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고향 선후배 2009. 3. 1. 13:00







다툼 없고 상처 없는 하얀 백지 같은 인생은 없다는 게 제가 살아오며 터득한 한 가지 진실입니다"

30여 년간 검찰공무원으로 일한 뒤 3년 넘게 집행관으로 새로운 삶을 경험하고 있는 한 문경지역 출신이 우리

사회의 그늘을 들여다보고 쓴 1천여일간의 일기를 책으로 펴내 화제가 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26일 고향인 문경에서 '집행관일기'라는 책의 출판기념회를 가진 기원섭(62)씨.기씨는 1948년

문경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31년9개월의 검찰공무원을 거쳐 다음달 임기를 마치는 3년5개월 경력의 집행관이다.

대검 중수부 시절 두 전직 대통령 구속수사에 참여했고,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구속 때 민주당원과 12시간 동안

대치한 이력을 가졌다.


이번 출판기념회는 순전히 친구들이 마련한 것으로 집행관일기는 기씨가 1천여일의 집행관 생활을 가슴으로 보고

발로 써내려간 일기를 문경중 동기생들의 인터넷 카페와 자신이 개설한 카페에 풀어놓은 글들을 모은 것이다.
카페에 올린 글 가운데 60여편을 △슬픈 밥벌이 △사노라면 △똥배 집행관 이야기 △가시나무 인생 등 4장으로 나눠

돈 때문에 부모자식간, 친구간, 형제간, 이웃간에 원수가 되는 아픈 사연들을 엮었다.


500만원에 30년 우정이 무너지고, 친형제끼리 채권·채무자로 갈라서 멱살잡이를 하고, 마흔 살 아들의 카드 빚 때문에

임대아파트에서 노모가 쫓겨나는 등 경제의 밑바닥 이야기가 눈시울을 적시게 만든다.기씨는 출판기념회에서

“이 책을 통해 지금 어디선가 시린 아픔을 겪고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어쩌면 조물주는 돈을 먼저 창조하고, 그 한 쪼가리를 떼어 대충 인간을 만드신 게 아닐까! 눈물,감동,웃음,위로로 버무려낸

경제빙하기 한국사회의 세밀화! 세상 모든 슬픈 밥벌이에게 바치는 집행관의 연가 1000일 동안 가슴으로 보고 발로 써내려

간 집행관의 위로 IMF 직후 68만여 건에 이르던 집행건수가 2007년 이후 114만여 건을 넘나드는 현실은 이 땅 누군가의

눈물이고 절망이다. 32년여의 검찰수사관 생활을 마치고 집행관을 인생 2막으로 선택한 저자는 서울 하늘 아래 인간사의

온갖 그늘을 헤집고 다니며 대한민국 경제의 최전선을 목격했다.


하나 남은 밥벌이 수단을 빼앗기고, 애지중지 아껴온 살림살이가 경매되고, 수십 년 우정이 단돈 몇 십만 원에 허물어지며,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자식들이 두 주먹을 움켜쥐는 현실……. 이 살풍경의 한복판에서 언제나 주연은 돈이었고 우리는

각자 인생의 조연에 불과했다. 어쩌면‘조물주는 돈을 먼저 창조하고 그 한 쪼가리를 떼어 대충 인간을 만든 게 아닐까!’라는

저자의 독백 앞에 누가 무심할 수 있을까.


가진 자와 없는 자, 뺏은 자와 뺏긴자, 속인 자와 속은 자가 날을 세우고 대립하는 집행현장에서 차마 표현하지 못한

착잡함을 기록한 저자의 집행관 일기는, 대한민국 서민들의 생생한 삶의 보고서가 되어 경제보다 더 꽁꽁 얼어붙은

마음의 빙하기를 견디고 있는 우리에게 한국사회의 세밀화를 그려 보이는 이 책이 되었다.


전직 두 대통령의 구속집행을 담당한 역사의 순간도 유명 정치인을 모셔가기 위해 한겨울에 열두 시간을 대치하던 일도

이제 저자의 인생에선 지나간 뉴스 속 한 장면일 뿐이다. 라면국물을 뒤집어쓰고 쇠파이프를 막아내며 지난 3년 6개월간

집행관으로 산 저자는 너무 많은 눈물과 절망 앞에 자신의 슬픈 밥벌이를 원망할 정도였다.

더구나 법원에 소속된 신분이지만 집행업무에 대한 수입을 국가가 아닌 채권자로부터 받기 때문에 경기가 안 좋을수록

벌이가 좋아지는 얄궂은 직업이 집행관이 아닌가. 아버지의 구멍가게를 지키려 쇠파이프를 든 삼형제, 벼락같은 재난

앞에 표정조차 잃어버린 가족, 자신의 빚도 아닌데 밥벌이를 뺏긴 가장의 절규에 가슴이 먹먹해지다가, 소녀의 교복이

걸린 방 앞에서 집행을 주저하는 채권자와 월세조차 못 내는 젊은 부부의 처지를 이해하는 집주인에게는 고마움이

절로 든다. 사람 사는 천태만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다 보니 돈 앞에 속수무책인 인간의 욕심과 배배 꼬인 감정싸움을

벌이는 사연들에서는 마치 내 속을 홀랑 까뒤집어놓은 듯 웃음마저 나온다.


피도 눈물도 없을 거라는 집행관이라는 직업에 대한 편견이 미안할 만큼 저자의 심장은 따뜻하다. 이순을 넘긴 저자를

노땅이라고 부르기에는 죄송할 만큼 그의 영혼은 맑다. 또한 그가 쓴 집행관 일기대로라면 우리는 인간의 얼굴을 한

법의 너그러움에 안도하게 될 정도다.


세상사 함부로 짐작하지 말자고, 이해관계를 벗어난 착한 마음들이 있기에 그래도 인생은 살 만하다고, 힘든 시절일수록

스스로 위로하고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길 줄 알아야 희망을 지킬 수 있다는 저자의 위로는, 무너져가는 경제의

밑바닥에서 말못하는 우리의 현실을 견뎌내는 힘이 되어 이 많은 아픔과 슬픔이 일어나는 서울 하늘 아래 온전했던 나와

내 가족의 하루를 신에게 감사하게 될 것이다.

저자 | 기원섭


1948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문경중학교와 대구고등학교를 다닌 후 서울로 상경, 스물다섯이 되던 해 검찰서기보로

9급 공무원이 되다. 마흔셋에 5급 수사사무관 승진시험에 합격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관으로 근무했고, 이후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과 서울지방검찰청의 여러 부서를 거쳐 2005년 대검찰청 감찰부 근무를 마지막으로 31년

9개월의 검찰공무원 생활을 마무리했다. 대검 중수부 수사관 시절,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 수사에 참여했고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구속 시에는 민주당사 앞에서 열두 시간을 민주당원 1000명과 대치하기도 했다. 2005년 10월부터

집행관으로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하면서 인터넷 다음 카페‘참 아름다운 동행(cafe.daum.net/kiwonsub)’에 집행관

일지를 남겨왔으며, 2009년 봄이면 3년 6개월의 집행관 임기를 마치게 되었다.





'나의고향 선후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재울 시도 향우회 한마음대회  (0) 2009.05.27
현대중공업,자동차 합동산행  (0) 2009.05.24
09년 문경향우회 신년회2부  (0) 2009.01.19
09년 문경향우회 신년회1부  (0) 2009.01.19
문경시 가은역  (3) 2008.12.18
posted by 둘 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