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산
한국의 산하 영남권 가족 합동산행
60 여명

시간은 이제 깊은 가을을 향해 가고있다.
스스로 제갈길을 찾아가는 이계절 긴시간동안 쌓였을 묵은 이야기가 그리워
부산 금정산으로 향한다.
짙은 팔공산 숙무를 뚫고 아침바람이 창문을 타고 넘어온다.
불알친구 동창들의 모임이 오늘일요일 팔공산 산행을 마지막으로 마무리 되지만
산행을 이끌어야 할 이놈은 아침 6시에 커피한잔에 진한 가을을 타서
동화사 시설지구를 바라보며 마신다.
미안하구나 친구들아..
아무렇게 친구들의 잠든모습을 보면서 팔공산을 내려온다.
토요일 팔공산 주변의 단풍을 담아보았습니다.
아~~가까운 내주위에도 이런곳이 있었구나...
꼭꼭숨은 비경을 이제야 보다니..
단풍 쳐다 보다 턱이 빠질뻔 했습니다.
몇장올려봅니다.
마로니에 나무라 하네요
팔공산 순환도로의 무지개빛 단풍
대구에서 9시경 북대구 tg를 빠져나와 신고속도로이용 노포동 tg를 빠져나오자 마자 범어사 이정표가 반긴다.
예전에 범어사로 금정산을 올라봐서 길찾기에는 어려움이 없고 아침부터 줄지어 오르는 차량들
범어사 입구에 도착하니 부산팀이 벌써 도착해서 반겨주시고,
잠시후에 서울에서 운영팀이 도착하신다.
11시 간단히 인사나누고 산행 경로를 듣고는 출발..
먼길 오시느라 수고많았습니다.
햐~~한산 카파라치....
이분 카메라에 걸리지 않으신분이 없죠?
하지만 이분도 날고 기는 지리산 카파라치 에게는 속수무책 당하는 분이지요..
ㅎㅎ
어산 노송(漁山老松)의 환영을 받으며 범어사로 들어섭니다.
범어사 은행나무가 한창이네요...
빨(赤) 파(靑) 노(黃) 색의 삼원색 화려하면서 편안함을 준다.
어산계 보사 유공비
아마도 계이름이어산이고 절이 어려울때 십시일반으로 거두어서
범어사를 살린이를 기리는 공덕비가 아닐련지
갸~~깃발하나 달아놓으니 사람이 달라보이네요...
오늘의 산행대장 사니조아님
선두대장 역활 확실히 합니다.
어짜다 보니 3갈래로 찢어진가 봅니다.
우리는 죽으라 선두대장만 따릅니다. 더쉬운길도 있다고 하더만 ..
유순이님을 따라 가야하는데...ㅋㅋ
갑오봉 범어사에 내려와서 어느정도는 일겠더만요
범어사가 어려울때 도운분들의 공덕을 새겨 넣은 비문이 甲午甲補寺有功壇(갑오갑보사유공단)이 있었다.
거기에서 유래한 봉우리 이름이 아닐까..
이놈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어...(범어사 일주문 옆에 있다)
허허 ..이곳 갑오봉에서 제가 카파라치가 되어 이상한 두분의 관계를 폭로해야것습니다...
원본을 원하시면 메일주소.(아래분도 포함)
노란 리본을 달고 있는거 보이 한국의 산하인데..누군지는???(아마도 경대분?)
짙은개스로 시야가 노망이 났네여..
또한번 걸렸습니다. 앞모습도 궁금합니다..
한국의 산하를 두어께에 지고가는 모습이 무거워 보이네요.
술잔하나 메달고 유유자적....
자연 환경이 뒤틀린모습을 이놈이 대변하는군요
장군평전에서 평전이라하니 좀 이상합니다만 우짜꺼나 그곳에서 밥상을 펼칩니다.
팔공산에서 내려오자마자 부산으로 왔다.점심도 없다 그래서 부산팀에 낑기서 이것 저것 많이 먹고는 ...
저건너 고당봉으로 고고씽!~~
지금까지 한산 모임에서 오롯시 끝까지 가본적이 나는한번도 없다.
오늘은 끝까지 완주할 수 있을것 같은 예감이 온다.
부산 친구들이 점심을 갖고 고당봉을 열심히 오르고 있으니까.
고당봉은 커녕 장군평전에서 점심을 먹고 있으니...쯔쯔..
뭔넘의 철탑이 저렇게 많아..가만히 보니까 철탑따라왔구먼..
저건너 말안장 같이 생긴 곳에서 점심을 먹었지..
금샘쪽 옛적에 부산의 고교 김샘하고 금샘을 찾아 보아서 오늘은 패스..
점심후에는 고당봉까지 단숨에 걸었다.
인간 북새통 사이에서 용케도 이놈을 먼저 알아보고 반긴다.
고마 북문으로 가자 앉을 자리 하나 없네
정상표지석 한장 남기려다 목빠지것다, 아줌마 한분 끝까지 안비켜주데요...
표지석이 아니라 인물석이 되어서 못올리것네요.
북문 금정 산장 뒤에서 친구들이 가져온 이것저것에다 생탁까지 여유롭게 ...
가져온 성의가 괘심하여 밥도 또 먹어주고 ..
내려오시는분들 막걸리 한잔씩 나눠먹고는 하산합니다.
못보고 지나친분들 막걸리 한잔 못하시어 억울하시것지만.....
부산 생탁맛이 끝내줘요.
북문 세심정에서 올려다본 고당봉
북문에서 길을 잡아 범어사로 향한다
심히 바위 덩어리들 사이로 걷는 모습이 힘들어 한다.
이바위들의 내력을 알면 재미도 있는데...
토르 라고 오랜 풍화작용으로 절리가 생겨독립된 형태의 암괴되어 무너져내린것이다.
대표적인곳이 대구 비슬산 암괴류이다.
대성은수(大聖隱水)의 금정팔경을 노래한것이 아마도 이곳 돌방구사이로 흐르는 물이 아닐련지....
꾸물거리면서 안내려가기에 한곳에 모아서...
지나칠려다 용성이라는 한자가 눈에 들어와서 다시 확인하니...
오도송
金烏千秋月 금오산에는 천년 달이요
洛東萬里波 낙동강에는 만리 파도가 치는도다
漁舟何處去 고기잡이 배는 어디로 가는고
依舊宿蘆花 갈대밭에서 쉬는 것은 옛날과 같네
1886년 23세때 마침내 네 번째 깨달음의 희열을 글
우리 백문의 선조이신
용성(龍城)선사는 1864년(고종 1년) 음력 5월 8일 전라북도 장수군 번암면 죽림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수원(水原) 백씨(白氏)이며, 아버지는 남현(南賢), 어머니는 밀양 손씨이다.
5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 용성의 족보상 이름은 형철(亨喆)이고,
속명은 상규(相奎)였다.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불교계의 대표로 만해와 함께 동참한 용성은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 6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용성은 불교의 중흥과 시대에 맞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했던 고승이자 역경(譯經)과
찬불가 작사를 통해 불법을 보다 널리 펼치고자 노력한 포교사였으며,
불교계를 대표하여 3.1 독립운동에 앞장 선 애국승려였다.
그리고 그는 선의 대중화와 교단의 정화운동에 앞장 섰으며,
선농일치(禪農一致)를 주장하여 사원경제의 자립화를 도모한 실천불교의 선구자로 평가된다.
한편 용성의 법맥은 동산(東山) - 고암(古庵) - 성철(性徹)로 이어져
용성문중(龍城門中) 또는 범어문중(梵魚門中)이라는 거대한 산맥을 이루어
투철한 수행정신과 실천불교의 대각사상을 이어받아 정진하는 스님들의 모범을 보였다.
동산은 이곳 범어사 고암과 성철은 해인사에서 열반하셨고 모두가 종정을 하신분들이다.
<백씨 종회>
범어사 어산교를 지나 다시 돌아왔다.
둥지를 찾아가는 새들처럼 열심히 둥지를 찾아 찾아 도자기 전시장도 지나고..
금강만풍의 숲길을 헤쳐
보금자리 둥지에 도착한다..
"를"위하여------
뭐였지 ?한국의 산하를?
운영자님 말씀 금정산 처음 오셨답니다.
관리자님
관리를 잘하시는 덕이신지 5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네요...
고생 억수록 많았심니데이...
세월과 추억이 아름답듯이 해가 지날수록 보고 싶어지는 님들이 있지요
오래된 친구가 있지만 나는 또 날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중에서도 산꾼이 대다수이고 많다.
새로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놀랄만한 새로움을 지닌 사람도 있더군요.
새친구의 그 기품도... 하루 이틀에 고인 것은 아닐 것이지요.
오랜 세월에 거쳐 축적된 인격일 것이다.
나는 한국의 산하가 오래된 친구이다.
나는 오래된 친구를 사랑하듯이 ...새로운 친구와의 만남과
그 친구에게서 풍기는 기품도 좋다.
내게도 그런 향기가 있을까를... 의심하면서 나는 그에게 다가간다.
먼저 손내미는 손길이 어색하더라도..
"를"위하여
mt주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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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주왕님 ^^ 저는 Battery가 일찍 고갈 된는 바람에 사진을 많이 찍질 못했습니다. 염치 불구 하고 퍼 옴을 용서 하세요.. 늘 '한산' 사랑합니다. 그리고 모두 ^^
| 2010-11-09 15:2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