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고향 선후배 2010. 9. 8. 21:22

일시 : 2010.9.8

제목 ; 나의 어릴적 선생님 ^^

돌아보면 엊그제 같은 66년 전, 그리운 고향 문경시 가은읍 에서 태어나 유․소년기를 보냈고 엄하신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사범학교에 진학하였는데, 그 때부터 가르치는 일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오십여 년을 살아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꿈만 같았던 세월이었다고 회상된다.

유난히도 차가운 봄 눈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던 1962년 3월 9일, 영덕군 축산국민학교에 임시교사로

발령을 받아, 그야말로 교직을 천직으로 여기면서 내 자신을 위해 정렬을 불태워왔다. ‘젊어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 라는 속담처럼 아이들을 가르치고 난 후의 여유로운 시간은 독서와 학문 연구에 전념하였다. 그 결과는

내게 엄청난 재앙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십대 초반에 몸서리치도록 무서웠던 폐결핵으로 사투를 벌여야 했고 하늘의 뜻인지 죽음의 문턱에서

회생하였다. 그리고 중등학교 영어과와 음악과 준교사 자격 고시검정에 합격한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고나

할까? 남들은 모두 부러워했지만 나에겐 그 또한 곤경의 시작이었고 감수해야 할 짐이 된 것으로 기억된다.

중등교사로 전직을 한 후 음악 중 작곡 분야에 심취하여 작곡집「봄소식」을 출간하였고 이어서 합창곡,

성가곡, 동요 및 피아노곡 등 작곡활동을 왕성하게 해왔다. 당시(1970년대) KBS(한국방송공사)의 인기 TV

프로그램이었던 ‘새 노래 고운 노래’ 공모에 여러 차례 당선되어 TV전파를 타기 시작하니 1979년 5월 1일

조선일보사가 위촉하는 전국 교가가 없는 학교에 교가 지어주기 작곡위원으로 선정되어 많은 학교의 교가를

작곡하게 되었다.

특히 1981년 3월 29일에는 동기생 윤상홍 교장이 교감으로 근무하시던 경상북도 영양군 화매국민학교의

교가를 작곡하게 된 것은 내 음악 창작사(史)에 잊지 못할 기억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를 거쳐 지식. 정보화 사회로 급변하면서 도시화가 가속화되어 농어촌의 많은

학교가 폐교 또는 분교로 격하되었는데, 내가 작곡한 교가 중 1/3 이상이 통합된 본교나 교육청의 문서고에

화석화된 채 보존되어 있다.

교육자로서의 삶을 개괄하면 초등학교 교사, 중․ 고등학교 교사, 교감, 교장을 두루 거쳤고, 뜻이 있어

정년퇴임 이후에 유아교육학에 도전하여 학위를 받았으며 유치원을 설립하여 유아교육 발전의 모퉁이돌이

되고자 애쓰고 있다. 1986년에 교육전문직으로 전직하여 대구광역시교육청(당시는 대구직할시교육

위원회였음)에서 장학사, 장학관, 과장, 국장을 거쳐 대구광역시남부교육청 교육장을 역임하였다.

나의 교직생활을 마감하면서 되돌아보니 교장과 교육장 즉 교육 CEO로서 소신껏 일할 수 있던 때가

그래도 가장 큰 보람이었던 것으로 평가하고 싶다.

한편 사회교육과 평생교육 진흥을 위한 활동으로는 일찍이 보이스카우트에 입문하여

청소년들에게 무엇보다도 꿈(Vision)을 갖게 하는 것이 나의 큰 관심사였다. 사학재단

육성을 위하여학교법인 협성교육재단 이사를 역임하던 중 선출직에 당선되어 아쉽게도

사직하였고,현재대구청소년종합지원센터 이사로 봉사하고 있으며, 2008년부터 대구광역시

청소년단체협의회 회장직을 맡아 ‘청소년! 미래를 열다.- 청소년이 대구의 가능성입니다’ 라는

지표로 청소년 건전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오늘날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평생토록

학문 탐구에 전념해야 한다는 신념을 확인하려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박사과정에 도전하고 있다.

작곡활동을 하면서 불만스러웠던 점은 ‘화성(음)이 입체적이어야 한다’ 라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여 음악과 미술의 접목을 시도하였다. 더 풍부한 화음을 구사하여야 한다는 일념으로,

18년 전 조각에 입문하게 되었다. 조각 분야의 내 전공은 향나무조각의 인물상 탐구이다.

초창기에는 십장생 중 하나인 거북이 다듬기에 매진하다가 다시 하회탈 만들기에 수년 간

몰두해왔다.

그 과정에서 인물표현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에 「미소(微笑)」를 표현하기로 하고 십여 년

전부터는 ‘사랑의 미소’ 를창출하는 일에 미쳐있다. 이 작업은 하면 할수록 신비로움에 빠지게

된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나이 들어 멋있게 사는 방법을 일찌감치 잘 선택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4년 전인 2006년도 간접선거 제도 때 교육위원 선거에 출마하였지만 역량 부족으로 차점

석패경험이 있다. 그 뒤 재충전의 기회로 대학에 나가 강의를 하면서 모자람을 채우려고 공부도

계속하여 아동․ 청소년학 학위도 받았다. 내겐 그 기다림 의 4년 세월이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

었다.

2010 년 6.2 전국 동시 지방선거 때 대구광역시 달서 구 지역에서 육의원으로 입후보하여,

주민직 선에 의한 초대 교육의원 당선의 영광을 차지하 <사랑의 미소> 되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인간을 ‘일하는 동물’이라 정의했듯이 할 수 있는 날까지 열과 성을 다하여 일함으로써

지역사회 발전을 위하여 한 알 의 밀알이 될 수 있다면 크나큰 보람이겠다.

랄프 왈도 에머슨(미국, 시인. 사상가 1803-1882)이 ‘무엇이 성공인가?’ 란 글에서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 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 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라고 하였듯이 나도 이처럼 평범하게 성공한

사람으로 남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터넷신문에 폄 ^^

채희동



<4선거구> ▲남정달(66.대구광역시청소년단체협의회 회장

posted by 둘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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