집어 떤지는 기라.
허걱~!!
이기~ 대가빠리에 정통으로 맞았으만 뭐 우옐 뿐 했어 그래?
놀래기도 하고 각중에 울매나 우숩든지 고만 참질 못 해 “푸하하~!!”하곤 대 여섯 넘이
물에서 뛰쳐나와 내 빼 삐린께 이기~ 울매나 황당하고 놀랬겠어 그래.
“저~ 마한 배라 쳐 묵을 눔의 시끼들~!!” 이래민서 돌삐를 막 집어 던지는데,
거기~ 한넘 발뒤꿈치에 정통으로 맞은 기라.
쩔뚝거리민서 뺄가 벗은 채로 꼬치를 달랑대고 똥쭐이 빠져라 토낐지 뭐.
그래서 거~ 우예가서 옷을 지우 찾아 입고,
바로 동네로는 차마 못 끼 들어오고 아채보를 건네서 신작로를 타고 왕릉까정 갔어.
거~서 다시 속개뜰을 거쳐서 밤에 솔밭곡을 넘어서
아채까정 가마이 끼 들어오니라고 무수와 뒤지 뿐 했어.
마한!!
개 코도 아무것도 본 것도 없이.......
.........계속..........
10.
마한 넘들이 나 없을 때 그키 욕을 해 재끼놓고는
오늘 아적부터 장창을 한번 썼디이 전부 무수와서 코끄티도 안 보이네.
그나저나 하던 이야기는 계속지끼야 되겠지?
사실, 이기~ 원래는 숭막의 청년기 시절까정 이야기가 전개 되어야 하는데,
어릴 때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께 거~ 참 희안하기도 잇날 기억이 샘물 솟듯 하네 그리.
본래는 질어야 한 15부작 정도로 생각했지만, 이래다가는 30부작은 일도 아니겠어.
에이~모르겠다. 또 히딴 질로 빠져보자!
잇날에 아~들이 먹을 끼라곤 기껏 라민땅이나 뽀빠이, 쫀디기, 감빵,
월남방매이, 오가당, 눈까리 사탕 뭐 그런 것 이었지만,
그래도 기중 맛있고 만만한 기 뭐니 뭐니 해도 엿이었어.
요새는 뭔 ‘엿 먹으라!’카는 히안한 욕이 있는데,
그 맛좋은 엿을 먹으라는 기 왜 욕이 되는지 모르겠어.
아~참! 이기~ 먹는 이야긴가?
먹는 이야기는 월희 히장이 지끼고 있는데.......
에이~~나도 몰러, 닌장~ 먼저 지끼는 넘이 임재지 뭐.
하이튼 다른 꽈자거튼 거는 돈이 있어야 사 먹는데, 촌에 돈이 어데 있겠어, 그래.
엿이라카는 건 그니리 돈이 없어도 고물딱지나 하다못해 고무신짝 떨어 진거라도
한커리 갔다주만 쪼만침이라도 띠 주기 때문에 그래도 쉽기 맛볼 수 있는 거였어.
그렁께 아~들 있는 집은 그니리 고물이나, 쇳 동가리, 빈병, 떨어진 고무신짝,
뭐 그런 거는 전부 엿 장사 가져다 조 삐리서 남아나는 기 없었고,
어떤 넘은 멀쩡한 아부지 고무신 가져다주고 엿 바꿔 먹었다가 쪼끼 나기도 하고 그랬지.
더구나 형제가 많은 집은 고물 거튼 건 구경도 할 수 없게 되다 본께,
웃마 광산에 까정 올라가서 멀쩡한 쇠 빠이뿌리를 쇠톱으로 짤라 가기도 하민서
하이튼 빌 x랄을 다 하다가 급기야는 쌔비(훔쳐) 먹기 까정했지 뭐라.
저 ~ 멀리서 엿 장사 가시개 소리가 ‘쩡그렁 쩡그렁’ 나만
골목에 놀던 아~들은 순식간에 엿장사 리어커에 쭉 둘러서게 마련이고,
어떤 넘이 엿을 사 먹으만 백지 친 한척 하민서 ‘썬남만 조~!’를
연발하민서 쫄쫄 따라가기도 했어.
그것도 못 얻어먹은 넘들은 리야까 옆에 바짝 붙어서 춤을 찔찔 훌리민서
엿 방티 옆에 붙은 밀가루를 시커먼 손가락으로 찝어서 날람날람 쳐 먹기도 하다가,
엿 장사가 한눈파는 사이에 실구머이 엿 한가락을 얼릉 쌔비서 갯주머이에 넣고는
눈치를 힐끗힐끗 보다가 합바지 방구새듯이 실무시 빠져서 꽁지가 빠져라 내 빼곤 했지.
우리 동네에 주로 오던 엿 장사는 약간 젊고 엄청 허풍이 씬 ‘싸구리 엿 장사’하고,
키가 짝달막하고 약간 어눌하게 생기 가이고
엿 방티를 맨 날 지게에 지고 댕기던 ‘곰패이 엿 장사’,
머리가 허옇고 연세가 아주 많아 동작이 느린 ‘할바이 엿 장사’ 이렇게 세 명이었어.
싸구리 엿장사는 아주 인심아 좋아 ‘까짓누무 꺼 마이 조야지!’ 이래민서
가시개로 엄청 길기 엿을 뚝 잘라 주는 칙 했지만,
사실은 엿이 아주 가느다란 한 걸로 봐서 시기 잡아 땡기서 늘여놓은 엿이었던 거 같아.
근데, 워낙 젊고 눈치가 빨라서 엿 쌔비다가 걸린 넘이 한 두 넘이 아니지만,
손바닥으로 중대가리 대갈통을 퍽퍽 소리가 나도록 및 방 패곤
엄청 큰 엿장사 가시개로 꼬치를 짤라 삐리는 시늉을 내곤 그걸로 끝이었어.
한두 개 썩 실쩍실쩍 쌔비는 걸로 성이 차지 않았던 우리들은
슬슬 간땡이가 부어서 드디어 작전을 짜기에 이르렀지.
작전이란 건 다른 기 아니고 아~들을 두 팻 장으로 농가서
한 무디기는 엿 장사가 오만 “엿 장사 똥 꾸녕, 나발 똥 구녕!” 이래민서
엄지손가락을 양쪽 볼태기에 갔다대고 손바닥을 피서 방긋방긋 돌리민서 신나기 놀리고,
엿 장사가 부예가 나서 그넘들을 막~ 따라가만
숨어있던 나머지 한 무디기 넘들이 엿을 들고 토끼는 것이었어.
참~나~! 만만한 기 뭐라고,
가마이 있는 엿 장사 똥구녕이 왜 나발 똥구녕인지 몰라. 히히히....
하이튼 동작이 느린 ‘할바이 엿장사’한테는 이 방법을 꽤 마이 써먹었어.
‘곰패이 엿장사’는 엿 방티를 지개에 지고 댕긴 데다가
아무리 열나기 놀리도 도통 반응이 없어 열나기 놀리기만 하고 엿은 못 훔치고 말았지.
우옛든 요걸로 및 번 재미를 본 이넘들은 참말로 겁 대가리 없이
젊고 기운 좋은 ‘싸구리 엿장사’를 놀맀던 기라.
아주 성질이 괄괄했던 이양반이 예상했던 대로 나발 똥구녕이라는 소리에 흥분해서
놀리던 아~들을 단번에 쫒아가 붙잡아서 고넘들을 뻥뻥 뚜딜기 패고 있는데,
한 넘이 간땡이가 부었지 그래, 엿을 한 두 개도 아니고,
방티 채로 들고 골목으로 토낐던 기라..
근데, 골목을 급히 뛰서 돌아가다가 볼일 보러 나오시는 누 집 아부지하고 탁~ 바티리서,
고만 코가 깨지라고 땅바닥에 자빠져 뿌맀지 뭐라.
마한~!
엿 방티는 땅바닥에 태기가 쳐 져서 바닥이 온통 허~~옇고,
방티들고 토끼던 놈은 그 어른한테 고만 맥없이 딱 붙들리고 말았던 기라.
히히히.....
두말할 꺼 없이 그넘은 동네 골목에서 인민재판에 처해졌고,
엿 방티 값 까정 다 물어 줬음은 물론 뒤지도록 맞고 집에서 미칠 쪼끼났지 뭐.
에~엣~~망고리 거튼 넘들~!!
.........계속..........
오늘 아적부터 장창을 한번 썼디이 전부 무수와서 코끄티도 안 보이네.
그나저나 하던 이야기는 계속지끼야 되겠지?
사실, 이기~ 원래는 숭막의 청년기 시절까정 이야기가 전개 되어야 하는데,
어릴 때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께 거~ 참 희안하기도 잇날 기억이 샘물 솟듯 하네 그리.
본래는 질어야 한 15부작 정도로 생각했지만, 이래다가는 30부작은 일도 아니겠어.
에이~모르겠다. 또 히딴 질로 빠져보자!
잇날에 아~들이 먹을 끼라곤 기껏 라민땅이나 뽀빠이, 쫀디기, 감빵,
월남방매이, 오가당, 눈까리 사탕 뭐 그런 것 이었지만,
그래도 기중 맛있고 만만한 기 뭐니 뭐니 해도 엿이었어.
요새는 뭔 ‘엿 먹으라!’카는 히안한 욕이 있는데,
그 맛좋은 엿을 먹으라는 기 왜 욕이 되는지 모르겠어.
아~참! 이기~ 먹는 이야긴가?
먹는 이야기는 월희 히장이 지끼고 있는데.......
에이~~나도 몰러, 닌장~ 먼저 지끼는 넘이 임재지 뭐.
하이튼 다른 꽈자거튼 거는 돈이 있어야 사 먹는데, 촌에 돈이 어데 있겠어, 그래.
엿이라카는 건 그니리 돈이 없어도 고물딱지나 하다못해 고무신짝 떨어 진거라도
한커리 갔다주만 쪼만침이라도 띠 주기 때문에 그래도 쉽기 맛볼 수 있는 거였어.
그렁께 아~들 있는 집은 그니리 고물이나, 쇳 동가리, 빈병, 떨어진 고무신짝,
뭐 그런 거는 전부 엿 장사 가져다 조 삐리서 남아나는 기 없었고,
어떤 넘은 멀쩡한 아부지 고무신 가져다주고 엿 바꿔 먹었다가 쪼끼 나기도 하고 그랬지.
더구나 형제가 많은 집은 고물 거튼 건 구경도 할 수 없게 되다 본께,
웃마 광산에 까정 올라가서 멀쩡한 쇠 빠이뿌리를 쇠톱으로 짤라 가기도 하민서
하이튼 빌 x랄을 다 하다가 급기야는 쌔비(훔쳐) 먹기 까정했지 뭐라.
저 ~ 멀리서 엿 장사 가시개 소리가 ‘쩡그렁 쩡그렁’ 나만
골목에 놀던 아~들은 순식간에 엿장사 리어커에 쭉 둘러서게 마련이고,
어떤 넘이 엿을 사 먹으만 백지 친 한척 하민서 ‘썬남만 조~!’를
연발하민서 쫄쫄 따라가기도 했어.
그것도 못 얻어먹은 넘들은 리야까 옆에 바짝 붙어서 춤을 찔찔 훌리민서
엿 방티 옆에 붙은 밀가루를 시커먼 손가락으로 찝어서 날람날람 쳐 먹기도 하다가,
엿 장사가 한눈파는 사이에 실구머이 엿 한가락을 얼릉 쌔비서 갯주머이에 넣고는
눈치를 힐끗힐끗 보다가 합바지 방구새듯이 실무시 빠져서 꽁지가 빠져라 내 빼곤 했지.
우리 동네에 주로 오던 엿 장사는 약간 젊고 엄청 허풍이 씬 ‘싸구리 엿 장사’하고,
키가 짝달막하고 약간 어눌하게 생기 가이고
엿 방티를 맨 날 지게에 지고 댕기던 ‘곰패이 엿 장사’,
머리가 허옇고 연세가 아주 많아 동작이 느린 ‘할바이 엿 장사’ 이렇게 세 명이었어.
싸구리 엿장사는 아주 인심아 좋아 ‘까짓누무 꺼 마이 조야지!’ 이래민서
가시개로 엄청 길기 엿을 뚝 잘라 주는 칙 했지만,
사실은 엿이 아주 가느다란 한 걸로 봐서 시기 잡아 땡기서 늘여놓은 엿이었던 거 같아.
근데, 워낙 젊고 눈치가 빨라서 엿 쌔비다가 걸린 넘이 한 두 넘이 아니지만,
손바닥으로 중대가리 대갈통을 퍽퍽 소리가 나도록 및 방 패곤
엄청 큰 엿장사 가시개로 꼬치를 짤라 삐리는 시늉을 내곤 그걸로 끝이었어.
한두 개 썩 실쩍실쩍 쌔비는 걸로 성이 차지 않았던 우리들은
슬슬 간땡이가 부어서 드디어 작전을 짜기에 이르렀지.
작전이란 건 다른 기 아니고 아~들을 두 팻 장으로 농가서
한 무디기는 엿 장사가 오만 “엿 장사 똥 꾸녕, 나발 똥 구녕!” 이래민서
엄지손가락을 양쪽 볼태기에 갔다대고 손바닥을 피서 방긋방긋 돌리민서 신나기 놀리고,
엿 장사가 부예가 나서 그넘들을 막~ 따라가만
숨어있던 나머지 한 무디기 넘들이 엿을 들고 토끼는 것이었어.
참~나~! 만만한 기 뭐라고,
가마이 있는 엿 장사 똥구녕이 왜 나발 똥구녕인지 몰라. 히히히....
하이튼 동작이 느린 ‘할바이 엿장사’한테는 이 방법을 꽤 마이 써먹었어.
‘곰패이 엿장사’는 엿 방티를 지개에 지고 댕긴 데다가
아무리 열나기 놀리도 도통 반응이 없어 열나기 놀리기만 하고 엿은 못 훔치고 말았지.
우옛든 요걸로 및 번 재미를 본 이넘들은 참말로 겁 대가리 없이
젊고 기운 좋은 ‘싸구리 엿장사’를 놀맀던 기라.
아주 성질이 괄괄했던 이양반이 예상했던 대로 나발 똥구녕이라는 소리에 흥분해서
놀리던 아~들을 단번에 쫒아가 붙잡아서 고넘들을 뻥뻥 뚜딜기 패고 있는데,
한 넘이 간땡이가 부었지 그래, 엿을 한 두 개도 아니고,
방티 채로 들고 골목으로 토낐던 기라..
근데, 골목을 급히 뛰서 돌아가다가 볼일 보러 나오시는 누 집 아부지하고 탁~ 바티리서,
고만 코가 깨지라고 땅바닥에 자빠져 뿌맀지 뭐라.
마한~!
엿 방티는 땅바닥에 태기가 쳐 져서 바닥이 온통 허~~옇고,
방티들고 토끼던 놈은 그 어른한테 고만 맥없이 딱 붙들리고 말았던 기라.
히히히.....
두말할 꺼 없이 그넘은 동네 골목에서 인민재판에 처해졌고,
엿 방티 값 까정 다 물어 줬음은 물론 뒤지도록 맞고 집에서 미칠 쪼끼났지 뭐.
에~엣~~망고리 거튼 넘들~!!
.........계속..........
11.
부처님 오신 날이 아래께 지나갔지만, 불교의 핵심 경전인 반야심경에 보만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이란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 “불구부정”이라는 것은 ‘空이라는 차원에서 보만 더러운 것도 없고
깨끗한 것도 없다’ 뭐 그런 이야길 끼라. 즉, ‘더럽다, 깨끗하다’ 하는 것도
인간의 관념과 알량한 분별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인 것이라.
아적부터~ 뭔누무 거북이 등때기에 터라구나는 소리냐?
내가 시방부터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하는 장소인
통시에 대해서 지낄라 카는데, 모도 “이구~ 더리라~!” 이래민서
실구머이 지민하민서 피해가지 마라는 심오한 뜻인 것이다.
지금이야 모도 현대식 건물에 깨끗한 수세식 통시들을 사용하지만,
잇날에는 마캉 다 바가지로 망웃을 퍼서 x지게로 져 날라야 되는 퍼세식 통시였지.
이기~ 보기도 뭣하고 냄새도 마이 나지만 불편한 기 한두 가지가 아니였어.
우선 쪼그리고 앉아서 볼 일 보는 자세부터가 영~ 거석한데,
오래 앉아 있으만 변비라든지 내가 한동안 아주 찢어지는 고통을 겪었던
그니리 치x 거튼 빙이 있는 사람은 암메 무르팍이 아파 대다이 거석 할 끼라.
뿐만 아니라 잇날부터 처갓집하고 통시는 먼 기 좋다케서 밤에 자다가
배가 아프민서 소식이 살살 오만, 참말로 귀찮기 짝이 없는 것이라.
더구나 겨울 게 찬바람이라도 휙휙 불 때 그 한데서 이래~까고 앉아 있을라카만,
궁디가 울매나 시리고 그니리 R두 쪽이 바짝 쪼그라들어
똑 바짝마른 추자거치 땡땡해져서 얼어터질 거 거튼 기
이기~ 보통 고역이 아닌 것이었어.
말이 나왔응께 하는 말이지만 난도 어릴 때 한때 밤만 되만 그니리 볼일이 보고 싶은데,
그 깜깜한 밤에 통시까정 가서 볼일을 볼라만 울매나 무수운가 말이라.
댄찌(후라쉬)라도 있으만 좋았겠지만 촌에 그런 기 어데있겠어 그래.
다황을 가이가만 핀하겠지만 그것도 히퍼기 때문에 기껏 해야
신문조우 쪼가리에 불을 붙이 가이고 가다가 고만 중간에 다 꺼자 뿌리고 그랬지 뭐.
더군다나 통시에는 온갖 무수운 전설이 퍼져 있는데,
달걀귀신인지 뭔지 하는 아주 잇날 전설에서부터,
볼일을 끝내고 마무리 작업을 할 때 쯤 각중에 밑에서
시커먼 손이 올라와서 슥~ 딲아 준다는 설에다가,
뭔누무 귀신이 힛바닥을 낼름 내 밀고 “빨간 조우쪼가리 주까,
파란 조이쪼가리 주까?“ 한다는 최근의 전설까정 아주 다양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어.
그래서 여북했으만 할매가 달구집에 절을 시번하만 밤x이 안 매룹다 카시서
그 말씸을 철썩거치 밑고 야밤에 달구새끼 한테 대고 절 까정 다 했으까? 마한~!!
근데, 참말로 디기 더룹고 거석하기 짝이 없는 거는 말이라,
통시에 앉아서 이래~ 볼일을 보는데,
그니리 덩거리가 밑에 떨어지민서 ‘텅’하는 기분 나뿐 소리와 함께
아주 거석하기도 뭔 물이 펑~ 튀기민서
궁디에 턱 묻어 뿌리는 아주 기맥히는 일이 종종 발생한단 말일쎄. 마한~!
망웃을 퍼고 울매 안 지난 통시일수록 요런 현상이 아주~ 심했어.
왜냐? 건디기는 다 퍼고 밑에 물만 남았기 때문이거든. 히~~!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어도 이건~ 참말로 보통일이 아인기라!!
그렇다고 ‘에이, 마한니리 ~ 기분 참말로 더룹네!’ 이래민서 부예만 내서는 안 되지.
사람 대가빠리라 카는 건 근대 적기 나가까봐 폼으로 붙이 논 기 아이라,
쓰라고 있는 거 아이겠어?
x물이 튀지 않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해결법은 신문쪼가리 거튼 걸
밑에다가 툭 떤지 놓고 누는 방법이 있지만,
조우 쪼가리가 울매나 귀한건데 그럴 끼 어데 있겠어?
그런께 기중 쉽게 구 할 수 있는 호박잎이나
토란 잎사구를 깔만 간단히 해결되는 기지 뭐.
근데, 볼일 급해 죽겠는데 그런 거 구할 여가가 어데 있겠어.
마한, 그랭께 머리는 써라고 있는 기지.
대충 5가지 방법이 있는데 너무 이야기가 질어서 간략히 요약하만 이래여.
1. 스텝(step) 법 : ‘힛 앤 런(hit and run)’이라고 할 수 있지. 덩거리가 떨어지는 순간 발을 좌우로 옮기민서 궁디도 좌우로 이동시키만 되여. 운동 삼아 재미있잖아?
2. 숏 컷(short cut) 법 : 내용물을 아주 짧게 짤라서 떨어지는 덩거리를 작게 하는기라.덩거리가 작은데 튀기 봐야 울매나 튀기겠어?
3. 롱 컷(long cut) 법 : 아주 질기 짤라 삐리는 기라. (기양 밑으로 쑥 빨리 들어갈 끼라.근데, 그니리 영어로 써서 모도 알란지 모르겠네. 저 웃마 젤이뻐 선배님이나 아시까? 히히히....... )
4. 타잔 법 : 천장에 줄을 매고 타잔 매로 타고 가민서 통시에 빠줏고 내 빼고,
빠줏고 내 빼고.... (암메, 이기~ 기중 재미있지 싶어! . )
5. 압축공기 발사 법 : 덩거리가 떨어져서 x물이 튀어 오르는 순간 강력한 방구를 끼 재끼서 밀어내는 방법이라.
모도 디기 재미있지? 히히히....
에~~엣~~~냄새~!
마한~!!
...........계속.......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이란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 “불구부정”이라는 것은 ‘空이라는 차원에서 보만 더러운 것도 없고
깨끗한 것도 없다’ 뭐 그런 이야길 끼라. 즉, ‘더럽다, 깨끗하다’ 하는 것도
인간의 관념과 알량한 분별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인 것이라.
아적부터~ 뭔누무 거북이 등때기에 터라구나는 소리냐?
내가 시방부터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하는 장소인
통시에 대해서 지낄라 카는데, 모도 “이구~ 더리라~!” 이래민서
실구머이 지민하민서 피해가지 마라는 심오한 뜻인 것이다.
지금이야 모도 현대식 건물에 깨끗한 수세식 통시들을 사용하지만,
잇날에는 마캉 다 바가지로 망웃을 퍼서 x지게로 져 날라야 되는 퍼세식 통시였지.
이기~ 보기도 뭣하고 냄새도 마이 나지만 불편한 기 한두 가지가 아니였어.
우선 쪼그리고 앉아서 볼 일 보는 자세부터가 영~ 거석한데,
오래 앉아 있으만 변비라든지 내가 한동안 아주 찢어지는 고통을 겪었던
그니리 치x 거튼 빙이 있는 사람은 암메 무르팍이 아파 대다이 거석 할 끼라.
뿐만 아니라 잇날부터 처갓집하고 통시는 먼 기 좋다케서 밤에 자다가
배가 아프민서 소식이 살살 오만, 참말로 귀찮기 짝이 없는 것이라.
더구나 겨울 게 찬바람이라도 휙휙 불 때 그 한데서 이래~까고 앉아 있을라카만,
궁디가 울매나 시리고 그니리 R두 쪽이 바짝 쪼그라들어
똑 바짝마른 추자거치 땡땡해져서 얼어터질 거 거튼 기
이기~ 보통 고역이 아닌 것이었어.
말이 나왔응께 하는 말이지만 난도 어릴 때 한때 밤만 되만 그니리 볼일이 보고 싶은데,
그 깜깜한 밤에 통시까정 가서 볼일을 볼라만 울매나 무수운가 말이라.
댄찌(후라쉬)라도 있으만 좋았겠지만 촌에 그런 기 어데있겠어 그래.
다황을 가이가만 핀하겠지만 그것도 히퍼기 때문에 기껏 해야
신문조우 쪼가리에 불을 붙이 가이고 가다가 고만 중간에 다 꺼자 뿌리고 그랬지 뭐.
더군다나 통시에는 온갖 무수운 전설이 퍼져 있는데,
달걀귀신인지 뭔지 하는 아주 잇날 전설에서부터,
볼일을 끝내고 마무리 작업을 할 때 쯤 각중에 밑에서
시커먼 손이 올라와서 슥~ 딲아 준다는 설에다가,
뭔누무 귀신이 힛바닥을 낼름 내 밀고 “빨간 조우쪼가리 주까,
파란 조이쪼가리 주까?“ 한다는 최근의 전설까정 아주 다양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어.
그래서 여북했으만 할매가 달구집에 절을 시번하만 밤x이 안 매룹다 카시서
그 말씸을 철썩거치 밑고 야밤에 달구새끼 한테 대고 절 까정 다 했으까? 마한~!!
근데, 참말로 디기 더룹고 거석하기 짝이 없는 거는 말이라,
통시에 앉아서 이래~ 볼일을 보는데,
그니리 덩거리가 밑에 떨어지민서 ‘텅’하는 기분 나뿐 소리와 함께
아주 거석하기도 뭔 물이 펑~ 튀기민서
궁디에 턱 묻어 뿌리는 아주 기맥히는 일이 종종 발생한단 말일쎄. 마한~!
망웃을 퍼고 울매 안 지난 통시일수록 요런 현상이 아주~ 심했어.
왜냐? 건디기는 다 퍼고 밑에 물만 남았기 때문이거든. 히~~!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어도 이건~ 참말로 보통일이 아인기라!!
그렇다고 ‘에이, 마한니리 ~ 기분 참말로 더룹네!’ 이래민서 부예만 내서는 안 되지.
사람 대가빠리라 카는 건 근대 적기 나가까봐 폼으로 붙이 논 기 아이라,
쓰라고 있는 거 아이겠어?
x물이 튀지 않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해결법은 신문쪼가리 거튼 걸
밑에다가 툭 떤지 놓고 누는 방법이 있지만,
조우 쪼가리가 울매나 귀한건데 그럴 끼 어데 있겠어?
그런께 기중 쉽게 구 할 수 있는 호박잎이나
토란 잎사구를 깔만 간단히 해결되는 기지 뭐.
근데, 볼일 급해 죽겠는데 그런 거 구할 여가가 어데 있겠어.
마한, 그랭께 머리는 써라고 있는 기지.
대충 5가지 방법이 있는데 너무 이야기가 질어서 간략히 요약하만 이래여.
1. 스텝(step) 법 : ‘힛 앤 런(hit and run)’이라고 할 수 있지. 덩거리가 떨어지는 순간 발을 좌우로 옮기민서 궁디도 좌우로 이동시키만 되여. 운동 삼아 재미있잖아?
2. 숏 컷(short cut) 법 : 내용물을 아주 짧게 짤라서 떨어지는 덩거리를 작게 하는기라.덩거리가 작은데 튀기 봐야 울매나 튀기겠어?
3. 롱 컷(long cut) 법 : 아주 질기 짤라 삐리는 기라. (기양 밑으로 쑥 빨리 들어갈 끼라.근데, 그니리 영어로 써서 모도 알란지 모르겠네. 저 웃마 젤이뻐 선배님이나 아시까? 히히히....... )
4. 타잔 법 : 천장에 줄을 매고 타잔 매로 타고 가민서 통시에 빠줏고 내 빼고,
빠줏고 내 빼고.... (암메, 이기~ 기중 재미있지 싶어! . )
5. 압축공기 발사 법 : 덩거리가 떨어져서 x물이 튀어 오르는 순간 강력한 방구를 끼 재끼서 밀어내는 방법이라.
모도 디기 재미있지? 히히히....
에~~엣~~~냄새~!
마한~!!
...........계속.......
인간이 느끼는 즐거움은 참으로 많은데,
어떤 넘은 먹는 즐거움이 기중 좋다카민서 아주 원초적 본능(?)을 들어내는가 하만,
또 어떤 넘은 사랑하는 즐거움이 어째니 하민서 지법 고상한 칙 하기도 하지.
그러나 무엇보다 배설의 쾌감(?)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니,
그래서 Maslow인가 하는 양코배기 염감재이는 ‘욕구의 위계’니 뭐니 하는 이론에서
먹고 자고 싸고 하는 욕구를 기본적 욕구(생리적 욕구)라 명명하고
이것이 만족되어야 또 다른 고상한 욕구가 생기는 법이라고 한 것이라.
그래서 이 숭막도 일찌거이 이런 점을 간파하고 언젠가
‘금강산도 볼 일 본 후’라고 하는 불후의 명언을 남기지 않았던가?
우옛든 요런 ‘배설의 쾌감’은 참는 시간에 비례해서 쾌감도 증가하기 마련인데,
밀리는 고속도로에서 참고 또 참다가 지우 휴게소에 도착해서
후다닥 허리빵을 풀고 단다이 막아놓던 문을 열고 봇물을 쏟아낼 때의
그 쾌감과 시원함은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 아니겠어?
문제는 그 엄청난 쾌감 후에 뒤처리를 할 조우쪼가리가 없다면
이기 ~ 또 울매나 엄청난 불쾌감이 밀려 올 낀가 말이라.
이때, 어떤 넘은 사리마다를 벗어서 딲기도 하고 양말을 벗어서 딲기도 한다는데,
그런 구태의연한 방법 외에 퍼세식 통시에서 x물 피하는 거 매로 여러 가지
다른 방법이 있긴 하지만 맨입으로는 몬 갈키준께 각자 연구해서 리플 달아 제출해봐.
근데, 시방 내가 뭔 이야길 지끼고 있는 거여?
어제부터 촌에 있는 퍼세식 통시에 대한 이야길 지끼고 있는 것이잖아?
마한, 통시 이야기 지끼는 걸 정당화 씨길라고 서설을 너무 질기 풀었네 그리.
우옛든 그때는 밤에 통시에 갈라만 시기 무수왔고,
하이튼 일부러 밤에 통시 가는 넘을 놀래낄라고
가마이 숨었다가 각중에 댄찌(후라시)를 턱쪼가리 밑에다 갔다 대고
힛바닥을 날름날름하민서 귀신 숭내를 내서 기겁을 하도록 맨들기도 하고 그랬어.
에~ 그렁께 어제 이야기에서 x물 튀기는 거 방지하는 법을 갈키 줬지만,
겨울에도 또 이니리끼 골치 아픈 문제가 하나 생기는 기라.
뭔 이야기냐?
저울게 날씨가 추울때는 이 누무 통시에 볼일을 보고 나만 이누무끼 금방 얼어붙어 삐리서, 똑 피라미드 거치 점점 높아지는 기라.
그래다가 궁디를 찌를 정도택 되만 결국은 이누무껄 뚜두리 깨야 되거든.
닌장~ 남여평등 운운하고 떠들어 대지만 항상 깨끗하고 고상한 건 전부 여자 몫이고,
더룹고 힘들고 지저분한 일은 전부 머시마들이 해야 되는 일이라.
참말로 욕지기 나는 일이지만 그니리 꼴꼴난 알 두쪽 찬 죄로 해야지 뭐 우예여.
마한, 요넘을 지게 작다구를 가이고 퍽 뚜디리만
누우런 황금 가루가 눈부시게 티기민서 부셔져 내리는데,
요것도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고 염축으로 살살 요령껏 뚜두리 깨야 되는기라.
너무 글력이 씨고 의욕이 넘쳐흘러 고만 시기 뚜디리 패서
아름다운 황금색 가루가 얼굴로 퍽 튀기 뿌리만,
말도 못하기 묘한 느낌과 함께 참말로 기분 더루운 기라.
에이~닌자앙~! 참말로 빌누무껄 다 해봤어!
금생에는 좋은 업을 쌓아서 지발 다음 생애엔 있는 집에 귀하기 태어나서
세상에 이런 천한 일은 있는 줄도 아예 모르고,
모카커피 향에 젖어 그저 문학과 인생, 철학, 사랑, 음악거튼 이야기나 지끼민서
지법 우아하고 고상한척 하고 살아 봤으면 좋겠구만,
오늘날 까정도 맨날 숭막거튼 짓에다 뒤잖은 사기나 치고 댕기니
그것도 하매 말짱 글러 먹은 것 같애여.
근데 미칠 전에 가은가서 왕릉 살던 팅구를 만나서
‘너~들은 촌에서 나무도 한 짐 안 해 보고 큰 넘들이 뭘 알아?’ 이래민서 퉁을 좀 줬더이,
한참 뭔 이야기를 지끼는데 나름대로 다~ 애로점은 있었더구만!
허~!! 이 팅구가 왕릉3구 비탈에 살 때 x퍼든 이야기를 하는데 아주 예술이더라고.
그 팅구 왈,
요 망웃이라는 걸 펄 때는 냄새가 좀 나더라도 우선 x빠가지를 가이고
매 ~ 돌리 저어서 잘~ 섞은 다음에 x버지기에 안 흘리도록 살폿이 퍼 담아 가이고,
x지개로 지고 균형을 잘~ 잡아서 4분의 3박자 왈츠나 4분에 4박자 뽕짝리듬을 타민서
아주 ~ 예술적으로 걸어가야 안 쏟아진다 카더라고.
그래서 그 팅구가 그니리 x지게 지고 댕기민서 음악적 감성을 키와 가이고,
오늘날 그키 키타를 잘 팅기고 노래를 잘 한다카민서 노가리를 까는데,
십상 그럴 듯하기 지끼더라 캉께.
근데, 지가 워낙 심이 씨서 한 날은 한 버지기 이빠이 되도록
하도마이 퍼 담아 가이고 지고 니리가다가,
고만 x지게가 뿌러지는 바람에 고만 3구 비탈을 마캉다 x으로 칠갑을 해서
동네사람들의 엄청난 눈총과 비난을 받는 일을 저지르고는
물을 막 ~ 퍼다 흔치고 연탄재를 갖다 뿌리고 이래느라고 시껍한 사건이 있었다 카는데,
참말인지는 모르겠어.
마한, 그 지경이 됐으만 우예가이고 질바닥만 그키 x칠을 했겠어 그래.
사람은 더 하만 더했겠지. 이치가 안 그래여?
이크 ~~!! 이 이야기 아무한테도 지끼지 마라 켔는데 싹~ 다~지끼 뿌맀네.
마한!!
마캉 다 혼자만 알고 있어. 핑기지 말고!!
..........계속..............
내가 아래부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 해결 장소인 통시에 대해 이야기를 지낀께
“이구~ 더리라~!” 이카민서 나를 아예 그니리 x취급하고는 답글도 한 개도 안 달아주고,
내가 잠든 오밤중에 저~들찌리 만나서 월희 히장 핀만 들고 히히덕거리민서 놀았다 이기지?
뿌드득~!! 두고 보자~! 특히 관산댁이, 순자여사......
오~~냐 그래 너~들은 헤이즐넌가 해글런가 하는 코피향을 코끄티로 맡으민서
먹는 이야긴지 하는 그니리 꺼 가이고 고상한 이야기나 질래 지끼싸라!
어차피 세상에는 험한 일 하는 넘도 있어야 된께,
팔자거석한 나거튼 넘은 계속 하던짓으로 지저분한 소릴 지끼댈 챔인께.
마한~~!!==33=3=3=3=3=3부예~~!!=3=3=33흥분=3=33 열나 ~ 흥분!!=3=3=33
에~ 그러만 슬슬~~지끼보까~!!
오늘 지낄 이야기도 약간 지저분하긴 하지만,
여러 팅구들은 항상 불교의 여러 경전 중에서 액기스만 모아 놓은 ‘반야심경’의
‘불구부정’이라는 말을 명심하고 더룹다는 편견을 내 삐리고 진지하기 경청하길 바래여.
요새는 모도 도시물깨나 먹었다고 허물껀하기 해가이고 댕기민서 똥폼들을 잡고 있지만,
잇날에는 그니리 목구녕이 포도청이라 모도 힘들고 어룹기 살다본께
위생관념이니 그런 건 아예 생각할 여가가 개 코녕 만침도 없었던 기라.
그런께 아~들 해가이고 댕기는 꼬라지도 코를 찔찔 흘리민서
눈에는 눈꼽이 찌찌하게 끼고,
콧구녕에도 엄청난 양의 지하자원이 매장 되어있기 마련이었지.
시방도 그런 넘이 가끔썩 있긴 하지만 공부시간에 앉아서 지단한 손톱으로
콧구녕 속에서 엄청난 양의 석탄을 캐내는 거 까정은 좋은데,
이넘을 또 손가락으로 매 돌리가민서 비비가이고 경단거치 맹글어서
옆자리로 튁 ~ 팅기 삐리는 아주 숭악한 넘도 있었어.
손톱 밑은 씨커멓고 손에는 거북이 등때기거치 때가 덕지덕지 한데다가,
좀 뭣 한 넘들은 대가리에 씨가리가 허옇고 이가 실실 기 댕기기도 했어.
이기~ 심할 때는 거~ 독한 맹독성 농약인 디디치를 대가리에 흔치기도 하고
온몸에 허옇기 바르기도 했으니 이기~울매나 거석한 일이라 그래.
솔직히 그 시절에 살민서 “나는 이가 뭔지도 몰라여!” 요래는 넘이 있다카만,
그건 100% 가짓말이라. 뭐시라, 100%?
이기~ 어데서 마이 듣던 소린데!
이구~~ 무시라, 또 저 웃마 100% 헝님 쫒아 오실라. 귀 디기 밝으시여!=3=3=3=3
하이튼 하도 씨커멓기 해서 안 씻고 댕긴께 선생님이 불시에 ‘용의검사’를 하는 날이면
거 ~ 추운 한 저울게 눈에 가서 손을 비비민서 씻어대고 난리를 쳤어.
초딩 때 한 번은 용의 검사를 했는데 하도 안 씻고 말을 안 들어서 그랬는지,
시수 안하고 손에 때 많은 넘들을 골라서 다른 교실을 한 바퀴 돌리민서
우사를 씨기기도 했어. 모간지에다가 “나는 까마구 사촌!” “까마구야 놀자!”
“때 좀 사시요~!” 뭐 이런 문구가 새겨진 팻말을 걸고....... ㅎㅎㅎ
그때는 학동들 건강을 위해 나라에서 챙기 준 기 회충약을 공짜로 믹이 주는 것이었어.
회충이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채변 검사라 카는 걸 하는데,
그기~ 참말로 웃지 못 할 일이 대다이 마이 벌어지는 기라.
이걸 할라만 통시에 가서 하이튼 거석하고 뭐 우째고 해서 다황으로 썬남 찍어 가이고,
봉투 안에 있는 비누루 쪼가리에 묻히서 갔다내야 되는데,
아주 공정이 번거로운데다가 ‘에이~ 더리라!’ 이런 생각이 들어 왠지 하기 싫었는 기라.
더군다나 학교 가이가서 제출할 때 지지바들이 치다 보까 봐 책으로 요래 숨카 가이고
실무시 가서 주 넣고 오는데도 백지 부꾸루와서 낯 빤대기가 화끈거리는 기라.
그래서 끝 까정 안 내고 버팄는데 선생님이 그날 까정 안 내는 넘은
싹~ 다 패 지긴다 카시민서 바깥으로 쫒아 내시는 기라.
약빠른 넘들 몇 넘은 학교 밴소에 가서 통시다리 다 배리민서 해결을 했고,
숭막같고 어물한 우리들은 우예까 하고 찌웃거리고 댕기다 본께,
질가에 개똥하고 소똥이 쌔빌렀는 기라.
히히히... 각중에 주디가 바소가리거치 째지민서 “바로 요기라!!” 이래민서
소똥을 꼬장막대기로 찍어서 담아 가이고 제출해서 안 뚜디리 맞았지 뭐.
문제는 그로부터 한 참 지난 후에 벌어졌어.
검사 결과가 나오고 회충 있는 넘들의 명단이 불려지는데,
소똥을 묻히 냈던 넘들도 마캉 다 회충이 있는 넘으로 판명이 된 것이라.
나~~참~!!
그렇다고 선생님한테 소똥냈다고 말하만 맞아 뒤질끼고 기양 아무소리도 못했어.
근데, 회충약을 농가 주고 집에 가서 먹으라카만 요넘들이 또 안 쳐 먹으까 봐
선생님이 손수 주전자에 물을 떠다 보는 앞에서 먹으라 카시는 기라.
마한~! 참말로 고만 내 빼 삐리고 싶더라고.
할 수 없이 먹었지 뭐!
씨~ ~~양도 디룹기 많아여~!! 한웅큼 잔뜩 되더라고........
그니리 소똥에도 회충이 있는지 누가 알았겠어 그래!!
에엣~~ 마한~!!
..........계속.........
밤을 새워가며 지끼도 미칠 밤을 깔깔거릴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지.
그러나 돌이켜보면 아픈 상처 하나씩 동여 메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일 끼고,
안직도 아무한테나 터놓고 지끼기 싫은 것들도 마이 있을 끼라.
그러나 인생의 절반을 훌쩍 넘겨버린 지금은 그것마저도 감싸 안으며 살아야 되겠지.
그 당시에는 모도 살기가 힘들었지만, 특히 촌에서 농사짓는 집일수록
돈 기경하기가 더 힘들었던 것 같아여.
그러이 핵교 갈 때 학용품이니 하는 것도 지대로 챙기 갈 수 없었고,
매월 몇 푼어치썩 내는 기성회비니 하는 것도 제때에 낼 수 없는 형편의 팅구들이 많았어.
나 역시도 학교에서 미술시간이 기중 싫었는데, 이유는 준비물 때문이었지.
미술 준비를 할라만 때로는 달걀을 팔아 가이고 지우 크레용 거튼 걸 장만하기도 하고
그마저 안 될 때는 준비를 못해서 복도에 쫒겨 나기도 했으며,
때로는 한 시간 내내 벌을 받기도 했던 것 같아.
그나마 끼가 좀 있는 거 거트만 준비해 온 친구들 스케치북 뒷장이라도 한 장 얻고
크래용은 좀 빌려 쓰고 하만 됐지만, 나거치 거죽은 넘은 그만한 요령도 없었지 뭐.
그러니 음악, 미술과목 성적은 매번 미뻘에 양떼만 몰고
왔다갔다 하민서 댕길 수 빼끼 없었어. (성적이 ‘미’ 아니만 ‘양’, ‘가’라는 이야기라!)
마한, 이기~뭐 내 자랑거테서 이야기를 안 지낄라카다가 뭐 말이 나왔응께 하는 말이지만,
시방은 내가 울매나 음악을 좋아하고 또 노래는 울매나 잘하느냔 말이라!!
내 열여덟번째 곡 "꽃 바람여인" 직이잖아? 안 그래여??
마한~!! 왜 대답이 없는기라??
아이~ 말이 나왔응께 하는 말이지만 그때 지법 형핀이 좀 돼서
요새 아~들 매로 피아노 학원이니 뭐 그런 거는 아니더라도 하다못해 일찌거이
풍금이라도 하나 사 줬으만 지금쯤 이 숭막이 세계적인 음악가가
되지 마라는 법이 어데 있겠어, 안 그래여? 마한=3=3=3흥분!!=3=33
하지만 그 때는 풍금이니 하는 거는 참말로 달구새끼 뿔따구에 터라구 나는 소리고 ,
그니리 및낱 되도 안하는 기성회빈지 육성회빈지도 지 때 못 내서 매번 담임선생님한테
호명을 당하만 똑 외상값 띠 먹은 놈 맨치로 왜 그키 부꾸루운지 참말로 환장할 내기였어.
마한, 이름만 부르만 다행지만 어떤 때는 심지어 집으로 쫒끼 나기도 했는 걸 뭐.
중핵 때는 전교 조회 시간에 교장선생님이 공납금 안 낸 넘들
전부 앞으로 나오라고 한 적도 있는데,
한창 사춘기인 그 시절에는 참말로 쪽팔려 뒤질 지경이 아닐 수 없었어.
더구나 지지바들도 있는 데서 말이라.....
마한, 요새 핵교에서 그런 일이 인나만 암매 9시 톱뉴스로 나가고
온 나라가 들썩 거리민서 생 발광을 할 끼라.
그런께 우리나이쯤 되는 사람들 중에는 이런 것들이 안즉도 가슴에 한이 되서
술 한 잔 썩 먹고 집에 오만 자는 아~들 뚜두리 깨와서
일장 훈시할 때 쓰는 주요 레파토리가 되기도 한다는 구만.
그 레파토리는 하도 여러 번 지끼서 대가리만 꺼내만
아~~들은 하매 다음이야기가 뭐 나올지 환하게 꿰차고 있는데,
내용은 대충 이럴끼라.
“내가 너~들만 할 때는 먹을 것도 올키 못 먹고................중략......
너들한테 산에 가서 나무를 해오라 카더나, 밭에 가서 일을 하라 카더나?
소를 띠끼라카나, 시미기를 하라카나?
대관절 너들이~ 부족한기 뭐라? 근데, 너들은 왜 그키 공부를.......
.............................중략.............
그러민서 핑소에는 용돈 하나도 안주다가 만원짜리 팍팍 꺼내주민서 기마이 써다가
다음날 다시 회수하는 아바이도 있데여.
사실은 잇날 어느 때 누구 모습이라. ㅎㅎㅎㅎ
팅구들 모도 오늘 저녁에는 씨구운 이슬이라도 한잔하민서
인제 그런 恨은 풀어 버리자고요. 요새 아~~들도 울매나 불쌍한데........
................계속................
뭐 쪼만침만 희안한 기 있어도 모도 삑 둘러서서 기경을 하곤 했어.
하다못해 장날 엿장사가 가시개 장단이라도 잘 맞추민서 썰을 풀어 재끼만
거~도 빙 둘러서서 기경을 하고,
약장사라도 오는 날이면 고만 거~ 혹해서 궁디를 땅바닥에 퍼질고 앉아
그니리꺼 기경하다가 촌넘들은 집에 늦게 가서
시미기 안 해났다고 뒤지기 혼나기도 하고 그랬지 뭐.
약장사 기경이라케야 그저 북이나 치고 가끔썩 차력이나 한번 보이주고,
모간지에 굵은 비얌이나 감아재끼곤 하는건데,
그니리 끼 요새보만 무신 기경 축에나 들겠어 그래.
그래곤 뭔 누무 엄청시리 재미난 걸 곧 보이줄 듯 말 듯 하민서
자꾸 약이나 선전 해 쌓고,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 하민서 아무 돈도 안 되는
우리들은 갖은 구박을 받아 가민서 기경을 할 수 빼끼 없었던 기라.
그래도 가끔썩 원시이라도 한 마리 몰고 온 날이만 고넘 재주부리는 거 치다보느라
주디이를 힐렐레 벌리고 춤을 질질 흘리민서 똑 등시거치 해 가이고,
고만 정신이 홀딱 다 빠져서 해가 빠지도록 기경하다가 오는 기지 뭐.
고무다리 밑인가 소전 근방에 천막을 친 가설극장이나 써커스 같은 기
들어오기도 했는데, 요건 참말로 촌넘들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었어.
밤에 문디 띠서리거치 끌어 모이 가이고 논틀로 밭틀로 들고 뛰민서
왕릉까정 가서는 백지 다른 마실에서 온 지지바들을 힐끗 거리민서
우예 히야까시라도 한분 거석 해 보까하곤 얼쩡거리기도 했지만,
마캉 다 숭막거튼 넘들이 감히 어데 말이나 한분 붙이보기나 했겠어 그래.
백지 헛물만 키는 기지 뭐.
가설극장에서 상영한 영화라는 기 대체로 성웅 이순신, 장화홍련, 홍길동 전,
뭐 그런 것일낀데, 그누무 필림이 하도 낡아서 그런지
화면에 우옌 비는 그키 와 재끼는지 무신 내용인지 도통 알지도 못하겠고
그것도 잘~ 나가다가 쪼끔 재미있을 꺼 같아지만,
고만 각중에 불이 턱 꺼지민서 끊어져 삐리기 일쑤인기라.
그래만 요상시런 소리를 끽끽 질러대는 넘, 휘빠람을 나발거치 불어 재기는 넘,
고래고래 괌을 지르민서 욕을 해대는 넘, 돈 내 놓으라민서 소리를 지르는 넘 등등
모도 뚫린 주디이라고 한 마디썩 해 대다 보만 운제 그랬냐는 듯이 불이 들어오고.......
그니리 장화 홍련인가 하는 거는 한을 품고 죽은 처녀 구신이
파란 불빛을 받으민서 하얀 소복을 입고 지단한 머리카락을 풀어 재끼곤
뒤로 요래~~서 있다가 덧니가 툭 튀 나온 이빨을 들어내고 주디이에 피를 질질 흘리민서
각중에 홱 돌아 서만 고만 울매나 무수운지 기겁을 해 재끼는 기라.
그래도 뭐니 뭐니 해도 질 기경 할만 한것은 써커스라 썼어.
아슬아슬한 사리마다에 살양말을 신고 뽀얀 분단장을 한 아주 머석한 여자들이
발통이 한개 빼끼 없는 자장구를 타고 돌아 댕기고,
어깨에 장대를 곧추 시우고 그 우에 사람이 올라가서 꺼꿀로 매달리는 장면,
칼을 입에 물고 그 우에 오봉을 얹고 또 그 우에 꼬뿌를 얹어서 계단을 올라가거나,
그 높은 줄을 타고 댕기고 그네를 이리저리 옮기 타는 장면 등은
고만 촌넘들 혼을 홀딱 다 빼 놓기에 충분한 것이었어.
그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인물이었고 나는 그이들은 사람이 아니라
하여간 뭔가 ‘특수한 머시기’라고 생각을 할 정도 였어.
근데, 이누무 가설극장은 천막을 치고 했기 때문에 돈 없는 넘들은 천막 주변을
실실 돌아 댕기민서 눈치를 힐끗힐끗 보다가 잽싸기 천막을 들추고
쥐새끼 같이 안으로 쏙 끼 들어가서 꽁짜기경을 하는 넘들이 많았어.
난도 돈이 아까와서 및 넘과 작당을 하고 천막을 들추고
안으로 쏙 끼 들어간 거 까정은 성공했는데,
닌장~ 안에서 주인이 턱 버티고 있을 끼 뭐라.
결국, 손바닥으로 뒤통시 및 방 뻑뻑 소리가 나도록 맞고
다시 바깥으로 찌끼나서 돈 내고 들어갔지 뭐.
그니리 꽁짜 입장에 성공했으만 월남 방매이를 쭐쭐 빨고 쫀디기를 쪽쪽 째 먹으민서
그 먼 아채 천방길을 룰루랄라 올라 올수 있었을 낀데 말이라.
마한~!!
...........계속......
요새 아~들은 그니리 학원이다 과외다 하민서 맨날천날 공부만 그키 해 재끼야 되이,
온갖 저지리를 다 하민서 농띠를 피우고 큰 우리 때에 비하만 참말로 불쌍하기 짝이 없어.
핵교 때 그래도 기중 재미난 것 중에 하나인 소풍인가 하는 것만 해도 그래여.
요새는 뭔 누무 소풍이 어데 놀이 공원인지, 무신 랜드인지 하는데를 시시마꿈 와서는 삐삔내기로 그니리 놀이기구 및 가지 타고는 히져 뿌리니 그기~무신 소풍이라 그래.
우리 때는 핵교 앞에 들어서만 우예 알고 왔는지 장사들이 니아까에 온갖 꺼를 싣고
진을 치고 있고, 하매 그기서 부텀 소풍 분위기가 살아나서 대분 기분이 째지는 기라.
마캉 아가리에 월남 방매이 하나썩 쭐쭐 빨민서 모도 나래비로 줄을 맞춰서
옥산 소나무 숲이나 개골산, 구랑리, 먹배이 등등 단골 소풍지로 향하는 것이지.
그때도 일부 젊은 어매들은 소풍지까정 따라 오기도 했지만,
우리거튼 촌넘들은 모도 농사일이 바뿐데 그럴 여가가 있을까 마는 온다고 해도
기를 쓰고 말맀을 기라. 하이튼 그 먼 길을 장사들도 리야까를 끌고 따라 나서고,
우리들은 아가릴 쳐 버리고 노래도 부르고 발걸음도 가붑기 구령을 맞촤 가민서
신나기 걸어가는 기라.
소풍지에 도착하만 보물찾기도 하고 반별로 모이서 장기 자랑도 하고 게임도 하는데,
게임이래야 기중 흔한 기 그니리 ‘수건 돌래미’라는 카는 거 였어.
빙~ 둘러앉아서 오니가 수건을 가이고 빙빙 돌다가 지가 좋아하는 지지바나
혹은 기중 거죽은 넘한테 수건을 가마이 놓고 토끼만 열나기 도부띠기를 해서
고넘을 잡아삐리는 긴데, 대가빠리를 전혀 쓰지 않아도 되는 아주 단순 무식한 놀이였지.
거~서 걸리는 넘은 노래를 한분하던지 뭔 벌칙을 받아야 되는데,
나거치 끼가 있는 넘들은 부루라도 걸리서 노래를 한판 불러야 속이 시원했지만,
거죽은 넘들은 노래도 못하고 기중 만만한 기 궁디로 이름 써는 거 였어.
허리를 꺼뿌정하기 해 가이고 그니리 궁디를 오리거치 쑥 내밀곤
좌우로 왔다리 갔다리, 아래 우로 올맀다 니랐다, 똥골배이를 쳤다가 하민서
이름을 써만 그니리끼 닌장~ 뭐가 우숩다고 호호 거리민서 웃고 그랬는지 몰라.
그래민서 온갖 얼분을 떨민서 놀다가 점섬 시간이 되만 찌리찌리 모이서
밴또를 까 먹는데, 요때가 기중 기다리던 시간이지 뭐.
힝핀이 좀 뭣한 아~들은 기양 맨밥을 싸오기도 했지만, 그래도 대부분 아~들은
핑소엔 기경도 못하는 짐밥을 싸왔지. 짐밥도 살기가 엉간한 넘들은 짐밥 안에
다꽝도 들고 달걀 후라이도 들었지만 나거튼 넘은 맨날 안꼬없는 찐빵이라었어.
그래도 그넘을 아주 맛나게 먹어 치우고 보물찾기 한다고 돌삐도 들씨보고
나뭇잎도 치와보고 하민서 눈까리가 벌겋기 해서 보물을 찾으로 돌아 댕기다가,
무신 조우 쪼가리가 하나 눈에 띄만 고만 “심봤다!”가 따로 없는 기라.
쪼차가서 상으로 공책이나 연필이라도 한 자루 타만 똥집이 뿌듯해지는 기고
그것도 못 얻어 걸린 넘은 주디이가 한자 택이나 끼 나오는 기지 뭐.
소풍이 끝날 무렵에는 전체가 다 모이서 장기 자랑을 했는데,
난도 초딩 때는 및 분 나가서 나발 부는 숭내도 내고 하민서 얼분을 떤 적이 있어.
이때 나의 강력한 라이벌이 요새도 싱구운 소리를 아주 잘하는 모 친구 였어.
이 팅구가 늘 나의 장기자랑에 눌려 기를 못 피다가 우예 가이고 나를 재치고
전체 장기자랑에 나가기 된기라. 좋아 가이고 지딴에는 아주 잘 한답시고
거창하기 열창을 해재깄는데 고만 우사만 당하고 말아 뿌맀지 뭐라.
그 팅구가 노래라고 한 것이 가사가 대충 요런 거 였어. 잘 들어 봐!
“젊으~나~ 젊은 시절에는~ 행복하게 살~았건만~ 지금은 막장~ 신세~
막장~으로~ 탄 ~파로 가~야지! 간드레~ 차고~ 구루마~ 밀고~~나는 가야지,
사끼야마 따라~ 구루마 밀고~~~”
.........중략........
이기~ 우리들의 아부지, 아재들이 그 힘들고 위험한 광산 막장에서 일하는 애환과
자조와 한탄이 섞인 노래인줄을 모르고, 그걸 대가리에 시똥도 안 뻐꺼 진 넘이
신이 나서 불러 재낐으니, 울매나 같잖은 일이라, 그래.
결국 선생님한테 뒤통시 한방 맞고 “싹 수가 노란 넘”이라는 소릴 들어야 했어.
이구~ 맨재기 같은 넘~!! ㅎㅎㅎ
...........계속..............
그들은 대체로 함께 자리를 한 짝꿍이나 뭔 작당이 있었던 팅구들일 것이고,
‘옥경이’라는 노래가사에 나오는 거 매로 ‘언젠가 어디선가 본 듯한’
친근한 얼굴로 각자의 마음속에 깊이 묻어져 있겠지.
나는 초딩 저학년 무렵 ‘나~가자 동무들아~ 어깨를 잡고~~’ 뭐 요런
요상시런 노래를 부르민서 무용을 할 때 지지바하고 손잡는 기 울매나 쓰무했던지,
아이시께끼 먹고 내 삐린 꼬장 막대기를 마주 잡고 무용하던 팅구가 우선 생각나여.
그 팅구를 놀리기도 시기 놀맀고 고무줄도 마이 짤라 먹었을 뿐 아이라,
오재미도 가이고 토끼곤 했는데 우연히 및 해 전에 만나서 고만 마자 죽으 뻔 했잖아.
또 하나 2학년 땐가 짝이었던 정 머시기는 시기 악다받고 똑똑했던 팅구라.
가~가 우리 분단장을 했는데 하이튼 대단한 분단장이었어.
분단장 끌빨이 울매나 씬지 나거치 거죽은 넘은 쪽도 못 피고 살았고,
걸핏하만 떠든다고 30센치 자로 손바닥을 맞았어. 안 떠들었다고 해도 소용없었지.
선생님 안 계실 때 떠들었다고 칠판에 이름을 써 놓으면
암만 지와 돌라고 통 사정해도 손톱도 안 들어가는 아주 무수운 아~라 썼는데,
지금은 어데서 뭐하고 사는지 몰라.
혹시 요새도 지 신랑 맨 날 손빠닥 패는 거 아인지 모르겠어. ㅎㅎㅎ
우이~~쒸~!! 생각하니께 백지 열 받네~이거 !
운제 만나기만 해 봐라~!! 난도 내가 당한 만큼 때찌를 해 줄 챔인께.
뭘로 패 조 뿌리까? 입서버리로 패 주까? 볼태기로 패 주까? ㅋㅋㅋ
또 하나는 참말로 잊혀지지 않는 여인이라!
5학년 땐가 짝을 했는데 왜 그키 가~를 못 살기 굴었는지 모르겠어.
그때는 내가 지법 심도 씨 지고 그래서 쪼만할 때 지지바 한테 손바닥 맞은 걸
복수(지복수?ㅎㅎ)라도 할라고 그랬던 건지 우옌건지 원.......
우선 그때는 2인용 지단한 책상 중간에다가 칼로 파서 줄을 좍 ~ 그어 놓고는
연필이던 뭐든지 넘어 오기만 하만 내 갯주머이에 다~주 넣어 삐리는 기라.
우예다가 앞자리 앉은 아~ 한테 볼일 볼라고 인나서 허리를 꾸부리고 있으만.
의자를 뒤로 실구머이 빼 놓고는 시치미를 뚝 띠고 있다가,
“야~ 빨리 앉아!” 이래민서 등때기를 잡고 팍 앉히 뿌리서
고만 치마 입은 채로 뒤로 발라당 넘어지만 좋아라고 깔깔거리고 놀리곤 했어.
십상 악다받은 아~ 인데도 나 땜에 참말로 울기도 시기 마이 울었어.
하이튼 내가 울매나 못살게 굴었는지 한번은 점심시간에 가~들 모친이 핵교 교실에
찾아 오시 가이고, 내 귀 까정 잡아 땡기시민서 엄청나기 뭐라 카신 적도 있어.
ㅎㅎㅎ... 에이 ~ 망고리거튼 넘, 뒤지기 맞아도 싸지 뭐.
가마이 생각한께 또 망고리 짓 한 기 하나 더 기억나네.
그때는 ‘감또개’ 또는 ‘쪼구’준다 카민서 허리를 꾸부리고 있는 아들한테
양손합장을 하고는 궁디를 푹 쑤시는, 그랭께 ~ 거~머시기 “x침주기”가 유행한 적이 있어.
당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올키 한 방 맞으만 x집이 웅심한 기 환장하기 아픈 것이거든.
내가 모 넘한테 그걸 당하고 하도 아프고 부예가 나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데,
드디어 요넘이 허리를 꾸부리고 앞에 있는 넘하고 작당을 하고 있는 기라.
마침 여름이라 얇은 반바지 속에 빤수를 입었는지 안 입었는지 그건 모르겠어.
하이튼 손가락 끝티미기에 심을 바짝 주고 대분 오지기 찔러 뿌맀는데,
아닌 기 아이라 손가락이 안으로 쑥 빨리 들어가는 느낌이 오는 기라.
속으로 쾌재를 부르민서 깔깔거리고 웃어 댔는데,
아~ 이눔이 각중에 얼굴이 하얗기 되민서 한참 동안 아무 소리도 못하고
고만 매가리 없이 바닥에 픽 주저앉아 삐리는 기라.
아~들 및 명이 빙 둘러 서서 달개고 울매의 시간이 흐른 후,
그넘은 떵싼 걸음으로 어거적 거리민서 막바로 집으로 가뿌맀어.
그날 나는 집에 가다가 교문 앞에서 가~들 모친한테 붙들리서 뒤지기 혼났어~!!
닌장~~! 안 맞아 뒤지길 다행이지 뭐~!!
xx야 ~!괴롭힌 거 참말로 미안하다~!!
그기~ 사실은 니가 좋아서 부루 그랜긴께 인제 고만 용서 하거래이~!!
xx야~! 똥꼬 괘얀나?
이상 있으만 당장 연락해라. 수술 잘~~하는데 알고 있단다.
울매 전에 내 똥꼬 비 낸 곳인데, 시기 잘 해여.ㅎㅎㅎㅎ
에이~~ 망고리 거튼 넘~~!!
내가 이 죄를 운제 다 씻을 수 있을~~~꼬?
.........계속.....
나는 대다이 놀랬어. 쪼만한 곽통거치 생긴 거에 뭔 누무 물방울거튼 기 부글부글 끓고
찌직~찌직~ 소리를 내민서도 그 안에 쪼만한 사람이 이야기까정 지끼민서
움직거리는 걸 보고 놀래지 않을 넘이 어데 있겠어 그래.
화~ 조누무 곽통에 걸리버 여행긴가 하는데 나오는 쪼만한 사람이
진짜로 들어 있는 긴지, 속을 고만 활짝 열어 보고 싶도록 궁금했어.
쪼끔 있응께 동네에 및집이 테레비를 들여놓게 되자 밤만 되만 사람들이
그 집으로 마캉 모이서 단체로 연속극을 보고 그랬어.
우리들도 밤이면 밤마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맨 날 테레비 있는 집
대문 앞에 가서 ‘테레비 좀 보이조요’ 이래민서 들어가 보곤 했지.
그 당시 ‘여로’인가 하는 연속극은 참말로 재미가 시기 좋았어.
어른들은 그니리 연속극이 실제 상황인줄 알고 시어머이가 미누리를 구박하만
당신들 그전에 시집살이 하시던 생각이 나는지 그저 연신 혀를 끌끌 차시고,
영구거치 좀 등시거튼 넘이 나오만 ‘에이구~ 저, 숭막~!!’ 이래시민서
고만 그키 안 됐어 하고 자신의 일거치 안타까워 하싰지.
그때 테레비에 기중 마이 나오던 김자옥이는 우예 그키 사람이 잠달고 이뻤는지
조~기 참말로 사람인가 싶더라 캉께.
동네에 테레비가 보급되기 전에는 왕릉 장터 우체국 근방에 있는 만화방에
꼬뿔나기 드나 들민서 만화도 보고 테레비도 보는 재미를 만끽했는데,
특히, 김일 레슬링이라도 하는 날이면 밤에 논틀로 밭틀로 뛰민서
거~ 먼 왕릉까정 테레비를 보로 갔던 기라.
만화방에 가는 날은 보통 손에 계란 하나 썩이 들려 있었고
우리들은 그넘을 팔아서 만화방 비를 대는 것이었지.
때로는 ‘또깔 펀다’ 고 해서 각자 집에서 쌀이 라도 한 됫박씩 퍼 내오는 날은
만화방에서 오뎅도 먹고 쫀디기나 오가당 거튼 걸 아가리가 터지도록 사 먹을 수 있었지.
김일 레슬링은 참말로 신이 났어.
우리들의 영웅 김일 선수는 늘 초장에는 뒤지게 맞게 되어 있어.
반칙 쓰는 선수들한테 몽디로 맞고 의자로도 맞고, 빤수에 뭘 숨카와서 그걸로도 거석하고,
심지어 ‘브러쉬’ 라는 아주 악종같은 미국 선수한테 이마를 깨물리서 피를 철철 흘리만,
우리들은 고만 x매루운 강아지 거치 신음 소리를 토해 내민서
그 숭악한 넘한테 갖은 욕을 퍼 붙고 울분을 토하민서 안타까워 하는 기라.
그래다가 막판에 비실거리던 김일선수가 각중에 벌떡 인나서
그 마한넘 꺼디이를 대분 움키 쥐고 해띵으로 대가빠리를 한 방 디리 박기 시작하만
모도 질딴한 나무의자에 앉았다 인나서 주먹을 불끈 쥐고 발광을 들을 해 재끼고,
끝내 그넘이 김일 선수의 강력한 박치기에 정신도 못 채리고 씨러지만,
그진~ 우리들은 똥집이 흐뭇해져서 아채 까정 돌아오는 밤길이
온통 김일선수의 무용담으로 채워지곤 했어.
핵교에 가서도 쉬는 시간이나 점섬시간은 맨날 교실이나 복도에서 그니리 레슬링
숭내를 낸다고 마룻바닥에서 뒹굴었는데,
그때 배운 헤드락, 가위 조르기, 풍차 돌리기, 업어치기, 팔꺾기, 거시기 땡기기 등
고도의 숙련된 기술들은 최근까정 우리 아들넘한테 써 먹을 정도로 대단했어.
그때 내가 갈밭에 모 팅구 팔꺾기를 너무 시기해서 고만 팔이 돌아가는 바람에
그 친구가 오랫동안 엄청시리 고생하고 십상커서 까정 나만 보만 아프다고 해싸서
겉으론 아무치도 안은 칙 했지만 속으론 시기 겁났어.
요새 열씨미 농사짓고 잘 살고 있는 거 보이 괜얀겠지 뭐.
지금 말이지만 팅구야, 괘얀아여?
안즉까정 아프다고 해도 설마터라 인제와서 무신 손해배상이니 그런 거 까정 청구할라고.
마한~!!초딩 때 서독 갔다 오싰던 분이 테레비라는 걸 사오시서 처음 그 누무껄 봤을 때
나는 대다이 놀랬어. 쪼만한 곽통거치 생긴 거에 뭔 누무 물방울거튼 기 부글부글 끓고
찌직~찌직~ 소리를 내민서도 그 안에 쪼만한 사람이 이야기까정 지끼민서
움직거리는 걸 보고 놀래지 않을 넘이 어데 있겠어 그래.
화~ 조누무 곽통에 걸리버 여행긴가 하는데 나오는 쪼만한 사람이
진짜로 들어 있는 긴지, 속을 고만 활짝 열어 보고 싶도록 궁금했어.
쪼끔 있응께 동네에 및집이 테레비를 들여놓게 되자 밤만 되만 사람들이
그 집으로 마캉 모이서 단체로 연속극을 보고 그랬어.
우리들도 밤이면 밤마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맨 날 테레비 있는 집
대문 앞에 가서 ‘테레비 좀 보이조요’ 이래민서 들어가 보곤 했지.
그 당시 ‘여로’인가 하는 연속극은 참말로 재미가 시기 좋았어.
어른들은 그니리 연속극이 실제 상황인줄 알고 시어머이가 미누리를 구박하만
당신들 그전에 시집살이 하시던 생각이 나는지 그저 연신 혀를 끌끌 차시고,
영구거치 좀 등시거튼 넘이 나오만 ‘에이구~ 저, 숭막~!!’ 이래시민서
고만 그키 안 됐어 하고 자신의 일거치 안타까워 하싰지.
그때 테레비에 기중 마이 나오던 김자옥이는 우예 그키 사람이 잠달고 이뻤는지
조~기 참말로 사람인가 싶더라 캉께.
동네에 테레비가 보급되기 전에는 왕릉 장터 우체국 근방에 있는 만화방에
꼬뿔나기 드나 들민서 만화도 보고 테레비도 보는 재미를 만끽했는데,
특히, 김일 레슬링이라도 하는 날이면 밤에 논틀로 밭틀로 뛰민서
거~ 먼 왕릉까정 테레비를 보로 갔던 기라.
만화방에 가는 날은 보통 손에 계란 하나 썩이 들려 있었고
우리들은 그넘을 팔아서 만화방 비를 대는 것이었지.
때로는 ‘또깔 펀다’ 고 해서 각자 집에서 쌀이 라도 한 됫박씩 퍼 내오는 날은
만화방에서 오뎅도 먹고 쫀디기나 오가당 거튼 걸 아가리가 터지도록 사 먹을 수 있었지.
김일 레슬링은 참말로 신이 났어.
우리들의 영웅 김일 선수는 늘 초장에는 뒤지게 맞게 되어 있어.
반칙 쓰는 선수들한테 몽디로 맞고 의자로도 맞고, 빤수에 뭘 숨카와서 그걸로도 거석하고,
심지어 ‘브러쉬’ 라는 아주 악종같은 미국 선수한테 이마를 깨물리서 피를 철철 흘리만,
우리들은 고만 x매루운 강아지 거치 신음 소리를 토해 내민서
그 숭악한 넘한테 갖은 욕을 퍼 붙고 울분을 토하민서 안타까워 하는 기라.
그래다가 막판에 비실거리던 김일선수가 각중에 벌떡 인나서
그 마한넘 꺼디이를 대분 움키 쥐고 해띵으로 대가빠리를 한 방 디리 박기 시작하만
모도 질딴한 나무의자에 앉았다 인나서 주먹을 불끈 쥐고 발광을 들을 해 재끼고,
끝내 그넘이 김일 선수의 강력한 박치기에 정신도 못 채리고 씨러지만,
그진~ 우리들은 똥집이 흐뭇해져서 아채 까정 돌아오는 밤길이
온통 김일선수의 무용담으로 채워지곤 했어.
핵교에 가서도 쉬는 시간이나 점섬시간은 맨날 교실이나 복도에서 그니리 레슬링
숭내를 낸다고 마룻바닥에서 뒹굴었는데,
그때 배운 헤드락, 가위 조르기, 풍차 돌리기, 업어치기, 팔꺾기, 거시기 땡기기 등
고도의 숙련된 기술들은 최근까정 우리 아들넘한테 써 먹을 정도로 대단했어.
그때 내가 갈밭에 모 팅구 팔꺾기를 너무 시기해서 고만 팔이 돌아가는 바람에
그 친구가 오랫동안 엄청시리 고생하고 십상커서 까정 나만 보만 아프다고 해싸서
겉으론 아무치도 안은 칙 했지만 속으론 시기 겁났어.
요새 열씨미 농사짓고 잘 살고 있는 거 보이 괜얀겠지 뭐.
지금 말이지만 팅구야, 괘얀아여?
안즉까정 아프다고 해도 설마터라 인제와서 무신 손해배상이니 그런 거 까정 청구할라고.
마한~!!
사실 촌넘들은 모도 일하느라고 고생도 참 많았어.
머시마들은 지개대학 목발과 댕기느라 죽을 욕을 봤고, 지지바들은 정지대학 부지깨이과,
소두방과 댕기느라 울매나 욕을 봤는가 이 말이라. 우리 나이 때의 여자들만 하더라도
고생도 마이하고 설움도 많을 수 빼끼 없지.
말하자만, 머시마들이 나무하고 시미기, 논일, 밭일 거드느라고 애를 먹었다카만,
여자들은 들에 나가서 일하는 어매들을 대신해서 집안의 온갖 궂은일을 도맡을 수
빼끼 없었던 기라.
우선 아적에 인나만 잇날 필수품목인 한국식 이동 통시인 요강을 깨끗하기 비우고,
한 저울게 그니리 고무장갑도 없이 도랑에 가서 두디기를 빨아 가이고
방하고 마리를 깨끗하기 닦아야 됐어. 때에 따라서는 샘에 가서 바가지로 물을 퍼서
따베이 끄네키를 입에 요래~ 물고 한 버지기썩 물을 이고 와야 되기도 했지.
그래고 정지에 가서 어매들 밥하는 걸 거들어 주다가 밥상을 채리 들고 들어오만
오빠들은 할매나 할배하고 겸상을 해서 맛난 것도 얻어먹고 그랬지만,
어떤 집에서는 여자들은 따로 오봉을 채리거나 밥상 여분대기에서 먹거나 했으니,
이기~ 참말로 울매나 거석한 일이라 그래.
더군다나 밥을 먹고도 머시마들은 바로 핵교로 줄행랑을 놨지만,
지지바들은 다시 정지에 가서 상을 치우고 대충 설거지를 하고
그진~ 핵교를 가니라고 늘 지각을 할 수 빼끼 없었던 기라.
핵교 갔다 와서도 온갖 궂은일을 다 해야 했는데,
나이어린 젖먹이 동생이라도 있으만 띠개미를 해서 엄마거치 둘러머 업고 돌봐 조야 되고,
어린 동생들 치근덕거리는 걸 일일이 다 업어 키우다시피 했어.
‘내 마음의 풍선’인가 하는 영화에서 매로 한창 농사일 바쁘고 할 때는
동생업고 댕기느라고 핵교에 빠지는 일도 더러 있었다 캉께.
그래다가 해거름~하만 부엌 아구리에 불을 때고 버리쌀 안치서 밥하랴,
부지깨이 운전하랴, 소두방 운전하랴, 아가빠리 쳐 벌리고 울어재끼는 동생들 달게랴,
마리에 마구 끼 올라오는 달구새끼 쫒치랴, 뭐 하이튼 종일 정신이 하나도 없는 기지 뭐 .
이래니 뭐 공부는 자연히 뒷전일 수 빼끼 없었고 빤히 보이는 어려운 집안 사정에
공부는 당연히 오빠나 남동생한테 양보해서 아예 포기하거나,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어도 뒷전으로 실무시 물러나
가심 아프게도 고만 높은 핵교 진학을 못하는 경우가 많았어.
그래니 오늘날 머시마들이 글줄께나 배웠다고 어깨에 후까시 주고 폼 잡으민서
그기~ 다 부모들 등꼴 빠지는 고생과 지 누이들 희생을 바탕으로 한 건 줄 모른다카만,
지대로 생기먹은 넘이 아이다 이 말이지. 모도 안 그래여? =3=3=33
가마이 보만 이런 사례들은 집집마다 울매든지 찾아볼 수 있는 일이고,
실제로 내가 핵교 댕길때만 하더라도 동생이 도회지 자취방 와서 밥해주는 경우도 있었거든.
이런 것들이 오늘날 남자들은 자기 집에 대한 엄청난 부담과 의무감으로 작용해서
부모들과 집안 생각만 하만 그니리 및낱 되도 안하는 어깨쭉지가 축~늘어지는 것이고,
여자들은 또한 알게 모르게 가심에 씨라린 한으로 남아 있는 것인 기라.
가마이, 가마이~~@!!
시방 내가 뭔 소릴 지끼는 기지?
이기 ~ ‘귀남이 후남’이 이얘긴가, ‘내 마음의 풍선’인가?
뭐라고?
여자 형제라곤 둥굴토막거튼 것도 하나 없는 넘이 참말로 알기도 잘 안다고??
닌장 ~ 그랭께 천하의 사기꾼 숭막이지 뭐라. ㅎㅎㅎ
근데, 내가 시방까정 지낀 기 맞긴 맞는 이야기라?
완죤 사긴가?
여친들 맞나 안 맞나 리플 좀 달아 봐!! 마한~~!!
....................계속............
운동회가 가차와 지만 맨 날 공부도 빼먹고 그니리 무용이나, 곤봉 돌리기, 덤불링,
매스게임 거튼 걸 연습해야 했고 운동회 전날은 소운동이라는 기 있었는데,
그기~ 요새말로 하만 리허설인가 하는 거 쯤 될끼라.
운동회 때는 도부띠기를 해야 되기 때문에 꺼먹 고무신 신고는 못 뛴다고
띠를 써서 운동화 한켜리를 사 신을 수 있는 좋은 핑계가 되었고,
재수 조으만 꼬까 운동복도 한 벌 얻어 입을 수 있었어.
그니리 새 운동화 한켜리를 사만 고만 울매나 좋은지 주디이가 바소거리거치 째져서
저녁에 잘 때는 머리맡에다가 고이 모시놓고 자는데, 혹시라도 비가 와서
운동회 조지뿌리고 꼬까 운동화 못 신으까봐 백지 걱정이 되서 잠을 설치기 일쑤였지.
고무줄거치 늘어진 긴 밤이 지나고 그럭저럭 아적이 밝아 오만,
새복 바람부터 운동 빤스를 갈아입고 새 운동화를 신고는
‘새~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대가빠리가 하늘 까정~ 대이겠네!’ 하는
요상시런 노래를 불러 재끼고 갖은 오도방정을 떨민서 핵교로 가는 기라.
물론, 손에는 핑소 기경도 못하는 까먹을 돈 이 삼십 원이 들려 있으니,
발걸음이 가붑다 못해 참말로 대가빠리가 하늘까정 대이도고 남을 정도로
기분 오지기 째지는 기지 뭐.
그~ 먼 아채 천방 길을 고만 팽대이 거치 쫒아 니리가서 핵교 앞에 당도하만
만국기가 줄에 쭉쭉 메달리서 온통 푸른 하늘을 덮은 채 펄렁거리고,
대문 앞에는 월남방매이 장사부터 시작해서 온갖 장난감거튼 걸 파는
니야까하고 좌판들이 나래비로 늘어서 있는 기라.
그래만, 아적부터 그니리 눈까리 사탕이나 그런 거를
양쪽 볼테기가 불룩하도록 한 아가리썩 이빠이 쳐 넣고,
지단한 대롱 끝에 풍선을 달아 놓고 입서버리를 갖다대고 불만 호띠기 소리가 나는
요상시런 장난감 거튼 걸 사서 쳐 불고 돌아 댕기고 고만 신이 나서 뒤질라 카는 기라.
화약 총소리가 뻥뻥 나민서 두부띠기도 하고 온갖 행사가 열리지만,
우리들의 관심사는 나래비로 늘어선 무신 장사들이 파는 신기한 장난감이나
야바우꾼, 소케사탕, 아이시께끼 거튼 것에 더 관심이 많아 찌웃거리고 돌아 댕기민서
기경을 하거나, 뭐 사먹는 넘이 있으만 ‘썬남 만 조!’ 이래민서 따라 댕깄지 뭐.
그래다가 점섬시간이 되만 약속한 장소에서 동네 아지매들하고
어매들이 싸온 밴또에다 언나아 머리통 거튼 고구마, 밤 삶은 거,
핑소에는 기경도 못할 계란, 짐밥 거튼 걸 피 놓고 배다지가 터지기 먹었어.
근데, 도부띠기를 해서 3등 안에 든 넘들은 모도 ‘상’ 이라고 찍힌 잡기장이나
연필거튼 걸 받았는데, 나거튼 넘은 맨날 천날 공부만 하다 본께
대가리가 울매나 큰지 그니리끼 무구와서 올키 뛸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밥 먹으민서 동네 아지매들이 넌 및등 했느냐고 물으만 울매나 쓰무한지
매번 한다는 소리가 “1등으로 가다가 언넘이 발을 걸어 가이고 자빠져서 4등 했어요!”
이래민서 핑계를 대곤 했는데, 암메 모르긴 해도 그때부터 이 숭막이
오늘날 대 사기꾼이 될 자질을 키워 오지 않았나, 뭐 그래 생각되여.
점섬 먹고 농악대가 깽매기를 한판 뚜디리고 지내가만 분위기가 익을 대로 익어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술판이 벌어져서 여개 저개서 쌈이 일어나서 괌을 지르고,
그기~ 운동기경보다 더 재미나서 기경꾼이 몰리고 그랬어.
해거름 무렵이 되만 지단한 장대에 바구리를 뚱구렇기 매 달고
두핀으로 농가서 오자미로 그넘을 벌떼거치 떤지서 맞추다 보만,
비로소 반으로 떡 갈라지민서 ‘농자천하지대본’이니 하는 글씨가 턱 나오만
와~하는 탄성이 지댈로 나오고 대운동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기지 뭐.
나중에는 이 운동회가 면민체육대회로 바뀌민서 마실찌리 겨루었는데,
종목도 빌끼 다 있었어. 새끼꼬기, 쌀가마이 들기, 물동우 이고 뛰기,
가다가 조우쪼가리를 주 가이고 그게 적힌 사람하고 같이 뛰기.......
한번은 우리 아채 마실이 왕릉을 재끼고 우승인가를 해서 장터서부터 깽매기를 치민서
아채까정 올라오고 히관에서 밤늦도록 풍물을 울리민서 잔치를 벌린 적도 있어.
난, 이 장면이 박경리의 ‘토지’ 첫머리에 나오는 평사리 사람들의 농악놀이거치
역동적인 한장의 그림으로 머릿속에 선명하기 저장 되어 있어.
용이 아재, 영팔이 아재, 월선 아지매, 봉순네 아지매...................
참으로 눈물나기 아름다운 시절이었지.
.....................계속...........
* 이로써 ‘숭막거튼 내 인생’ 1부 순서는 모두 마치고,
내일부텀은 2부 연재가 시작되겠습니다.
그동안 성원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계속 재미나게 읽어주시요.
다 같이 중간 박슈~~~~!!!
와~~~~짝~~짝~~짝~~
ㅎㅎㅎㅎ
1부 순서가 모두 끝나고 오늘부터 2부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지.
사실은 모도가 공감을 기중 마이 느끼는 것이 초, 중딩 때까지라서
그걸 더 질기 지끼고 싶지만, 운제까정이나 질질 끌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더군다나 월희 히장이 먹는 이야기 한다 카디이 요새는 무신 씨뿌리는 거 부텀 시작해서
연탄까정 온갖 잇날 일을 정신없이 지끼대고 있으이,
까이니리 꺼 실무시 자리를 피해조야지 뭐.
그렁께 인제 본래 제목대로 ‘숭막거튼 내 인생’ 이야기로 넘어 간다 요말이라.
에~~모도 학창시절을 돌이켜 보만 자기를 아끼 준 선생님들이 마이 생각나겠지만,
이 숭막거튼 넘은 중핵 때까정 어떤 선생님도 내 이름을 불러주시는 걸 들어 본 적이 없어.
그때는 한 반에 아~들 대가리 숫자도 근 60여명이 넘어 질곰시루거치 빽빽한데다,
도통 뭐 악다받은 것도 없는 밋밋한 넘이 숭막거치 해 가이고
티미~한 행고다지만 하고 댕깄으이, 그건 너무도 당연한 기지 뭐.
아무리 거석한 꽃이라도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다던가?
나거튼 넘이 무신 꽃이겠는가 마는 그런 면에서 본다만 나의 중핵까지의
학창시절은 그저 무명씨로서 이름도 없는 몸짓에 불과한 존재였던 것이라.
이 무렵 고등핵교 진학을 앞둔 나는 참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어.
누구나 자기가 커온 환경과 가족사에 대해서는 할말이 많고
가슴 씨린 이야기 한자락썩 숨카 놓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만은,
난도 그 이야기를 다 지낄라카만 대하소설 한편쯤은 실히 나오고도 남을 끼고,
눈물을 짜내도 암매 한 열 버지기 택도 더 나올 끼라.
사람이 눈구멍으로 보는 기 많아야 포부도 크고 다양한 법인데
그 당시에 소위 장래희망인지 하는 기 있었다카만,
나는 당연히 광산이나 뭐 그런데 댕기는 것이었을 끼라.
이유는 아주 단순하지. 겨울에 나무하기가 뒤지기 싫었으니까.
하기사 중핵 때 모 팅구는 선생님이 장래희망 써 내라고 한께 ‘술 배달’이라고 썼다가
뒤지기 혼나고 우사를 당한 적이 있는데, 사실 그 팅구는 그기~ 장난이 아니었던 기라.
그때 막걸리 통을 자장구에 실고 술 배달을 댕기던 아재들은
한말짜리 말통 여섯 개 정도를 뒤에 실고 앞 핸들 쪽에 두 개 썩 걸고 댕깄는데,
참말로 힘도 씨고 돈도 마이 벌수 있는 거 같이 보였고
그 팅구 눈으로 볼 때는 선망의 대상일 수도 있었던 것이라.
그러던 어느 날 내 장래 운명의 희비가 엇갈리는 결정이 지워지던 날을 잊을 수가 없어.
그때는 가을 들판에서 나락을 비고 그누무 껄 들이는 날이었어.
밤이 되도록 지게로 그넘을 져서 나르느라 등때기는 아파 뒤지겠는데,
하늘에는 보름달이 둥글게 떠서 입서버리가 째지게 웃고 있었고
어른들 모르기 가마이 막걸리도 한잔 걸칬으니 기분은 대낄이었지.
그때, 미장기술이 있어 사우딘가 어데 건설현장에 돈 벌러 갔다가 온 어떤 헝아가
약간 뻥이 섞인 무용담을 아주 재미나기 지끼민서, ‘건축과’인가 하는 데를 나오만
싸우딘가 하는 나라도 갈 수 있고 돈을 엄청시리 마이 벌 수 있다고
신나기 썰을 풀어대는 기라.
나는 고만 그 말에 혹해서 뒤도 안 돌아보고 M고 건축과를 지원하게 된 것인데,
요새 말로해서 뭔누무 취미니 특기니 하는 것은 생각 해 볼 여지가
달구새끼 뿔따구 만침도 없었고, 그누무 건축과인가 하는데가
뭘 배우고 도무지 뭐 하는 곳인지도 몰랐으니 대학이니 하는 것도 상상도 못했지 뭐.
당시 M고는 인문과하고 실업과로 농가져 있었는데,
입학을 했디이 문과담당이었던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나한테
문과를 가도 될 낀데 왜 건축과를 지원했느냐고 물으시더라고.
요 이야기를 듣고는 ‘그래만 숭막 니넘은 공부를 그키 잘하는데도,
일부로 좀 거석한데를 갔단 말이라 뭐라?’ 요래는 넘도 있을 것이고,
어떤 넘은 “닌장~ 지 자랑이라, 뭐라?’ 요래민서 부예를 벌컥 낼 넘도 있을 끼라.
마한, 성질 머리 하고는........!!
그랭께 그기~ 아이고,
이 숭막의 대가빠리가 그래도 아주 거석한 거석은 아니었다 요말이라!!
참말이라~~쒸이~~!!
닌장 ~ 실무시 2부 이얘기 풀어 갈라캉께 빌누무 이야기 다 나오네.
그나저나,
동창회 나가만 맨날 전교 1등 했다고 사기쳤는데 오늘 뽀롱 다나는구만.
모도 엉가이 믿는 눈치였는데........
마한~!!
.................계속............
우뚤 때는 내 이름이 숭막인지 멍처이인지도 도통 헷갈린다 캉께.
하여간 거석해서 숭막이 M고 건축과인가 하는데 입학하기 됐다는 것 까지 지낐지?
에~~~그 당시 점촌까정 가는 열차 통학은 지금 생각하만 십상 낭만적이었지만,
그것도 지내고 본께 그래 지끼는 기지 그때는 그것도 참 대다이 뒨 일이라었어.
마한, 자취를 하고 싶었는데, 자취도 안 씨기주고........
아적에 점촌 가는 7시45분 기차를 탈라만 저울게는 6시 경에 인나서
새복 밥을 먹고는 아채서 자장구를 타고 거~ 꼬치거치 추운 날에도
칼바람이 부는 천방 길을 코를 훌쩍 거리민서 팽대이거치 내달려 가은역까정 가야 했어.
왕릉3구 작은 집에 삼천리표 자장구를 맡기고,
다시 역까정 걸어와서 기중 먼저 기차를 타고 앉아 책을 이래~ 딜다보고 있으만,
가까운 왕릉 아~들은 출발시간이 엉가이 되만 기차에 올라왔고,
특히, 3구 코앞에 살던 넘들은 출발할라고 기적을 뿌~~웅 울리만
그제서 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팔자걸음을 너거적 거리민서 실실 끼 나오 기 일쑤였지.
본래 지각하는 넘들은 운제든지 가까운 곳에 사는 넘들이거든.
하기사 그때 진남역에서는 점촌으로 출근하는 우옌 누나가 한명 있었는데,
쪼만침 늦게오만 기차가 한참을 서서 사람을 기다리는
대다이 인간적인 광경도 연출되곤 했어.
그때 7시 45분 발 기차는 객차가 4개였는데, 젤 앞 칸이나 맨 뒷 칸은
화물칸(우편수송)이었고, 앞쪽부터 문고 칸, 문창 칸, 여고 칸으로 엄격한 구분이 있었어.
속마음이야 그런 거 구분 없이 아문따나 타고 싶고 더구나 여고 칸에 타고 싶었지만,
백지 쓰무하고 속 보이는 같아 그런 짓은 도저히 할 수 없었던 기라.
이 숭막이 대가리가 좀 찔쭉하고 둔해서 그렇지 지금도 뭐 인물이라카만
참~ 어데 내 놔도 안 거석하지만, 그니리 사춘긴가 하는 걸 거치고 나서부터
비로소 촌넘티가 벗겨진께 아주 참 허멀꿈한기
기양 이래~ 댕기기만 해도 뭇 지지바들의 따구운 시선이 느껴지는 기라.ㅋㅋ
근데, 그때부터 약간 모지래고 멍청한 팅구 하나가 나하고 그키 친한 칙 하민서
내 여분대기에 찰거머리 거치 붙어 댕기기 시작하는 기라.
나는 솔직히 생긴 빠꾸라고는 눈까리만 커단하기 해서 똑 눈까리 방매이같고
하는 행고다지도 도통 티미~~한 이 멍처이 같은 넘하고 같이 댕기는 기 참 x팔렸지만,
요넘은 죽으나 사나 붙어 댕기민서 가방도 들어주고 오가당도 사 주고 하는데,
까이꺼 종부리는 셈 치고 같이 댕기 줬지 뭐.
에~ 요넘 이야기는 천천히 하도록 하고....
우옛든 본래 여자가 환경 적응력이 좋아서 그런지 여자 많은 곳에 남자하나는
기를 못 피도 남자 많은 곳에 여자하나는 기가 죽지 않는 거 같더라고.
그래서인지 우리 칸에는 여고 애들 몇몇이 자주 탓는데,
사실은 그 애들이 우리 칸에 왜 탔겠어? 그것은 이 숭막때문인기 거의 확실했지만,
내 옆에 붙어 댕기는 멍청한 인간은 지넘 때문이라고 말도 안되는 착각을 하곤 했어.
나는 괜히 투덜대민서 “너들 칸으로 가~!!” 이래민서 허문을 하는 칙했지만,
속으로는 은그이 내 옆자리에 앉아 주길 기대했지 않았나~~ 뭐~~~ 그래 생각되여.
그래서 일부러 관심없은 척 하민서 책만 그키 딜다 보고 있었지만,
사실은 저들찌리 지끼민서 수다 떠는 데에 온 신경이 쏠리고 있었지 그까이
공부는 무신 공부가 되었겠어 그래.
그래도 참 성질이 잠달아서 기껏 기차를 일찌거이 타고 의자에 앉아
창밖을 이래~ 닐다 보민서 마음에 두고 있는 지지바가 운제 타는 가 모간지를 쑥 빼고
힐끗거리다가 멀리서 하얀 칼라에 허리띠를 잘룩하게 졸라맨 교복을 입은
머시기 한 아~가 궁디를 살랑살랑 흔들민서 오는 걸 보만
그저 가슴이 두근반 서근반 하민서 얼굴이 뻘거지곤 했지 뭐.
그때 찰거머리거치 붙어서 내 가방을 들어주던 멍처이와
왕릉에 모군이 늘~ 같이 댕기민서 각자가 좋아하는 지지바가 있었는데,
결국은 한넘도 고백은커녕 말도 한번 못 붙이고 버버리 냉가심 앓듯
고만 그렇게 합바지 방구새듯 맥 빠지기 가슴에만 묻고 말았을~~까~~요??? ㅋ~
終了
'나의고향 선후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운대 누리마루 (0) | 2008.09.28 |
---|---|
태근도 임수정 금매달 (0) | 2008.08.29 |
현대차 문경향우회에서는 (0) | 2008.04.24 |
▶ 손형락 씨 결혼식 (0) | 2008.04.20 |
◆엔진 3/4공장 (b조)그룹 간단회 (0) | 2008.04.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