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리의♥ 생활발견 2008. 8. 29.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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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 사슴 / 노 천 명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내곤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데 산을 쳐다본다


노천명(1911~1957) 시인은 어릴 때 홍역을 앓아 사경을 헤매다 다시 소생했는데 이 때문에 이름을 '천명(天命)'으로 바꾸었다. 하늘로부터 다시 받은 목숨으로 천수(天壽)를 누리라는 뜻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나 평생 독신으로 살다 1957년 타계했다. 노천명 시인은 고독의 차가운 차일을 친 시인이었다. 실제로도 고독벽이 있었다. 시 '자화상'에서 자신의 풍모를 "몹시 차 보여서 좀체로 가까이 하기 어려워한다"라고 썼고, "꼭 다문 입은 괴로움을 내뿜기보다 흔히는 혼자 삼켜버리는 서글픈 버릇이 있다"라고 썼다.

이 시는 한 마리의 사슴을 등장시켜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다. 시인은 사슴의 몸통과 다리를 배제한 채, 자화상을 그리는 화가처럼 사슴의 목 윗부분을 그려낸다. 관(뿔)을 쓴 '높은 족속'으로 스스로를 도도하고도 고고하게 표현하지만, 2연에서는 물리칠 수 없는 마음의 통증을 보여준다. 마음의 통증은 어디에서 연유할까. 노천명은 많은 시편에서 어릴 때의 평온했던 시간으로 귀소하려는 욕구를 드러낸다. "절편 같은 반달이 싸리문 우에 돋고", "삼밭 울바주엔 호박꽃이 화안한 마을"로 시인의 마음은 자주 이끌린다. 그 시간들은 화해와 무(無)갈등과 동화적인 세계이다. 그런 세계를 동경하는 화자와 현실 사이의 괴리가 마음의 결손을 유발한다. 그 괴리의 거리와 슬픔의 크기를 시인은 가냘프고 긴 사슴의 목에 빗대어 말하고 있다.

삶은 고독과 갈등의 경전이다. 우리는 이 세상의 몸을 받을 때부터 고독의 의복을 입고 태어났다. 그러나 우리는 고독의 정면(正面)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고독의 시간이라야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를 만날 수 있고, 그때 참회와 기도가 생겨나게 되지만. 해서 모든 종교적인 시간은 고독의 시간이지만. 릴케의 표현처럼 "고독은 비와도 같은 것"이며, "(고독은) 서로 미워하는 사람들이 같은 잠자리에서 함께 잠을 이루어야 할 때"처럼 흔하게 찾아오는 것. 너무나 마음 쓸 데가 많아서 도무지 고독할 시간조차 없다고 말하지 말자. 이 시를 애송하는 시간에라도 우리는 우리의 근원적인 고독의 시간을 살자. 나의 자화상을 솔직하게 들여다보자. 고립감이 자기애로 나아가더라도. 설혹 자기애에 빠져 나르키소스처럼 한 송이의 수선화로 피어나더라도.

남빛 치마와 흰 저고리를 즐겨 입었다는 노천명 시인은 한국시사에서 시적 대상을 시적 화자와 겹쳐 놓음으로써 현대 서정시의 동일성 시학을 선보인 최초의 여성 시인이었다

ꁶ 핵심 정리
▶ 시작(詩作) 배경
‘사슴과 5월과 고독의 시인’으로 불리는 노천명의 대표작. 현실에 타협하지 못하고 결혼도 않고 고독과 빈궁으로 일생을 마친 시인의 자화상(自畵像)이다.
▶ 감상의 초점
노천명 시인의 대표작으로 널리 인구에 회자(膾炙)되는 작품이다. “공소한 감정의 유희와 허영된 언어의 과장을 발견할 수 없다”고 평할 만큼 감정이 절제되어 있고, 언어의 낭비가 없는 작품이다. 정결한 몸가짐, 흐트러지지 않은 매무새를 지니려 애를 쓴 흔적이 배어 있다. 그러나 일제하 잘못된 현실 인식으로 자초한 불명예, 6·25 전란시의 부역으로 인한 고초 등등 시인의 작품 외적(外的) 생애를 알면 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한 마리의 사슴을 스케치한 소품으로 보이는 이 시는 감정 이입의 수법으로 사슴을 시인의 분신으로 등장시키고 있다. 즉, 이상향의 동경을 그린 노천명의 이 작품은 사슴이라는 시적 대상을 통해 서정적 자아의 내면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관(冠)'은 사슴으로 하여금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매개물(媒介物)로 사용되었다.
‘슬픈 짐승’은 시인의 어떠한 모습을 투영한 것으로 볼 수 있는가? ‘잃었던 전설’과 ‘높은 족속’이 향수의 근원을 나타낸 것이라면 ‘먼 데 산’의 상징 의미는 무엇인지 시인의 시심을 헤아려 보자.

<<참고>>
* 노천명 시에는 외로움의 정서가 잘 나타나 있다.(감정이 이입(移入)된 사슴을 통해)
* 김상용 <남으로 창을 내겠소>와의 차이점
김상용의 이 작품은 <사슴>과 달리 소박하고 인간적인 현실적인 삶을 지향함으로써 낙천적이고 관조적인 삶을 살려고 한다.

▶ 성격 : 감상적, 관조적
▶ 특징 : 절제된 언어를 통한 감상(感傷)의 극복
▶ 표현 : 의인법, 감정 이입법
사슴을 의인화하여 감정을 이입함으로써 사슴으로 하여금 작자의 분신(分身)이 되게 하였고, 표현이 여성답게 간결.섬세하며, 내용이 고독하고 회고적(回顧的)이나 여성이 빠지기 쉬운 지나친 감정의 노출은 극복되었다.
▶ 구성 : ① 사슴의 외모(속성)― 귀족적 품위(고고함)(제1연)
② 사슴의 내면― 향수,애수,동경(제2연)

▶ 시적 자아의 태도 : 이상 지향적. - 현실보다는 먼 이상의 세계를 그리워함.
-현실관 :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외롭게,슬프게(숙명적인 비애감) 삶
-이상관 :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가운데 이상지향적인 태도를 보임.
→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바라본다."
▶ 제재 : 사슴
▶ 주제 : ① 이상향에 대한 동경 - 현실보다는 먼 이상의 세계를 그리워함.
② 이상적 생명에의 향수
③ 잃어버린 정신적 고향에 대한 향수

▶ 시어의 풀이
* 제1행 -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고독한 시인의 모습(감정이입,의인법)
* 제5행 - 내면적 성찰을 통해 자기의 참모습을 응시함. Narcissism과 통함.
* 잃었던 전설 - 높은 족속이었던 지난날(고고한 마음의 본향)
* 먼 데 산 - 향수에 젖은 모습(동경과 자유의 세계 상징)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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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둘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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