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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9.12.01 :: 3공장 문경향우회
  3. 2009.11.01 :: 주전봉수대(朱田烽燧臺)
  4. 2009.10.20 :: 임수정 금메달
나의고향 선후배 2009. 12. 6. 20:41

연도 : 1970년도 추정
이장 : 작천2리 이장님 (故정수식)
가은면장 배 쟁탈 4H구락부 청년부 씨름 대회


어렴풋히 생각난다. 1970년대로 추정되며 내 나이 7살 정도로 취학 하기전 무두실에는
약120가구가 살아가고있는 산촌 마을 무두실에는 젊은 청년이 많았다. 당시 이장님으로
계시는 이장님(故 정수식)으로 계실때에 새마을운동이 시작 되기전 있었던 일로 어렴풋
히 생각나고 초가집이 대부분이 였으나 유일하게 배경사진에 나와 있는 동네회관이
스래트로 집을 진 작천2리 동네 회관이다. 정말 초라하지만 애정이 가는 나의 고향이다.



당시 故 박정희 대통령께서 경제개발 1주년 사업으로 농촌마을에 새마을 사업이 준비
단계에 착수하고 퇴비증산으로 화학비료가 부족할 때 가은면민을 대상으로 켐페인도 할 때
였다. 지금으로 말하면 초등학교앞 갱빈에서 씨름대회가 열린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광업소
에 종사하는 가구외엔 선대들로 부터 물려 받은 토지(전답)가 있는 집 외에엔 먹고 살기
어려운 가구가 허다 했다. 정말 어려운 시절로 생각되며 있는집외에는 중학교를 입학하기
어려운 시절이였다.



당시에는 광업소는 일명 도시생활이나 다름없는 물자 빈곤에서 다소 산촌 마을에 견줄순
없다. 우리 무두실에는 크고 작은 인재들이 많았으며(농담) 특히 젊은층이 많아 타 부락에
비해 어디를 가나 단결이 잘 되는 부락으로 우리 4H클럽을 구성하며 각종 경연대회에서
도 수상을 한바가 있다. 무두실에도 "하면 된다" 는 신념으로 란 말이 통 하던 시절이였다.



1970년대 가은면장배 쟁탈 씨름대회를 가졌다. 무두실이 종합1위를 차지 한
색바랜 사진을 소개 해 본다. 분무기로 포상치고 제법 가는 경품이였으니
삼삼오오 모여 동민들이 나와 풍물로 자축을 하는 모습인듯하다.



친구 이양규 사촌으로 계시는 정국이 형님께서 기술씨름은 타의 추정을 불허 할 정도로
기술 씨름에 걸리면 아무리 덩치가 큰 장사도 면 하기 어려울 정도였으니 감히 얘기를 해
본다. 힘으로 하는 씨름이 아니라 기술을 걸고 만들어서 하는 씨름이다.



내 나이 6~7세 때 쯤 되는 걸로 보여 지며 복장을 보드라도 가난과 헐벗게 살았던 모습이
그대로 배여 나온다.허물어져간 부뚜막이 보이고 사진상에 비친 것으로 보아 여름이 되겠으며
무두실을 지킨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는 다 알수 없지만 일전 기일을 맞이하여
형님댁 사진엘범을 보다가 찾아낸 색 바랜 사진이다. 옛이 있기 때문 지금이 있듯이 지금이
나 예나 사람사는것은 다를기 없는데 정성스런 이 사진 함께 답글과 대화가 진지하게
이루어 졌으면 좋겠다.



이미 작고 하신 어른들도 보여 지고 이젠 중년의 노인으로 변해 현존하시는 어른들도
계시며 유일하게 우리 형님도 포함되었다. 이 사진이 초상권 침햬가 되질 않는 범위
내에서 사진을 올려봅니다.

ps)무두실 동민어른들께 양해를 받지 못해 죄송합니다.다 벗은 옷이라 먼저 양해를 구합니다. ㅎㅎㅎ

채희동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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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고향 선후배 2009. 12. 1. 23:22

일시 : 09.11.29(일) 19:00~

장소 : 남구 달동 달동횟집

참석자 : 김광해,변형수가족,김충호,황철규부부,채희동가족,김상태가족, 이창녕가족,박**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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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둘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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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고향 선후배 2009. 11. 1. 21:46

일시 : 09.11.1(일) 10:00~12:00

장소 : 주전 봉수대

제목 : 현대차 문경향우회 09년 추계가족 산행 및 문화 탑방

주관 : 현대차 문경향우회

계요 :

봉수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급한 소식을 전하던 옛날의 통신수단을 말하며,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울산광역시 동구 봉대산에 있는 이 봉수대는
조선 세조(재위 1455∼1468) 때 쌓은 것으로 둘레 5m, 높이 6m의 원통형으로 되어 있다. 세종 때 일반적으로
만들었던 사각형의 봉수대와는 형식상 차이가 있는 특이한 구조이다.

남으로 화정의 천내 봉수대에서 봉수를 받아 북의 우가산 유포봉수대에 전하였는데, 뒤에 유포 봉수대가
폐지되면서 경주의 하서지에 전달하였다.

이 봉수대는 현존하는 많은 봉수대 가운데 그 원형이 잘 보존된 것으로, 봉수대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
되고 있다.
시설이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봉수제도를 실시한 것은 고려 의종(高麗 毅宗) 3년(1149) 8월 당시
서북면 병마사 조진약(兵馬使 曺晉若)의 건의로 채택되었다.
이 봉수대는 조선 세조(1455∼1468재위)때쯤
세워진 것으로 직경이 5m, 높이 6m의 원통형으로 석축하여, 세종때의 봉수대 일반형인 4각형과는 형식상
차이가 있는 특이한 구조이다. 교신방법은 오래 탈 수 있는 산짐승의 배설물을 이용하였고, 낮이며 수(燧),
밤이면 봉(烽)으로서 평상시 아무 이상이 없으면 1봉1수, 국경에 적이 나타나면 2봉2수, 적이 국경 가까이
오면 3봉3수, 적이 국경을 넘어오면 4봉4수, 적과 아군사이에 접전이 벌어지면 5봉5수를 올려 신호했다.
이 봉수대는 북으로 유포(柳浦) 를 거쳐 하서(下西)에 이어졌고, 남으로는 천내(川內)·가리산(加利山)·
산하(山下)·임랑포(林郞浦)를 거쳐 좌수영에 연결되었다. 그 많은 봉수대들 가운데 주전 봉수대가 그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어 봉수대 연구자료로서 대단히 소중하다.

소감 :고향형님 동생 누이 함께 모여 동대산을 가졌다. 어제 비가 온다는 접수로 인해참석인원은 약40명으로

조촐한 만남을 가졌다. 정겨운 시간 주전 횟집으로 자리를 옮겨 즐거운시간을 마련했다. 정상에서 주전 봉수대

에서 간단한 막걸리 한잔으로 향수를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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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둘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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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고향 선후배 2009. 10. 20. 13:50

일시 : 2009.10.19

장소 : 덴마크

현지시각으로 새벽 5시. 금메달의 단꿈에 빠져 있을 법도 했지만, 임수정(23·수원시청은 밤새 뒤척였다.

만신창이가 된 온 몸. 임수정은 “경기를 할 때는 몰랐는데 삭신이 쑤셔서 일찍 깼다”고 했다.

19일(한국시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2009세계태권도선수권 여자 라이트급(-62kg). 4강에도 오르기

전에 임수정의 발목은 다쳐서 부어있었다. 허벅지 통증까지. 설상가상 결승에서 만난 장훠(중국)에게 경기

초반 0-4로 뒤져 패색이 짙었다. 그럼에도 임수정은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했다”고 했다. ‘괜찮아, 난 할 수

있어’라는 다짐. 대 추격전을 펼친 임수정은 7-8로 뒤진 3라운드에서 오른발차기로 장훠의 얼굴을 강타해

10-8로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아시안게임(2002년 부산)과 올림픽(2008년 베이징)에 이어 세계선수권까지

제패하는 순간. 한국태권도 사상 그랜드슬램은 문대성(33·IOC선수위원), 황경선(23·고향시청)에 이어

3번째다.

임수정의 우승은 역발상의 결과다. 2007하계유니버시아드 결승. 자국선수를 응원하는 태국관중들의

‘타일랜드’ 응원소리가 임수정에게는 ‘대한민국’으로 들렸다. 2009세계선수권에서 임수정의 경기는 대회

마지막 날. 앞선 선수들의 결과가 좋으면 좋은 대로, 좋지 않으면 좋지 않은 대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정이었다. 아버지 임경환(54) 씨는 “며칠 전 통화를 했는데 (임)수정이가 ‘아빠, 2007년 올림픽예선

(영국 맨체스터)에서도 마지막 날이었는데 1위했잖아’라며 도리어 나를 안심 시키더라”며 웃었다. 임수정은

“전자호구에 대해 말들이 많지만 그것 역시 생각하기 나름”이라며 특유의 긍정적 사고를 드러냈다.

한편, 남자 라이트급(-71kg) 김준태(23·성남시청)도 금메달을 추가했다. 한국은 남자부에서 금메달

3개로 19회 연속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여자부(금메달 2개)는 중국에 이어 2위에 올랐다.

한국 여자태권도의 ‘간판’ 임수정(23·수원시청)이 2009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여자 라이트급(-62kg)에서 우승,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임수정은 19일 덴마크 코펜하겐 베라호프 슈퍼아레나에서 열린 대회 최종일

여자 라이트급 결승전에서 장훠(중국)와 난타전을 펼친 끝에 10대8 판정승을 거두고 금메달을 획득했다고 여자

대표팀 김진기 코치(수원시청)가 알려왔다.


이로써 임수정은 지난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과 2007 하계유니버시아드, 베이징올림픽을 차례로 석권, 문대성

(동아대 교수), 황경선(고양시청)에 이어 국내 세번째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이날 1라운드를 부전승으로 통과한 임수정은 4강까지 거침없는 기세로 진출한 뒤 준결승전서 에스테파니아

가르시아(스페인)를 맞아 3점짜리 안면 발차기만 3개를 성공시켜 9대5로 꺾고 결승에 올랐다.


임수정은 결승 1회전에서 장훠에게 초반 몸통 돌려차기를 내주며 선취점을 빼앗긴 뒤 2회전에서는 뒤돌려차기를

시도하다가 얼굴 내려찍기를 허용, 0대4로 뒤지며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그러나 2라운드 후반 전열을 가다듬은

임수정은 오른발 몸통돌려차기로 1점을 만회한 후 얼굴내려찍기로 3점을 보태 4대4 동점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이후 접전을 펼치며 얼굴내려찍기 1개씩을 주고받은 두 선수는 장훠가 한 점을 더 보태 7대8로 2라운드를 마감한

뒤, 3라운드 시작과 동시에 임수정이 오른발 내려찍기를 장훠의 안면에 적중시켜 짜릿한 역전우승을 일궈냈다.


한편 남자 남자 라이트급 김준태(23·성남시청)는 준결승에서 지난해 베이징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미국 ‘로페스

가문’의 셋째 아들 마크 로페즈에 7대5로 역전승을 거둔 뒤, 결승에서 포트빈 맥심(캐나다)을 맞아 돌려차기와

기습적인 왼발 공격을 연속 성공시켜 5대2로 승리를 거두고 우승했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남자대표팀이 금메달 3개를 따내며 세계선수권 19연패 위업을 이뤘으나, 여자대표팀은

중국과 금메달 수(2개)에서 동률을 이뤘지만 은메달에서 밀려 12연패 달성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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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둘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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