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고향 선후배 2009. 12. 6. 20:41

연도 : 1970년도 추정
이장 : 작천2리 이장님 (故정수식)
가은면장 배 쟁탈 4H구락부 청년부 씨름 대회


어렴풋히 생각난다. 1970년대로 추정되며 내 나이 7살 정도로 취학 하기전 무두실에는
약120가구가 살아가고있는 산촌 마을 무두실에는 젊은 청년이 많았다. 당시 이장님으로
계시는 이장님(故 정수식)으로 계실때에 새마을운동이 시작 되기전 있었던 일로 어렴풋
히 생각나고 초가집이 대부분이 였으나 유일하게 배경사진에 나와 있는 동네회관이
스래트로 집을 진 작천2리 동네 회관이다. 정말 초라하지만 애정이 가는 나의 고향이다.



당시 故 박정희 대통령께서 경제개발 1주년 사업으로 농촌마을에 새마을 사업이 준비
단계에 착수하고 퇴비증산으로 화학비료가 부족할 때 가은면민을 대상으로 켐페인도 할 때
였다. 지금으로 말하면 초등학교앞 갱빈에서 씨름대회가 열린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광업소
에 종사하는 가구외엔 선대들로 부터 물려 받은 토지(전답)가 있는 집 외에엔 먹고 살기
어려운 가구가 허다 했다. 정말 어려운 시절로 생각되며 있는집외에는 중학교를 입학하기
어려운 시절이였다.



당시에는 광업소는 일명 도시생활이나 다름없는 물자 빈곤에서 다소 산촌 마을에 견줄순
없다. 우리 무두실에는 크고 작은 인재들이 많았으며(농담) 특히 젊은층이 많아 타 부락에
비해 어디를 가나 단결이 잘 되는 부락으로 우리 4H클럽을 구성하며 각종 경연대회에서
도 수상을 한바가 있다. 무두실에도 "하면 된다" 는 신념으로 란 말이 통 하던 시절이였다.



1970년대 가은면장배 쟁탈 씨름대회를 가졌다. 무두실이 종합1위를 차지 한
색바랜 사진을 소개 해 본다. 분무기로 포상치고 제법 가는 경품이였으니
삼삼오오 모여 동민들이 나와 풍물로 자축을 하는 모습인듯하다.



친구 이양규 사촌으로 계시는 정국이 형님께서 기술씨름은 타의 추정을 불허 할 정도로
기술 씨름에 걸리면 아무리 덩치가 큰 장사도 면 하기 어려울 정도였으니 감히 얘기를 해
본다. 힘으로 하는 씨름이 아니라 기술을 걸고 만들어서 하는 씨름이다.



내 나이 6~7세 때 쯤 되는 걸로 보여 지며 복장을 보드라도 가난과 헐벗게 살았던 모습이
그대로 배여 나온다.허물어져간 부뚜막이 보이고 사진상에 비친 것으로 보아 여름이 되겠으며
무두실을 지킨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는 다 알수 없지만 일전 기일을 맞이하여
형님댁 사진엘범을 보다가 찾아낸 색 바랜 사진이다. 옛이 있기 때문 지금이 있듯이 지금이
나 예나 사람사는것은 다를기 없는데 정성스런 이 사진 함께 답글과 대화가 진지하게
이루어 졌으면 좋겠다.



이미 작고 하신 어른들도 보여 지고 이젠 중년의 노인으로 변해 현존하시는 어른들도
계시며 유일하게 우리 형님도 포함되었다. 이 사진이 초상권 침햬가 되질 않는 범위
내에서 사진을 올려봅니다.

ps)무두실 동민어른들께 양해를 받지 못해 죄송합니다.다 벗은 옷이라 먼저 양해를 구합니다. ㅎㅎㅎ

채희동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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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둘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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